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와 리빙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갤러리의 새로운 방향을 전개하고 있는 ERD 갤러리 대표 이민주. 그녀가 만든 4층 붉은 벽돌집에 들어선 갤러리를 소개한다.
1 계단의 연장선상처럼 보이는 ‘ㄱ’자형 창문이 인상적인 ERD 갤러리의 계단. 2 북유럽의 풍경을 캐비닛 안에 담은 김희원 작가의 작품 앞으로 핀 율의 펠리컨 체어와 아이 테이블이 놓여 있다.
미술 전공자도 아닌데 어떻게 갤러리스트가 됐나?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지만 갤러리에서 일해보고 싶은 꿈이 컸다. 첫 직장은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였는데, 당시 중국과의 교류가 많았던 터라 내가 적임자였다. 홍콩에서 열린 중국 작가 장 샤오강의 골드 전시를 성공적으로 치른 후 서울 리안 갤러리에서 일하다 회사를 관두고 3~4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갤러리를 오픈하게 된 이유는 뭔가? 갤러리 일을 하면서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었다. 당시에는 컬렉팅하는 사람들이 제일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계속 그쪽 일을 하고 있더라. (웃음) 결국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갤러리를 오픈하기로 결심했다.
1 남다른 인테리어 감각과 혜안을 가진 갤러리 ERD의 이민주 대표. 2 마치 핀 율의 집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듯 상상력을 불어넣는 공간 연출은 이번 전시의 컨셉트. 3 핀 율의 가장 아름다운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치프테인 의자. 4 새하얀 공간에 김희원의 ‘Someone’s Window’ 시리즈가 창문처럼 걸려 있다. 5 거실처럼 꾸민 4층 공간.
ERD가 담고 있는 의미는? ‘이알디’는 ‘아트와 디자인 전시장 Exhibition of Art and Design’을 줄인 말이다. 디자인도 미술관 전시를 할 수 있고 아트와 동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도 파인 아트는 고귀하고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해 디자인은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계가 없는 전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태원 경리단길에 터를 잡은 이유가 있나?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어야 했다. 갤러리들이 즐비한 동네는 왠지 뻔한 작품들이 걸려 있을 것 같고, 갤러리를 나설 때는 하나쯤 사서 나와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을 것 같았다. 문턱을 낮춘 갤러리를 만들어 부담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오타쿠처럼 가치형 소비를 하는 시대다. 먼 얘기이긴 하지만 훗날 이들이 컬렉터가 될 수 있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웃음)
갤러리 오픈과 동시에 ‘하우스 오브 핀 율 서울’을 기획했다. 어떤 의미인가? 갤러리 컨셉트가 아트와 리빙의 콜라보레이션이듯 아트 영역은 ERD가, 리빙의 영역은 ‘하우스 오브 핀 율’이 담당한다. 핀 율 가구는 이곳에 상주해 있지만 1년에 두 번씩 핀 율 가구와 한국 작가들을 콜라보레이션해 대규모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메종>에서 두 번이나 집 촬영을 했을 정도로 감각이 남다르다.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구 중 핀 율 가구가 으뜸이었나? 하나의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다양한 스타일이 뒤섞인 믹스매치를 즐긴다. 공간에 작품이 놓일 때는 가구와의 조화를 신경 써야 한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각각의 기운이 있다. 그것은 가구도 마찬가지인데, 다양한 가구를 작품과 매치하다 보니 핀 율의 가구가 어느 작품에나 좋은 합을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개관전으로 김희원 작가와
흔히 갤러리 하면 뻥 뚫린 하얀 공간을 떠올리지만 이곳은 집 같은 느낌이다. 일본의 협소 주택에서 착안한 형태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작지만 효율성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레노베이션하기 전 이곳은 붉은색 벽돌로 만든 작은 집이었다. 이 동네의 정겨움을 상징하는 것 같아 같은 붉은 벽돌을 선택했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9월 7일부터 정승혜 작가의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파인 아트에 국한되는 전시뿐 아니라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라든지 영상, 영화, 음악 등 영역의 구분 없이 재미있는 전시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