1 버터플라이 체어 두 개를 나란히 놓은 거실. 튼튼한 가죽 시트는 쓰면 쓸수록 멋스럽다. 2 허먼 밀러의 임스 일립티컬 사이드 테이블과 루이스 폴센의 플로어 조명 판테라로 화사하게 꾸몄다.
이미지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SNS 시대라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눈속임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인형같이 예쁘장한 여자들을 왜 사진 밖에서는 만나지 못했을까. 집스타그램 덕분에 잘 꾸며놓고 사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알았지만, 내실이 느껴지는 알짜배기 집은 기본에 충실한 곳이다. 시각적으로 자극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생활하기 좋고 편히 쉴 수 있어야 계속 머물고 싶어지니 말이다. 한 달 전, 삼성동에 있는 고층 아파트로 이사한 주부 김혜연 씨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멋진 인테리어보다 가족들이 함께 지내기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 미리 점찍어두었던 히틀러스 플랜잇의 신선주 실장을 찾아갔다. 화이트와 우드 톤을 중심으로 화사하고 따뜻하게 꾸미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그녀의 작업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결혼 후 마련한 첫 집에서 10년쯤 살았을 거예요. 1층이었는데 창문 앞에 나무가 있어서 빛도 잘 안 들고 전체적으로 어두웠어요. 다음에 이사할 때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 여기로 오게 되었죠. 전에 살던 집도 고쳐 살아봤기 때문에 특별한 욕심이 없었어요. 제가 원한 건 흰색으로 환하게 해달라는 것과 수납과 안전에 신경 써줬으면 하는 정도였죠. 그 외에는 별다른 부탁을 하지 않고 실장님의 감각에 맡겼어요.” 아파트는 65평 규모로 네 식구가 살기에는 충분히 넓은 데다 거실 양쪽에 큰 창이 있어 채광도 충분했지만 열 살, 다섯 살 난 두 딸아이가 앞으로도 밝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환한 집을 소망했다.
3 프리츠 한센의 원목 식탁 에세이 Essay와 칼 한센의 CH 88 의자는 오크 소재로 통일했고 구비의 그라스하퍼 펜던트 조명을 회색으로 선택해 잔잔한 분위기로 완성했다.
화이트 인테리어는 어떤 색이든 다 받아내는 포용력을 지닌 데다 빛을 반사시켜 실내를 밝혀주는 등 장점이 많지만, 그만큼 흔하게 적용되는 키워드라서 신선한 인상을 주기 어려운 것이 단점. 환한 공간을 선호하면 보통 반짝이는 유광 재질을 선택하곤 하는데, 이 집은 매트한 무광 타일과 펄이 없이 담담한 느낌의 벽지로 마감한 것이 의외였다. “타일 사이를 메우는 줄눈은 무광인데 유광 타일을 선택하면 나중에 시간이 지났을 때 줄눈만 유난히 누레 보이죠.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담백하고 차분한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가죽 소파, 오크 원목 식탁과 의자 등도 전부 코팅되지 않은 제품으로 골랐습니다.” 신선주 실장은 집 안 전체를 무광으로 통일시켜 담백하고 차분한 인상으로 완성했다. 복잡한 도심에 있는 아파트지만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도록 말이다.
4 기존 ㄱ자였던 주방은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11자로 바꾸고 기존 식탁 자리였던 곳은 냉장고를 빌트인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5 두 딸아이의 놀이방. 피아노 맞은편에는 수납장을 두어 여러 책과 장난감을 정리했다. 6 작은딸 방. 수납장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창가 쪽에는 책상을 맞춤으로 제작했다.
7,8 컴퓨터 책상으로 활용하도록 가벽 사이에 선반을 짜 넣었다. 나무로 마감한 벽에 걸어놓은 흰색 수납장이 더욱 깨끗해 보인다. 9 양쪽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부부 침실. 한쪽 창가에는 ㅁ자 모양의 프레임을 내고 하단에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거실은 거대한 카우치형 소파대신 2,3인용 소파와 라운지 의자를 두어 안락한 느낌을 줬다. 또 화이트 인테리어가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별화를 줬다. 원목 마루도 인기 많은 헤링본 대신 비교적 덜 알려진 피쉬본으로 시공했고,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방 각각에 맞춰 가구를 제작해 효율적인 구조로 만들었다. 남은 방 하나는 문을 없애고 두 아이의 놀이방으로 바꿨다.
이 집의 포인트는 곳곳에 숨어 있는 네모 상자다. 거실과 안방에 큰 창을 두르는 ㅁ자 프레임을 제작해 선반으로 활용하거나 걸터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한 것. 신발을 신을 때 잠시 앉기 좋게 현관에도 네모 프레임을 만들었고, 주방 수납장도 같은 수종으로 제작해 동일한 조형미가 이어지도록 했다. 프레임은 바닥재와 동일한 오크 소재로 마감했고 단 한 곳만 소재를 달리 사용해서 차이를 주었다. 현관에서 거실 복도로 넘어가는 경계 지점이다. “소음을 차단하고 난방을 보완하기 위해 중문을 달았지만 이 집은 현관이 넓고 길쭉해서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도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이 부분만 금속 무광 재질로 둘렀죠. 나무의 따뜻함과 연결되도록 브론즈 색상으로 선택했어요.” 그녀가 숨겨놓은 이 작은 디테일 덕분에 평온한 일상이 한층 풍요로워질 것 같다.
10 채광이 좋은 널찍한 거실. 매트한 가죽 소파는 헤이 제품으로 큼직한 카우치형 소파 대신 3인용과 2인용 소파를 놓았다. 11 큰딸 방은 자작나무로 집 모양의 침대 헤드보드와 ㄱ자 책상 등을 맞춤으로 제작했다. 12 부부 침실 앞에 있는 파우더룸. 회색 석재로 마감한 욕실과 바로 이어진다. 13 복도에 걸어놓은 돌 사진은 사진가 박찬우의 작품. 고요한 이미지가 차분한 분위기의 집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