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유명 편집숍 메르시의 스타일리스트 쉬리 슬라뱅과 디자이너 이고르 다비드 베커의 파리 아파트. 다양한 스타일이 뒤섞여 보헤미안적인 감성을 풍기는 이곳은 생기발랄하고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정말 모든 것을 새로 손봐야했어요!” 집주인 이고르 다비드 베커가 예전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부인인 쉬리 슬라뱅과 함께 파리 10구에 자리한 이 집을 구입했을 때 이곳은 사람이 안 산 지 4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이 집이 지닌 가능성이 눈에 띄었어요. 100㎡의 면적에 약 4m나 되는 천장 높이가 마음에 들었죠. 위층에 있는 다락방을 침실로 만들면서 30평가량의 넓은 방을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그대로 둘 수 있었어요.” 레노베이션은 대공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40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고를 철거한 보상은 멋진 나무 들보다 . 메인 공간의 천장을 차지하는 나무 들보 덕분에 이 집은 독창성을 얻었다. 이고르 다비드는 거실 겸 다이닝룸으로 사용하는 넓은 공간을 벽으로 나누기보다 각 부분의 기능에 맞춰 가구와 조명으로 구분했다. 특히 부엌에는 자동차 전조등 두 개로 직접 만든 펜던트 조명을 조리대 위에 설치했다. 나무와 메탈을 좋아하는 이고르 다비드는 이 집에 자신만의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가미했고, 바로크 등 옛날 물건을 좋아하는 쉬리는 여러 스타일의 오브제를 믹스매치했다.
이고르 다비드가 이스라엘 혈통임을 암시하는 별 오브제가 다스 베이더의 헬멧과 같은 공간에 놓여 있고, 노란색 토끼 오브제가 앤티크한 소파 앞에 앉아 곁눈질한다. 쉬리가 편집숍 메르시 Merci에서 일상적인 오브제로 멋진 장면을 연출하듯 집에서도 어떤 물건으로 어떻게 배치하는지가 중요하다. 탁월한 감각으로 지휘한 믹스매치가 이 집에서 고스란히 펼쳐졌다.
이고르 다비드 베커는 여러 개의 가구를 직접만들었다. 플라이휠 부품을 이용해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원형 탁자를 만들었고 석고 타일로 책장을 제작해 글자 간판, 석고 손, 앤티크 약상자 등 다양한 오브제를 전시했다. 쉬리는 그동안 여행하며 모은 아이템을 책장에 올려놓았다. 빨간색 벨벳으로 커버링한 의자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 끝에 술이 달린 낮잠용 의자는 빈티지 제품. 플로어 조명 ‘맨티스 Mantis’는 베르나르드 쇼틀랜더 Bernard Schottlander가 디자인한 것으로 DCW 제품.
잡다하지만 따뜻한 분위기의 거실. 낡은 스틸 테이블과 바퀴 달린 수납장은 이고르 다비드가 제작했다. 수납장 아래 칸에는 두껍고 질긴 종이로 만든 상자를 넣어두었다. 피레네 지방에서 생산한 모직에 십자수를 놓은 쿠션은 안 베커 Anne Becker 제품. 유리섬유로 만든 1960년대 암체어는 길거리에서 발견해 가져왔는데 “디자이너가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했어요”라고 쉬리가 설명한다. 예전에 프랑스 은행에서 금괴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던 상자는 여러 개를 쌓아 성모마리아상의 받침대로 쓰고 있다. 또 바닥에는 터키에서 생산된 양모 러그와 짚으로 만든 모로코 태피스트리를 깔았다.
쉬리는 금색 프레임을 두른 18세기 소파 위에 남동생인 아티스트 란 슬라뱅의 작품을 걸어놓았다. 둥근 회색 테이블은 이고르 다비드가 제작한 것. 노란색 토끼와 사슴 오브제가 키치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틸과 레진으로 만든 녹색 테이블은 이고르 다비드가 제작했다. 테이블 양옆에는 바우만 Baumann에서 만든 밝은 나무색의 1950년대 의자와 1950년대 북유럽 식당 의자를 놓았다. 샹들리에와 금색 프레임의 큰 거울이 러프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완화시킨다. 테이블 위에는 1950년대 파이렉스 Pyrex 유리 그릇을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