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삶을 청산하고 나를 위한 여행의 시작지로 집 꾸미기를 선택한 패션계 종사자 김명희 씨. 미니멀하지만 화려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준 패션을 보듯 감각적인 집을 소개한다.
북유럽 스타일의 편안함은 추구하되 고루하지 않은 세련미를 갖춘 거실.
30여 년 동안 국내 패션 시장을 이끌어온 김명희 씨.
자칫 허전해 보일 수 있는 복도에는 환상적인 빛을 내는 글라스 이탈리아의 시머 거울과 벽에 기대는 테이블을 배치했다.
지난 30여 년간 패션계에서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커리어우먼 김명희 씨. 논노, 동일레나운, 앤클라인, 진도, 쏠레지아, 쉬즈미스, 크로커다일 등에서 일하며 국내 패션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어온 그녀는 얼마 전 형지어패럴 전무 직함을 끝으로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 일에 파묻혀 사는 워커홀릭이었지만 세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80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말 그대로 일인 다역을 척척 해내는 슈퍼우먼으로 살아왔다.
“남편과 연애할 때도 하염없이 걷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돈이 없었던 거죠.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지만 양가 집안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서 회사에서 잘리면 안 된다는 생각만으로 죽도록 일만 했어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더니 어느새 나이가 훌쩍 들어 있더라고요. 일적으로는 목표치에 도달했지만 건강과 가정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어요.”
잠시 삶에서 쉼표를 찍은 그녀는 1, 2년간은 가족에게 봉사하는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었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요리 학원에 다니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엄마도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릇을 하나 사려고 들렀던 이도에서 우연히 최수정 이사를 만났고, 얼마 후 그녀가 공간 스타일링을 전문으로 하는 ‘to life’라는 회사를 차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최수정 이사는 패션계에서 20여 년 동안 VMD, 광고, 마케팅 총괄로 일했고 라이프스타일에도 관심이 많아 이도에서 3년간 일했다. 그리고 얼마 전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디렉터라는 새이름을 달고 활동 중이다.
선이 아름다운 플로스의 IC 라이트 F를 설치해 간결하지만 멋스러운 침실을 연출했다.
소파 앞으로는 집주인의 간이 서재를 마련했다. 이 공간에서 간단한 업무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우연히 만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김명희 씨의 이사 소식은 최수정 이사에게는 홈 스타일링의 기회를, 김명희 씨에게는 새로운 삶을 위한 아지트를 만들어줬다. 도배만 하고 이사 온 도곡동에 위치한 247㎡의 아파트에는 부부와 세 아이 그리고 시어머니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고 있다 . 홈 스타일링에 앞서 최수정 이사는 이 집의 컨셉트를 ‘개성 있는 북유럽 스타일’로 정했다. “집은 매일 있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보기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북유럽 가구로 편안함의 베이스를 깔았고 패셔너블한 가구를 첨가해 SNS에 떠돌아다니는 교과서 같은 북유럽 스타일을 탈피하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디자이너의 집에는 디자이너의 아트피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디자이너들의 가구와 조명을 선택했죠.”
세 아이는 모두 유학을 떠나 있는 상태로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소가구나 의자를 새것으로 바꾸어주었다.
거실은 심플하고 편안한 북유럽 스타일로 꾸몄는데 보컨셉의 소파 옆으로는 리클라이너 체어를 배치해 눈으로도 편안함을 즐길 수 있게 했고 거실과 맞닿아 있는 복도에는 신비로운 색감을 내는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의 시머 테이블과 거울을 배치해 포인트를 줬다. 프리츠한센의 그랑프리 체어로 멋을 낸 주방에는 톰 딕슨의 멜팅 조명을 달아 의자와는 상반된 매력으로 힘을 줬다. 최수정 이사는 “마치 심플한 옷에 화려한 목걸이나 브로치로 포인트를 준 룩을 보듯 이런 스타일을 집 안에 적용해봤어요”라고 말한다. “남편은 이제야 집다운 집에서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요. 아이들은 집이 호텔 같다고 해요. 남편은 LED 조명을 만드는 회사 탑라이트 사장인데 우리 집에 들어와 있는 조명을 보고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렸죠. 조명쟁이 와이프가 다른 조명을 샀다는 거죠. 저게 과연 제 기능을 할까 하는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에 분위기를 이끌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역할을 하는 조명을 즐기더라고요.” 김명희 씨도 처음에는 의자 하나에 1백 만원을 호가하는 값에 혀를 내둘렀다. “유행하는 옷이나 패션 소품을 한 트럭으로 실어 나를 만큼 쇼핑했어요. 그런데 막상 가구를 사려니 선뜻 지갑이 열리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최수정 이사의 도움으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가구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런 생각이 확 바뀌었어요.”
공간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는 김명희 씨의 가족 . 워킹우먼 엄마도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명희 씨는 이 집에서 삶의 제2막을 위한 멋진 경험을 새롭게 구상 중이다.
톰 딕슨의 멜팅 펜던트 조명을 달아 낮과 밤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반전이 있는 주방.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오리지널리티를 느낄 수 있는 프리츠한센의 그랑프리 체어를 배치해 가구 하나로 이야기를 이끌 수 있는 공간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