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미술 작품이 완성되는 시점이란, 어쩌면 그 작품이 새로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 영원히 유예되는 것일 수도 있다. 프랑수아 패로딘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다.
하나의 미술 작품이 완성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어떤 작가에게 작품의 완성은 작품이 작업실을 떠나는 순간이겠지만, 다른 어떤 작가에게는 작품이 머물게 될 공간과 조응하는 방식, 새로운 관객과 만나는 매 순간이 계속적인 작품의 완성이고, 결론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하학적 추상주의 작가 중 한 사람인 프랑수아 패로딘 François Perrodin은 후자의 경우다. 작품의 개념적 지향이 작업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미니멀한 형태와 색감의 부조 작품 설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새 작품이 최근 완공된 더북컴퍼니 신사옥 영구 전시를 위해 서울에 왔다. 설치 당시 서울에 올 수 없었던 그를 대신해 동료 작가이기도 한 아내 노경화 작가가 직접 설치 현장을 찾았다. 패로딘은 설치 공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완성된 작품을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에 관한 정밀하고 세밀한 ‘설계도’를 보내왔다. 이 역시 작품의 일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설치는 모든 작가에게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작품 설치 지점을 1mm 단위까지 정밀하게 지정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애착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그의 작품 설치 과정이 끝나고 며칠 뒤, 그와 만났다.
관람자와 공간, 오브제 간의 관계성에 중점을 두는 작업을 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특정 장소의 상황 아래 놓인 오브제(작품)는 변화하는 빛의 강약에 따라서 생기는 공간의 음영에 영향을 받습니다. 또한 작품 표면의 컬러가 무광의 매끄러운 표면을 통해 변주되죠. 관람자마다 각기 다른 시간과 거리에서 오브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작품은 필연적으로 다른 여정과 경험의 수만큼 해석이 달라집니다. 관람자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3차원의 공간을 점유하며 2차원의 벽에 설치된 오브제와 끊임없이 쌍방 교류하고 상호작용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체험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관람자의 민감한 주시의 과정에서 가능합니다. 무한한 반응이 감지되고 오감으로 체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브제는 관람자와의 거리 사이에서 매 시각 현재성을 가지고 존재합니다. 또한 시간을 두고 세 요소 간의 관계성을 서서히 인지하는 만큼 보이고 ‘이해되어가는’ 생명력을 담고 있는 작품이지 한순간 모든 것이 파악되는 고정된 작품이 아닙니다.
관람자와 공간, 오브제의 동적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작품에서 각각의 비중 혹은 균형은 어떻게 결정됩니까? 세 요소 간의 유기적 결합은 생명체처럼 유동적이고 불가분한 관계이기 때문에 각각의 비중이 고정될 수 없습니다. 특히 관람자는 스스로 인식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능동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본다’는 의미는 관람자가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오브제와의 거리를 기억하는 동안 이미 오브제가 아니라 관람자의 ‘인지 과정’이 되는 것을 뜻하니까요.
이번 더북컴퍼니 공간에 설치된 작품의 경우, 공간과 관람자를 각각 어떻게 해석했는지 말씀해주세요. 로비 건축 공간은 복층 구조라서 단층 구조보다 공간이 폭넓게 열려 있고 오브제와 공간이 하나로 구축될 수 있는 장점이 많습니다. 이런 공간은 관람자의 인지 영역을 한층 자극하는 구조라서 오브제와 관람자 사이의 시각적 거리, 그 좁은 경계를 절대적 공간으로 확장시켜 공간에 울림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3층과 4층 계단 중간층에 다이내믹한 오브제를 설치했는데 트인 복층 구조에 조명과 함께 넓은 창으로 자연광이 들어와서 무광인 오브제 표면의 컬러를 풍부하게 빚어냅니다. 또한 관람자는 하나씩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미묘하게 다른 시점에서 오브제의 변화를 섬세하게 느낄 것이며 상하좌우 모든 방향에서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에 유동적으로 존재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모빌처럼 움직이고 진동하는 형태와 색을 현장감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형태적으로 중첩된 사각형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미니멀한 기하학 추상 작품은 전체성, 단일성, 불가 분리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강력한 단일 형태나 동일한 단위의 반복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전체성을 구축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정사각형 하나는 단일성, 두 개의 중첩은 좌우 대조를 이루며, 세 개의 중첩은 단위를 반복하는 복수의 시작이 됩니다. 또한 정사각형 크기의 비율 1:2:3, 1:3:2, 2:1:3 같은 연속적인 중첩은 비율의 순서에 따라서 작품 구성이 달라지고 대각선상의 위쪽 사각형 비율이 커질수록 오브제는 다이내믹해집니다. 결국 비율이 다른 동일한 형태의 세 정사각형의 구성과 중첩에 따라서 유기적인 전체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설치 공간을 공명이 있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는 만큼, 컬러에 대한 관객의 시각적 집중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용하는 컬러 전반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나는 세련된 회색 컬러를 좋아하는데 모든 색이 그 안에 들어 있고, 리액티브하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는 회색 작업 시기, 90년대 초반은 컬러 작업, 중ㆍ후반은 검정색,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은 회색과 검정색, 2000년대 중ㆍ후반의 녹검정과 검정색 시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업에 사용된 색상의 조합은 회색, 검정, 흰색,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녹색, 녹회색, 회색이 가미된 보라색인데 각 색상은 회화, 조각, 벽화, 데생 등에 따라서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사용된 컬러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광택이 없는 블루 그레이 Blue Gray를 사용했습니다. 블루 컬러는 색 입체의 검정색과의 관계에서 회색처럼 자신의 기본 축을 잃지 않는 심플한 컬러인 반면 다양한 빛에 따라서 대비를 이루면 오브제 표면에서 아주 풍부한 음영을 섬세하게 연출할 수 있고 동시에 다이내믹함을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컬러입니다. 명확히 표현하자면 작품이 설치된 로비 환경에서 관람자의 동선에 따라 ‘진동하고 변화하는 블루 그레이 컬러’가 내가 사용한 근본적인 컬러입니다.
모든 작가에게 작품의 설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만, 특히 이번 설치를 위한 작가의 노트와 스케치가 정밀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미술 작품은 제작되기 전부터 작가 정신에 의해 모든 상황이 완전히 인식되고 형성되어야 하며 절대적인 명확성을 위해 노력한다는 관점에서 내 작품 제작의 모든 과정은 기하학 추상과 동의어로 이해되는, 아주 체계적인 아트 콩크레의 요소들을 사용하는데 간결한 형태, 컬러,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정교한 표면 기법을 비롯해 아주 치밀한 분석과 준비 과정을 거칩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형태 안에서 무광과 유광 표면의 퀄리티 또는 컬러의 선택 안에서의 비교 등 이 모든 과정이 모여 빈틈없는 결과에 정확히 이르는 것이고 작가가 인식하는 순서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진지하고 섬세한 과정이며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큰 전체로 앙상블을 이뤄 관람자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내가 인식하는 순간이란 작업과 장소의 관계에 대한 것이며 작업 설치와 빛, 관람자의 동선을 고려한 작업의 명확한 설계는 모든 과정에서 치밀하게 기획될 수밖에 없습니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현실의 경험과 작업의 관계성을 발전시킬 생각입니다. 간결하고 엄격한 형태로 세련된 공간 개념을 더욱 확장시키고 특히 일련의 반복과 연작 시리즈를 통해서 작품의 디스플레이에 대한 고정관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