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함께할 세월이 얼마인데, 신혼집이라고 급하게 다 채울 필요가 있을까. 결혼 후 4년간 차근차근 쌓아가며 부부만의 취향으로 무장한 57m² 아파트를 만났다.
완벽히 준비해놓고 시작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번듯한 집을 구하기도 만만치 않거니와 설사 집을 구했더라도 그 안에 넣을 모든 살림살이를 마련하기 위해 한 브랜드의 가구로 대강 구입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기 십상. 두 사람이 함께할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주도적인 한 사람의 의견대로 따르는 것은 배우자가 정말 인테리어에 무관심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인생의 새로운 출발부터 얼룩지고 싶지 않은 배려와 양보일지도 모른다. 단시간에 종합선물세트 같은 집을 완성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집 꾸미기에 대한 부담도 덜어낼 수 있고, 하나씩 모으는 재미로 살다 보면 어느새 진정 두 사람을 위한 집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커브 Kerb의 김홍성 실장과 주얼리 브랜드 다스 쉬프 Das Sciff를 운영하는 금두루 대표는 한곳에서 구입한 물건으로 가득한 쇼룸 같은 신혼집이 싫었다. 그래서 무계획을 계획으로 삼았다. 오래된 건물이 좋아 1980년에 지어진 잠원동의 한 아파트를 첫 집으로 했다는 것 외에는 별로 고민한 게 없었다.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17평이라 대단한 공사를 할 수도 없었지만 워낙 오래된 집이다 보니 보수가 필요해서 동네 업자에게 맡기고 부엌은 한샘에서 맞췄어요. 작은 집이라 수납공간이 없어 붙박이장을 넣었는데 TV장과 책장까지 집 크기에 맞게 퍼니그람에서 주문 제작했죠.” 바 형태의 식탁은 부엌 공사를 할 때 같이 맞췄는데 주방과 동일하게 인조대리석 상판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집이 좁아 보이지 않도록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의자와 조명을 골랐는데 두고두고 볼 때마다 정말 잘한 일이라며 부부가 입을 모았다.
빨래를 널거나 자전거를 보관하고 식물을 키우는 등 활용도가 높은 발코니는 그대로 남기고 본래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던 중문을 없애 공간을 텄다. 그래도 공간이 여유롭지 않다 보니 스툴이나 사이드 테이블 등 소품 위주로 채웠는데 4년간 이 집에서 살면서 자연스레 모인 물건들이다. 둘이서 쇼핑을 하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사들였기 때문에 이 집에 있는 물건은 어느 한 사람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바젤 디자인 대학교에서 같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만난 부부는 모던한 것에 대한 강박이 있었지만,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그것만 고집하는 게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졌다. 요즘은 자유로운 게 더 좋아지고 때로는 유치한 것도 재미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연애 때도 취향이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이제는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서로의 취미가 오가며 더욱 비슷한 색이 되어갔다. “다양한 디자인의 물건이 들락날락하고 계속 변하는 것이 집이죠. 나이 들면서 보는 눈도 바뀌고 취향도 변하잖아요. 집은 어느 시점에 완성된 채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가지고 적층되어간다고 생각해요. 이 집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공간이 좁아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 체어 같은 걸 선뜻 구입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볼륨감이 크고 화려한 것들이 대부분이니까요. 이제는 살림살이도 많이 늘어나서 2년 안에 이사를 가야 하지 않을까요.” 김홍성 실장이 말했다.
부부는 다음 번에도 역시 오래된 집을 고쳐서 갈 계획이다. 전형적인 구조의 새 아파트보다 조금 불편해도 오래된 집이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더 넓은 집으로 가면 구입하겠다고 아껴둔 위시리스트를 펼쳐낼 기대 때문일까. 두 사람의 모습이 여전히 갓 만난 연인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하얀색 위에 하얀색 4년 전 구입한 하얀색 소파가 낡자 그 위에 흰색 양털을 깔아두는 기지를 발휘한 김홍성, 금두루 부부.
도형 놀이, 색깔 놀이 각면으로 단순하게 디자인된 스툴과 시계. 노랑, 빨강의 원색이 생동감을 더한다.
(좌)포스터가 된 청첩장 부부의 전공을 살려 포스터처럼 만든 청첩장. 뒷면에는 처음 만난 날부터 결혼하기까지 두 사람의 역사를 인포그래픽으로 담았다. (우)정리, 벽 좁은 복도 벽에는 작은 물건들을 한데 정리할 수 있는 비트라의 유텐실로를 달았는데, 잡다한 아이템을 보관하기에 제격이다.
(위)작은 집을 위한 투명한 의자 식탁에는 카르텔에서 구입한 빅토리아 고스트 의자와 펜던트 조명을 배치했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라 의자를 여러 개 두어도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아래)눈 내린 것처럼 난잡하지 않고 단정해 보이도록 흰색 책장 위에 올려놓은 뱅앤올룹슨 오디오와 베어브릭 등 여러 소품들도 흰색으로 통일했다.
민트색 침실 시각적으로 편안한 민트색 벽지로 꾸민 침실. 침대 하나만으로도 공간이 꽉 찼기 때문에 의자를 간이 테이블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