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연구소의 임정주는 여기서 물건을 만든다. 통나무를 깎아서 접시를 만들고 아내가 만든 음식을 담는다. 그는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1 아내가 애정을 쏟아 가꾼 공간. 한쪽 선반에는 임정주 작가가 만든 식기들을 진열해놨다. 2 임정주 작가가 작업할 때 사용하는 장비들 주변으로 다양한 크기의 원목이 쌓여 있다. 3 크고 작은 식기들을 제작하기 위한 끌과 조각칼들. 4 물건연구소의 임정주 작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런던으로 유학을 가서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브랜딩을 했던 임정주는 지금은 나무를 만진다. ‘물건연구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이곳 과천으로 온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물건을 좋아했어요. 우연치 않게 그래픽을 전공했지만 물건에 대한 열망이 쉽게 가시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목선반 만드는 걸 배우게 되었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겠다고 아내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했는데 반대는커녕 든든하게 응원을 해줬다. 임 작가는 그것이 내내 고마워서 10평 남짓한 작업실 한 켠에 아내를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유리로 방을 만들고 아내가 요리할 수 있도록 수도, 가스를 갖췄다.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니 직접 만든 그릇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의견에서였다. 아내가 애정을 갖고 공간을 꾸미다 보니 작업실에 놀러 오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둘 다 이곳에 금세 정이 들었다.
공간은 작지만 층고는 4m로 꽤 높아서 위층에는 나무를 쌓아두었다. 만들고 남은 목재도 자연스럽게 한 켠에 쌓여갔다. 그냥 버리자니 아까웠고 일단 날카로운 나무 모서리만 쳐냈다. 그랬더니 돌멩이 같은 모양이 되었는데 문득 이렇게 남은 물건을 활용해 문진, 티라이트 홀더, 화병 등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온 작업이 얼마 전 열린 메종&오브제 전시에서 선보인 ‘레스트 Rest’다. “첫 작업은 기능을 먼저 생각하고 원, 네모, 세모 같은 도형으로 간결하게 풀었다면 새로운 작업은 목적 없이 만든 물건에서 나름의 비례와 멋을 발견하고 그에 적당한 기능을 찾았죠.” 물건연구소는 엄밀히 말하자면 임정주 작가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는 주로 아내인 김순영 씨에게서 얻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제안으로 시작한 ‘소소 프로젝트’는 일상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소량으로만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케이크 스탠드, 버터 나이프, 도넛 모양의 냄비 받침도 만들었는데 저마다 탄생한 사연이 있다. 임정주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재료는 느릅나무와 다릅나무. 목질이 단단하고 나뭇결과 색이 고와서 특히 좋아한다. 그는 지금은 ‘소소한 물건을 만들지만 앞으로 공간 전체를 채우는 아이템을, 더 훗날에는 건물까지 만들어보고 싶다’고 고백했다. 이 자그마한 작업실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내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세운 유리 벽은 재고와 출고를 확인하는 메모판으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