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재우 소장의 집은 미드센트리 시대의 모던한 디자인 가구로 채워져 있다. 재택근무를 하기에 최적화된 이곳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아내와 공들여 꾸민 세 식구의 집이다.
미드센트리 시대의 모던한 가구로 라운지처럼 연출한 거실. 거실 창가 앞에는 사무를 볼 수 있는 긴 테이블을 두었다.
박재우 소장이 만든 벤치에 앉은 부부와 아들 성빈이.
공간 디자인 회사 ‘수퍼 파이 디자인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박재우 소장의 대구 집을 찾았다 . 건축+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그는 대구 사람이라면 한 번은 가봤다는 유명 카페 ‘텀트리’를 디자인했고 굵직한 기업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많은, 업계에서 제법 알아주는 디자이너다. 그가 직접 디자인한 이 집은 과거 지인의 집 다음으로 처음 맡은 주거 공간이다. 아내 윤지영 씨와 여덟 살 아들 성빈이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하면서 그는 이 집이 시간적인 의미에서 클래식하다고 설명했다. 클래식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보통 곡선이 많고 화려한 디자인을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 집을 메우고 있는 가구는 대부분 한눈에 보기에도 모던하지만 이미 1950~60년대에 소개된 디자인이다. 프리츠 한센, 칼한센앤선즈, 아르텍, 플로스 등 요즘 특히 인기가 많은 미드센트리 시대의 디자인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클래식으로 불릴 날이 올 것이다.
칼한센앤선즈의 CH 88 체어를 둔 식탁. 뒤에 수납장처럼 보이는 문은 냉장고로, 일부러 가구처럼 문을 제작했다.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벽에 둔 앤트 체어가 조명과 어우러져 작품처럼 보인다.
거실 책상에서 바라본 다이닝 공간. 주방에 상부장이 없어서 시원해 보인다.
“이 건물은 내력벽이 거의 없어서 벽 자체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주방 쪽 벽을 제외하고는 벽을 거의 새로 세웠어요. 직각을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모서리마다 철판으로 각을 잡았어요.” 박재우 소장이 벽 모서리에 자석을 붙이며 설명했다. 공간을 꾸미는 데는 아내의 일조도 컸다(슈퍼 파이 디자인 스튜디오란 이름도 아내가 지어준 것이다). 보통 그가 설계한 공간에 들어갈 가구나 조명 같은 아이템은 아내의 도움을 받곤 하는데 집에 놓일 가구도 한 마음으로 고른 것들이다. 결혼 전 남편의 취미이기도했던 빈티지 오디오도 많고 침실에는 어머니가 주신 아름다운 컬러의 자개장이 있지만 그 외의 가구나 조명은 모던함 그 자체다. 벽을 새로 세우면서 공간도 원하는대로 구성했다. 아들 성빈이의 방 옆에는 유리문을 단 서재 공간을 만들었다. 박재우 소장은 혼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주로 재택근무를 하거나 현장을 나가는 일이 많아 거실에 넓은 책상을 두어 사무를 볼 수 있도록 했고 조용하게 책을 보거나 일하고 싶을 때는 서재를 사용한다. 아빠를 닮아 손재주가 좋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성빈이를 위한 레고 방도 별도로 있다. 뭐든 마음껏 만들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인데 성빈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라 레고 인형의 모자만 바뀌어도 단번에 알아차린다고. 이 집이 조금 달라 보이는 데는 주방도 한몫한다. 원래 모습대로 각이 진 벽은 그대로 두었지만 상부 수납장을 만들지 않고 하부장만 만들었는데 공간이 훨씬 시원하고 색다르게 보인다. 주방과 이어진 넓은 거실에는 유난히 의자가 많다. 오래전 구입해 리폼한 의자부터 직접 제작한 테이블, PK 라운지 체어와 임스 체어 등 다양한 디자인과 브랜드가 섞여 있지만 미드센트리 시대의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창문이 많아 빛이 잘 드는 거실에 갤러리처럼 놓인 의자들은 가치를 인정받은 집 안에서 더욱 빛이 났다.
빠와 함께 레고부터 다양한 만들기를 할 수 있는 레고 방. 성빈이가 좋아하는 레고가 가득하다.
디자인 가구로 꾸민 아들 방.
슬라이딩 도어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서재. 앤트 체어와 그랑프리 체어, 아르텍의 펜던트 조명이 어우러져 부티크 서점같이 고급스럽다.
박재우 소장은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30대가 넘어서야 진짜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적성을 깨닫고 공간 디자인을 독학으로 배웠다. 아직도 배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그가 직접 살 집을 설계한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제가 만든 공간이기 때문에 눈에 밟히는 게 많죠. 아마 예산이 넉넉했다면 모두 탕진했을 정도로 계속 손을 댔을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집요하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인데 적정선에서 타협을 찾았죠.” 원하는 벽과 마이너스 몰딩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1mm에도 신경을 곤두세웠을 만큼 애정과 노력을 쏟아부은 박재우 소장의 눈에는 아쉬운 것이 많다. 하지만 그런 그의 스타일과 성향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아내와 아들 성빈이가 함께하기에 이 집은 그래서 완벽해졌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자개장과 카트텔의 클래식한 부지 조명이 어우러진 부부 침실. 다른 공간에 비해 클래식한 센스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