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카맣게 보이는 건물 속은 환하고 반짝였다. 더 이상 비타민D 결핍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빛을 머금은 더북컴퍼니 사옥. 2014년부터 시작해 3여 년 만에 완성된 이 건물의 설계를 맡은 엔이이디 건축사사무소 김성우 소장에게 더북컴퍼니 사옥에 대한 생각을 캐물었다.
엔이이디 N.E.E.D. 건축사사무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엔이이디 건축사사무소는 2007년부터 함께 작업해온 김성우, 김상목 소장이 2008년 미국 건축사협회 뉴욕 지부에서 주관하는 ENYA(Emerging New York Architects) 국제 현상 설계 공모에서 당선한 것을 계기로 20011년에 서울과 뉴욕에 문을 연 설계 사무소입니다. 지금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뜻으로 Need라는 단어에 주목했고 여러 의미가 개입할 여지를 두기 위해 엔이이디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일원동에 있는 30년 된 단독주택 레노베이션과 압구정, 논현동에 있는 근린 생활 시설, 무교동 근처에 있는 공원 그리고 신림초등학교 1학년 교실 레노베이션 등 다양합니다.
국내에 알려진 대표작으로는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과 미국의 유명한 건축상을 3개나 받은 ‘상계동 341-5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기존 원룸 구조를 탈피해 도심에서 살고 있는 1인 가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는데,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건물을 설계할 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연속적인 공간 경험’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도시 공간에서부터 사적 공간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 상상하면서 설계를 구체화하는 거죠. 다시 말해 건물이 분절된 덩어리이고 그 집합을 도시로 보는 게 아니라 거대한 도시부터 아주 작고 사적인 개인 공간까지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새롭게 더해야 할 부분이나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열린 자세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은 어쩌면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무 공간, 특히 잡지를 만드는 회사 건물을 설계하면서는 어떤 기준을 고려했나요?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아주 중요한 것이 근무 환경입니다. 특히 잡지사의 경우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게 되는데, 외부의 직사광이 컴퓨터 화면에 바로 비치면 방해되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조도를 갖는 북측광을 채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남향을 선호했지만 사실 업무 공간에 더 좋은 빛은 북측광입니다. 몇 차례 검토해서 남측으로는 엘리베이터, 계단실 등을 배치해 밝은 쪽으로 두었고 사무 공간에는 북쪽으로 크게 열리는 창을 만들었습니다. 또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공기의 순환입니다. 때문에 더북컴퍼니 사옥에는 모든 층에 창문을 열지 않고도 외부의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는 환기 장치와 에너지 효율을 높여주는 열교환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세부 공간은 어떻게 설계되었나요?시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 층의 층고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했습니다. 공용 공간인 3, 4층은 두 층을 오픈해 시원한 느낌이 들도록 했고 3층 테라스에는 개방감을 살리기 위해 코너 기둥을 없앴죠. 12층에 있는 대회의실은 도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도록 수평으로 길게 뚫린 창을 두었습니다. 또 옥상정원은 자유로운 선형을 적용해 하나의 건물 속에서 다양한 공간적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건물 외부 마감재가 특이합니다. 어떤 재료이며 원래 어디에 쓰는 것인가요? 외관에 사용된 재료는 GFRC(Glass Fiber Reinforced Concrete)라는 재료입니다. 예전에 많이 쓰였던 콘크리트 패널과 비슷한 재료인데 패널의 강성을 높이기 위해 무거운 철근을 삽입하는 대신 가벼운 섬유 소재를 넣은 것이죠. 무게를 대폭 줄이면서 강도는 높은 외장 재료입니다. 고층 건물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유리, 석재, 알루미늄 복합 패널 등은 이미 제작된 제품을 그대로 적용하거나 재단해서 쓰는 데 반해 GFRC는 원하는 색상, 질감, 패턴으로 맞춤 제작이 가능합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더북컴퍼니 사옥을 더욱 상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외관 마감재로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이 채광입니다. 길게 사선으로 떨어지는 빛의 각도가 그림 속 한 장면 같은데요. 창문의 크기와 위치는 어떻게 결정했나요? 그런 효과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고맙습니다. 더북컴퍼니 건물 외장의 기본 모듈은 폭 1.2m, 높이 3.6m입니다. 창문도 그 모듈을 따라서 가로 폭만 바뀌면서 설치되어 있습니다. 개별적인 창의 위치와 폭은 각 층의 성격에 맞춰 결정했는데, 밖에서 보았을 때 창이 반복적인 패턴으로 보이지 않고 건물의 존재감을 해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층 건물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커튼월 Curtain Wall’ 공법은 외벽 면에 딱 맞춰서 유리가 설치되는데, 더북컴퍼니 사옥의 큰 창문은 외벽 면에서 약 70cm, 작은 창문은 약 20cm로 깊이를 달리하면서 변화를 줬습니다. 이렇게 하면 실내에서 큰 창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아찔한 기분이 들지 않지요. 또 실내에서는 창의 폭만큼 수납공간을 만들 수 있어서 내부를 한결단정하게 정리했습니다. 창틀은 고밀도 목재 패널로 만들어서 실내를 마감한 거친 콘크리트와 대비되도록 했는데, 그 목재 패널의 경계를 따라서 깔끔한 선의 빛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엔이이디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요? 처음 구상 단계에서 시작해서 건물이 완성되려면 건축주와 같이 일하는 직원들, 시공하는 분들에게까지 건축가의 생각이 잘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검토와 설득이 반복되죠. 좋은 건물은 건축가 한 명의 생각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건물과 관계된 모든 이들의 합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완공된 다음에는 건축가의 생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죠. 결국 좋은 건물이란 지금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족하는 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이곳을 어떻게 사용했으면 하나요? 매번 현장에 갈 때마다 아쉬운 점이 보입니다. 더북컴퍼니 임직원들도 그런 부분을 느낄 텐데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짧은 순간이라도 엔이이디가 만든 공간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