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Chance
집처럼 편안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으로 한정 짓기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어느 세컨드 하우스를 찾았다. 품고 있는 공간마다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양파 같은 이 집의 화두는 라이프스타일과 교감이다.
세컨드 하우스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공간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미건설 이혜영 전무의 세컨드 하우스는 공간마다 목적 의식이 뚜렷했다. 시작은 아들의 음악 작업실이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아들이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연습실 겸 스튜디오가 필요했어요. 아파트에서는 한계가 있었죠. 그러다 좋은 기회에 건물을 구입하게 됐고, 4층과 5층을 세컨드 하우스로 꾸몄어요.
4층에는 문만 닫으면 안에서 잠도 자고, 연습도 하고, 요리도 할 수 있는 부엌까지 달린 ‘스튜디오 동피노’를 만들었죠. 동피노는 아들의 별명이에요.” ‘혜움’이란 이름을 붙인 건물 4층에는 문화적인 경험을 위한 ‘살롱 피오니’, 아들의 음악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 동피노’가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게스트룸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락’과 와인과 책, 옷을 수납한 ‘캐비닛’ 공간이 나온다. 음악을 하지 않는 이들도 탐낼 만한 멋스러운 작업실이다. 두툼한 방음 소재로 둘러싼 연습실은 물론 프리츠 한센의 세븐 체어나 스메그 냉장고가 있긴 했지만 침실부터 특히 세로로 길게 낸 주방은 모두 이케아 제품이다.
이혜영 전무는 조리 도구 하나, 부품 하나까지도 모두 이케아 제품을 직접 구입해 젊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리시한 주방을 완성했다. “엄마의 이런 노력을 알까요?(웃음) 음악을 하는 20대 남성의 작업실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컬러도 최대한 무채색 계열로 맞추고 작업하다 요기를 할 수 있게 만든 주방은 스테인리스 소재를 사용해 분위기를 맞췄죠. 살롱 공간에 놓인 고가의 주방보다 이 주방을 탐내는 이들이 훨씬 많더라고요.” 이혜영 전무는 시작은 아들의 음악실을 위한 것이었지만 아파트를 짓고, 단지를 조성하고, 연구하면서 느꼈던 갈증을 이 공간에서 해소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기획부터 설렘을 안고 시작 한 세컨드 하우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좋아하는 한홍일 작가의 ‘일장춘몽’ 작품이 놓인 ‘살롱 피오니’는 와인 클래스부터 아트 클래스, 소규모의 프라이빗한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하면서 그 중심에는 주방을 두었다. “셰프부터 요리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와서 요리를 하고, 함께 음식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에요. 주방이 중심이 된 오피스 공간을 본 적이 있는데 음식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소비자와 생산자까지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주방이더라고요. 결국 ‘라이프스타일’과 ‘공유’가 요즘 시대의 화두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주방이 더욱 중요해졌지요.” 문화와 사람이 교류할 수 있는 이곳에 붙인 살롱이란 수식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허명욱 작가의 ‘아톰’이 안내하는 계단을 오르면 벽에 걸린 박진희 작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노준 작가, 김지연 작가 등의 크고 작은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공간에 꼭 맞는 작품이 들어서니 공간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생기가 감돌았다. 계단에 오르면 양쪽으로 ‘다락’과 ‘캐비닛’ 공간으로 나뉜다. 다락은 손님이 왔을 때 자고 갈 수 있는 게스트룸으로, 일본 브랜드 무지의 호텔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무지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실용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좋아하는 이혜영 전무는 그 느낌을 ‘다락’ 공간에 유감없이 반영했다. 부드러운 나무색과 무광의 흰색 타일로 마감한 욕실, 박공지붕 형태로 모양을 낸 창문까지 누구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식처다. 마주 보고 있는 ‘캐비닛’ 공간에는 와인과 책, 옷을 수납했다. 와인 애호가인 이혜영 전무는 방문한 이들이 기념 사진을 찍을 정도로 와인 공간을 놀라워한다는 흐뭇한 이야기도 전했다. 붉은 벽돌로 마감하고 모듈로 구성할 수 있는 책장으로 채운 서재와 블랙&화이트 컨셉트의 드레스룸 역시 디테일의 최강을 보여주는 곳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세컨드 하우스는 원래의 집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이혜영 전무의 세컨드 하우스는 휴식의 기능을 넘어선 교감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엄마와 아들과의 교감, 이곳을 찾고, 머무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교감이 결국 이 공간을 완성하는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