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를 살리면서 공간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갤러리가 연상되는 215㎡의 아파트. 집주인의 탁월한 직관과 감성이 만든 그림같이 멋진 집을 소개한다.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의 ‘쉬머’ 거울로 임팩트를 준 거실. 공중에 띄어 설치한 몬타나 수납장 위로 요시모토 나라의 오브제와 귀여운 아오모리 개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 있다.
집주인의 믹스매치 감각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주방. 톰 딕슨의 멜트 쿠퍼 조명 아래 배치한 사리넨 다이닝 테이블 주변으로 가구 브랜드 놀 Knoll의 의자와 톰 딕슨의 의자를 믹스매치했다. 벽에는 버튼 찰스의 ‘주크 박스’가 걸려 있다.
집주인 김시내 씨는 패션 소품 브랜드 ‘타라 드 알마’를 운영하고 있는 워킹우먼이지만 그녀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가족’이다. 이번 이사도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간 일보다는 가족을 돌보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았던 그녀가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마음 한 켠에 접어두고 살았던 인테리어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시원하게 뚫려 있는 갤러리 같은 공간은 김시내 씨가 평소 꿈꿔왔던 집이다. 이런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준 사람은 평소 가깝게 지내온 다임에이앤아이의 김나현 대표. 이 가족의 라이프스타일과 감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공사 과정 역시 순조로웠다는 후문. 결과적으로 이 집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환상적인 궁합이 만든 합작품인 셈이다.
20여 년 된 낡은 아파트 1층에 자리한 215㎡의 공간 레노베이션 계획은 매우 과감했다. 다섯 개의 작은 방을 모두 없앴고 부엌의 위치도 바꿨으며 방도 세 개로 줄였지만 널찍한 규모가 오히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1 천갈이해 사용하고 있는 B&B이탈리아의 소파 뒤로 주방이 자리한다. 2 패션 소품 브랜드 ‘타라 드 알마’와 제주 플레이스 호텔의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시내 씨. 3 주방에는 위시 아이템이었던 라꼬르뉴 오븐을 설치했다. 4 남편의 서재 한쪽에는 PP130 서클 체어가 놓여 있다.
그리고 커다란 방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방 안에서 공간을 나눌 수 있는 구조로,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는 일반 아파트의 레노베이션과는 사뭇 다르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관 입구에 만든 팬트리룸에는 겉치장을 중시하기보다 자투리 공간에 수납 아이디어를 더해 살림하는 주부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간도 확보했다. 갤러리같이 깔끔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하얀색 페인트로 벽 전체를 마감했는데, 대신 너무 날 선 느낌을 상쇄하기 위해 헤링본 바닥을 깔아 한층 부드러운 베이스를 만들었다. 사실 이 집은 넓은 평수에 비해 가구가 많지 않고 딱 필요한 것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구조가 주는 재미와 적재적소에 놓인 가구, 아티스틱한 그림 작품들이 조화를 이뤄 공간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듯 가구라는 게 언제나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아이템을 고르고 나서 오랫동안 계획해서 구입해요. 그렇기 때문에 가구나 그림 작품 하나하나마다 다른 스토리가 담기게 되죠. 애정 어린 컬렉션이 하나 둘씩 모여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지만 시선이 가는 물건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기보다는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것 이상으로 신중한 성격이기에 이 집에 놓여 있는 가구나 아티스트의 작품, 소품 하나하나에서는 집주인의 감각이 묻어난다.
거실은 집주인의 성격과 감성이 함축되어 있는 공간이다. 이사하면서 업홀스터리한 B&B이탈리아의 소파 뒤에 놓인 커다란 타원형의 사리넨 다이닝 테이블 위로는 용암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톰 딕슨의 멜트 쿠퍼 조명이 개성을 뽐내고 있다. 오픈 주방으로 연출된 부엌에는 위시 아이템이었던 라꼬르뉴의 쿡톱 오븐을 배치했는데 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레트로풍의 타일 마감과 아일랜드 바를 만들어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주방을 만들었다. 7살 해나의 방은 놀이 공간, 침실, 책상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책상과 침대 사이에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때에 따라 공간을 나눌 수 있다. 특히 아늑함을 더하기 위해 삼각형 지붕을 만든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집의 화룡점정은 부부 침실. 침대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날개를 펴듯 욕실과 드레스룸이 있는데 이곳 역시 슬라이딩 도어가 달려 있다. 욕실은 대리석 마감과 브라스 수전, 클래식한 디자인의 욕조가 어우러지며 하얀색 침구 위에는 에르메스 원단으로 제작한 쿠션과 블랭킷이 포인트로 놓여 있어 고급 호텔 인테리어를 떠올리게 한다.
알뜰하게 살림하며 요리하고 아이를 키우며 일도 하는 그야말로 일인다역을 해내는 슈퍼우먼 김시내 씨에게는 얼마 전 새로운 직함이 하나 더 생겼다. 11월 제주에 오픈하는 복합 문화 공간 ‘플레이스 Playce’ 호텔의 디자인 디렉터다. 제주의 성산 일출봉 쪽에 들어서는 이 호텔은 기존 숙박 시설의 개념을 깬 독창적인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여행과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특화된 복합 문화 공간으로 구성될 이 호텔에서 그녀의 감각이 어떻게 투영될지 자못 기대된다.
5,6 부부 침실은 기다란 직사각형 구조로 침대를 사이에 두고 욕실과 드레스룸이 자리한다. 대리석으로 마감한 욕실은 황동 수전으로 포인트를 주어 한층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했다. 7 서재 앞에는 작가 이동재의 ‘미스터 빈’ 작품이 임팩트있게 설치되어 있다.
8 아이가 커서도 사용할 수 있는 사보이어 침대가 놓여 있다. 주변으로 짐블랑에서 구입한 소품들이 있으며 김지용 작가의 ‘도넛’ 작품을 벽에 걸었다. 9 직접 그린 자화상 앞에 서 있는 귀여운 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