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과 아파트 사이
오크 소재의 원목 마루와 가구, 박공지붕으로 전원주택처럼 아늑하게 연출한 반포의 복층 아파트. 강정태 소장은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사선을 적극 활용해서 아주 독특하게 설계했다.
운치 있는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전원주택은 한적해서 좋지만 불편하고, 편리하며 안전한 아파트는 획일화되어 지루하다. 전원주택과 아파트의 장점만 취한 집이 있다면 누구나 살고 싶은 최고의 집이지 않을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반포의 한 아파트에서 모두가 꿈꾸는 집을 발견했다. 고급 주택을 설계한 경험이 많은 JtK Lab의 강정태 소장이 최근 완성한 이 아파트는 신축이라 아주 깨끗했지만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구조를 변경하기 위해 완전히 뜯어고쳤다. 아파트 구조로는 흔치 않은 복층이었는데, 벽 쪽에 있던 계단 위치를 창 쪽으로 바꿔 위층과 아래층의 창이 이어지도록 수리했다. 거의 재건축 수준의 공사가 들어간 셈이다. “원래는 우물 천장으로 마감한 거실이 있는 흔한 아파트였어요. 벽이나 배선, 환기나 에어컨 시스템까지 어느 하나 기존 것을 쓰지 않고 전부 다 새로 했죠.” 강 소장이 말했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네 달이 소요된 힘든 프로젝트였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제일 만족스러운 부분은 오크 무늬목으로 마감한 천장이다. “해보고 싶었던 천장이 바로 이런 거였어요. 조명 배치 외에도 에어컨이나 설비까지 고려해서 만들었는데 마감이 정말 깨끗하죠.” 강 소장은 마감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판재를 붙인 다음 샌딩하고 도장을했다. 또 박공지붕처럼 약간의 기울기를 줬는데 이 때문에 아파트지만 전원 주택 같은 느낌이 든다. 집주인 내외도 이 천장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 “사람들이 높이를 인식할 때 낮은 부분보다는 가장 높은 부분을 보고 판단 하거든요. 시선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흐르면서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주죠. 만일 일자이거나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다면 갑갑해 보였을 거예요 .” 천장에 준 착시 효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완벽을 기하는 강소장의 태도는 달랐다. 주방 가구와 식탁, 옷장, 침실 화장대, 옷장 등 이 집의 모든 가구를 사선으로 제작하는 어마어마한 일을 벌인 것이다. 하나하나 각기 다른 각도를 적용해서 공간에 딱 맞도록 설계해야 했으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주방 가구는 냉장고, 식기세척기, 와인셀러 등 빌트인되는 가전이 많아서 약간만 달라져도 모든 설계를 다시 해야 했다. 국내, 해외 업체를 막론하고 못한다고 딱 잘라 말하는 탓에 주방 가구 제작 업체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을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보람을 느껴요.” 정말이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시도였다.
이 집은 10살 아들과 9살, 6살인 두 딸 그리고 부부까지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264㎡ 규모의 넓은 집에 살다가 면적이 199㎡인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살림살이를 많이 줄였지만 아이들의 책과 장난감은 아직도 많았다. “클라이언트가 특별히 의뢰한 부분도 아이들의 책 수납을 해결하는 거였어요. 이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면서 공부할 수 있을까 고민 했죠.” 위층은 아이들만의 공간이다. 강 소장은 구조상 제거할 수 없는 기둥을 중심으로 타원이 길게 뻗어나가도록 설치물을 제작했고 긴 책상도 마련했다. 설치물은 안쪽에 잡다한 물건을 수납할 수 있도록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놀이터 부럽지 않은 이 거대한 설치물에서 아이들은 눕거나 앉아 함께 놀고 책을 보며 공부한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방은 집중해서 독서나 숙제를 하는 곳이다. 원래는 도서관으로 계획했다는 위층 거실에는 아이들이 점차 자라면서 장난감 대신 책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길게 이어지는 거대한 책장과 사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충분한 채광도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아래층은 공간 활용이 극대화되어 있다. 기존 좁았던 주방을 넓히느라 거실 공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계단 아래쪽을 벽으로 막았고 TV와 5.1채널의 스피커까지 깔끔하게 내장했다. TV가 들어 있는 이 벽은 부부 침실과 거실을 나누는 파티션이기도 하다. 벽에 붙어 있는 선반은 다른 한쪽에서는 수납장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이 집에는 이런 디테일이 널려 있다. 벽 하나, 선반 하나까지도 다각도로 유용하게 쓰이도록 고려 되었다. 가구의 레이아웃과 천장의 선도 모두 제각각 이유 있게 비틀어져 있다. 아주 적당히, 아주 계산적으로 말이다. 천장과 바닥의 원목 마루, 가구의 소재는 오크로 통일해서 다른 각도로 향하는 선들이 거슬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흥미롭다. 이제껏 만난 공간 또는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게 지었다는 집 중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