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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스타일의 부활
최근 국내에서도 비너스나 석고상 오브제가 인기를 끌고 있고, 집에 설치하는 중문이나 쇼룸의 창문에도 아치 형태가 유행하는 등 고대 로마와 그리스 스타일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도 성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신화적인 모티프가 적용된 디자인이 많았다. 형태로는 단연 아치 형태가 주를 이뤘다. 카펫 브랜드 씨씨타피스 CC-Tapis는 부스 전체를 신전처럼 아치 형태로 꾸며 올해의 부스 디자인상을 받았다.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시작된 아치 형태는 순식간에 공간을 신비롭고 클래식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늘과 구름, 신화를 연상시키는 제품 디자인과 푸르스름한 컬러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제품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선사했다.
말캉한 헤드보드
편안하고 질 좋은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침실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침구에 이어 침대 디자인에도 휴식과 힐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는 특히 침대 헤드보드에서 편안함의 키워드를 읽을 수 있었다. 딱딱하고 각이 진 헤드보드가 아닌 패브릭 소재를 사용한 제품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 패브릭은 소재의 특성상 나무나 금속보다 푹신하며 다양한 형태로 변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컬러와 패턴을 적용할 수 있어 침실에 포인트를 주기에도 제격이다. 침실에서만큼은 몸의 힘을 빼고, 편하게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헤드보드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탈경계에 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임태희 소장은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언제부턴가 일과 사생활, 개인과 공공의 범주가 허물어지고 있다. 회사에는 쉬거나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고, 카페는 일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식탁은 필요에 따라 작업대가 된다. 스위스의 모듈 가구 브랜드 USM은 라이프스타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와 같은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스마트 시대가 우리 삶의 경계를 허물고, 경계 언저리에서 방황하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이 전시는 경계에 대한 이탈의 메시지를 던졌다. 가구는 공간이 되고, 때로는 건축이 되며 또 우주가 되기도 하는 부스 연출은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5차원 같았다. 탈경계에 선 우리의 모습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전시가 아닐까.”
극과극 플라워 데커레이션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이 대비되는 현상은 비단 인테리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난 플라워 데코 연출도 대조를 이뤘기 때문. 한두 송이씩 라인을 살려 동양적이고 심플하게 연출하는 방법과 다양한 꽃을 한데 모아서 풍성하고 맥시멀하게 연출하는 방식이 공존했다. 난이나 반다처럼 동양적인 분위기의 꽃이 인기였고, 한 가지 꽃과 한 가지 컬러만으로도 감각적인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았다. 구비 Gubi 전시의 플라워 데코처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스타일리스트 민송이 실장은 “클래식한 감성을 끌어들인 구비의 신제품 컬렉션과 전시 공간은 플라워 연출로 더욱 돋보였어요. 모양을 잡아서 연출했다기보다 어울리는 컬러를 조합한 꽃을 풍성하고 대담하게 연출해 클래식한 공간에 더없이 잘 어울렸어요”라며 가구 못지않게 감각적인 플라워 데코가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SOFT IS SMART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구글은 로사나 오를란디 갤러리에서 <소프트웨어 Softwear>전을 선보였다. 구글은 텍스타일 같은 소재를 통해 어떻게 하면 컴퓨터 하드웨어가 자연스레 일상으로 녹아들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구글의 <소프트웨어>전을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시로 꼽은 김희원 작가는 “AI가 적용되는 디지털 시대의 시대성을 부드러운 감성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한 접근이 인상 깊었다. 새로운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찰하는 모습을 표현한 감수성과 취향이 남다르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CLASSIC + ELECTRIC CONTEMPORARY
인테리어 디자이너 강정선은 <보그> 이탈리아의 사무실에서 열린 <Life in Vogue> 전시를 주의 깊게 봤다. 세계적인 거장 디자이너가 참여했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곳은 떠오르는 듀오 디자이너 데이비드 로페즈 퀸코세스 David Lopez Quincoces와 페니 바우어 그렁 Fanny Bauer Grung이 디자인한 공간은 현재의 라이프스타일 방향을 제시하는 듯했다. 이 공간에서는 트렌드를 좇는 가구가 아닌 나만의 컬렉트 피스를 공간에 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현대적인 재료와 클래식한 물성에 대한 고민이 디자이너 제품과 조화를 이뤘다. 예컨대 차갑게 느껴지는 스틸 재료와 타임리스 가구인 피에르 잔느레 체어,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은 사하라 매트까지 무엇을 컬렉션하느냐가 공간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동심을 자극하는 아날로그 컬러
덴스크 김효진 대표는 올해 밀라노에서 열린 많은 전시가 대체로 무채색과 미니멀리즘에 익숙한 트렌드에서 벗어나 색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 던진 다양한 색채의 향연을 펼쳤다고 언급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공간은 이탈리아 아트 시장을 움직이는 거장 니나 야사르 Nina Yashar가 운영하는 ‘케츠 니나 Chez Nina’ 클럽으로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인디아 마다비 India mahdavi의 솜씨로 탄생됐다. 이란 태생으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아 마다비는 그녀만의 독특하면서도 과감한 색채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런던 스케치의 더 갤러리 공간을 핑크빛 가득한 오묘한 그녀만의 감성으로 채운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그녀의 과감한 색채와 함께 신비롭게 어우러지는 컬러와 패턴으로 이뤄진 공간은 닐루파 갤러리 소장의 빈티지 가구와 함께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었으며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의 동심을 자극하는 색채와 여성적인 가구는 어른들의 놀이터인 클럽에서 동심에 젖은 감성이 오가는 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INTO THE WILD
동물 모티프는 매년 빠지지 않고 컬렉션이나 각종 전시에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그 방식과 스타일이 매번 달라서 더욱 흥미로운 요소이다. 올해는 야생에 한발 더 다가선 느낌이었다. 애써 캐릭터처럼 단순화하거나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 디자인이 많았다. 동물의 한 부분을 크게 확대해 패턴처럼 보여주거나 사실적인 동물 그림이나 형태를 패브릭이나 오브제로 적용하는 등 ‘날것’의 느낌을 강조한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는 오리엔탈리즘
글로벌 트렌드로 손꼽히는 오리엔탈 스타일은 맥시멀리즘의 유행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흐름이 감지되었던 대표적인 예는 이탈리아의 가구 브랜드 카펠리니 매장에서 열린 전시 <집시 Gypsy>였다. 일본과 중국 스타일을 가미해 동양적인 감성을 불어넣은 공간은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기 충분했다. 미쏘니 홈에서는 십이지신을 모티프로 한 카펫과 쿠션을 출시했는데,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흥미로운 디자인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은 혜성처럼 나타난 경향은 아니지만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감성적인 데커레이션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다.
DANISH RED
에스하우츠 이인선 대표는 북유럽의 색채 트렌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덴마크에서는 컬러에 대한 표현을 대니시 크로마티즘 Danish Chromatism이라 정의하는데, 자연에서 발췌한 컬러가 많아 자연에 대한 덴마크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번 몬타나 부스를 물들인 레드 컬러는 덴마크에서 생산되는 각종 베리, 예를 들면 크랜베리, 스트로베리, 라즈베리, 블랙베리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몬타나 부스를 디자인한 헬레나 라우르센 Helena Laursen은 모듈 시스템 가구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우는 컬러로 레드를 선택했고, 로 피에라 전시장의 부스 중 컬러를 가장 잘 사용한 브랜드에 수여하는 최고의 상도 거머쥐었다. 북유럽 스타일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경쾌하게 깨버린 몬타나 부스는 앞으로 달라질 북유럽 스타일에 대한 신호탄과도 같았다.”
FURNITURE AS HIGH ART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지은은 아트 퍼니처에 주목했다. “기능적 한계에서 탈피한 하나의 아트피스를 연상시키는 가구를 보며 마치 현대미술관을 거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해외 유수의 예술품 경매에서 예술 가구 시장이 점차 확대되어가는 이유를 단지 경제적인 것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대한 대화가 늘어남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기능을 가진 장식용 예술의 일부로 여겨진 가구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예술의 분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궁금증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과감한 형태, 소재, 컬러로 심미적 경험을 선사하는 아트 퍼니처의 성장은 그야말로 무한대이다.”
작은 집이라 행복해요
자동차 브랜드 미니 MINI에서 진행하는 미니 리빙 MINI Living 프로젝트에서는 올해 <All by Built> 전시를 통해 주택에 대한 포괄적인 고찰을 보여줬다. 미니 리빙은 런던의 건축 회사인 스튜디오마마 Studiomama와 협업해 집주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모듈형 생활 공간을 완성했다. 집이 곧 사는 사람을 대변한다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공간이다. 스튜디오마마가 선보인 모듈 형태의 집은 각 공간이 스크린으로 둘러 있어 원할 때는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고, 운동 시설이나 부엌, AV룸은 공유할 수 있다. 취향이 다른 4명의 집주인을 위한 공간은 컬러와 각기 다른 가구 구성으로 차별화했다. 예를 들어 음악 프로듀서를 위한 블루 컬러의 집에는 간이 녹음실과 음반을 보관할 수 있는 선반이 갖춰져 있다. 각 공간이 콤팩트한 것도 새로운 주택 트렌드를 반영한다. 루밍 박근하 대표는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작은 공간이라고 해서 큰 공간에 비해 아름답지 않을 이유는 없다. 아르텍 Artek은 로 피에라에서 모눈종이 위에 가구를 배치해 작지만 세련된 공간을 연출했다. 공간 내부를 디자인으로 채운다면 작은 공간도 얼마든지 멋스러울 수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다”며 무조건 넓은 집보다는 작아도 집주인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집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3D 프린팅으로 집짓기
엔지니어링 회사 아룹 Arup과 건축 스튜디오 CLS 아키테티 Architetti는 밀라노 체사레 베카리아 광장에 실제 크기의 집을 지었다. 놀라운 것은 이 집을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특수 콘크리트와 네덜란드의 3D 프린팅 회사에서 만든 집은 거실, 침실, 주방 및 욕실이 있어 당장 살아도 될 만큼 정교하다. 이런 3D 프린팅 집을 실생활에 적용하게 된다면 건축 폐기물을 줄일 수 있고 어디든 원하는 곳에 집을 지을 수 있다. 환경보호 차원이나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위해서도 꽤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미래에는 내가 원하는 집을 일주일 만에 3D 프린팅으로 뚝딱 지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건축가가 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