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binet of CURIOSITY
인테리어 디자이너 강정선 대표가 첫 사무실을 오픈했다. 한남동 언덕에 위치한 그녀의 공간은 회사 이름인 ‘엘세드지’처럼 색다르면서도 아름다운 스타일을 찾기 위해 호기심을 놓지 않고 있었다.
‘세련됐다’는 말은 왠지 불편하다. 억지로 치장한 느낌이랄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배에 힘을 꽉 주고 있어야 할 것처럼 숨이 막힌다. ‘자연스럽다’는 표현과 놓고 비교하자면 둘은 분명 머나먼 양극단에 있다. 그런데 강정선 대표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왠지 두 단어를 묶어놓고 싶어졌다.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져 마침내 단단한 돌에 굴곡을 이뤄내듯, 오랜 시간 감각이 무르익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람. 그렇게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세련된 사람. 그 바탕에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호기심이 있었다.
한남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강정선 대표를 만났다. 오후 2시의 사무실은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셨고, 우리는 딱히 의자에 앉지도 않았다. 사무실 창가에 무심히 걸터앉아 이따금씩 빵을 오물대며 교토나 리스본 같은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공유했다.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것을 제안하려면 저부터 많이 봐야 하잖아요. 저는 여행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최근에는 리스본이 굉장히 좋았어요. 일을 너무 많이 하다가 갔던 거라서 도시를 공부하지 않고 무작정 갔거든요. 그래서 더 좋았어요. 전차를 타고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코스 끝까지 가보기도 하고요. 아, 산타클라라 1728이라는 호텔에 묵었는데, 꼭 가보세요. 아침엔 셰프가 코스로 조식을 차려주는데 너무 맛있고요. 이 대리석으로 된 욕조 좀 보세요. 이 호텔을 위해 주문 제작했다는데 너무 예쁘죠?” 그녀는 핸드폰 속 사진첩을 뒤적이며 피터 줌터 Peter Zumther가 디자인한 스위스의 발스 온천이나 작은 물건도 정성껏 만드는 교토, 최근 작업 차 방문했던 제주에서의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설렘 가득한 어투로 말이다.
최근에 입주를 마쳐서 아직도 희미하게 공사 소리가 들려오는 사무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세계적인 건축가 조민석 소장이 지은 4층 구조의 건물에는 조민석 소장을 포함하여 여배우들의 이재용 감독 등 유명 이웃이 자리 잡았고, 그 건물 3층에 강 대표에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은 두 개의 큰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나는 강 대표가 온전히 사무를 보는 곳, 다른 하나는 클라이언트한테 좋은 가구와 물건을 보여주며 스타일을 제안하는 라운지로 쓴다고 했다. 회사의 이름은 엘세드지. L’appartement -curiosités de Jungsun의 약자로, 호기심 있는 공간을 뜻한다. “제가 호기심이 있어야 클라이언트들에게 제안도 하니까요. 그래서 클라이언트들의 집을 공사할 때는 제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해요(웃음).”
하지만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좋아하던 일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테리어 업계에서 오랜 시간 일해온 강정선 대표는 어떤 마음일까. 여전히 사회 초년생 같은 설렘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런데 저는 하는 일이 계속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처음에는 학교에서 강의만 했었는데 <메종>과 화보를 촬영하게 됐고, 그다음엔 <보그>나 <바자> 같은 패션지에서 세트 스타일리스트로도 일했죠.” 그때의 기억은 너무나 즐겁고 유쾌했다. 인테리어 화보의 경우 의자가 본래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했다면 패션지는 의자를 엎고, 천장까지 50 개 이상 잔뜩 쌓아올리는 것도 용인되었다. 맥시멀리즘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후에는 갤러리나 뮤지엄, 백화점 같은 상업 공간 영역을 넓혀 디스플레이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집 공사를 맡아 기능과 인간의 행태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큰 맥락에선 같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녀에겐 모두 새로운 일이었다. 강정선 대표는 여전히 새로운 일을 좋아하고, 이유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힘들어 한다. 어릴 때는 칠판에 빼곡히 적힌 선생님의 필기 내용을 받아써야 하는 이유를 몰라, 한 시간 넘게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반항했던 적도 있었다고. “그런 삐딱선이 좀 있었어요(웃음).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게 너무 싫어요. 지금도 같은 길로 다니는 것이 싫어서 집에 갈 때도 항상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거든요. 물론 새로운 것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있죠. 그런데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뭔가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하나의 커다란 트렌드로만 흐르는 인테리어 시장에서 조금은 색다른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을까. 강정선 대표가 엘세드지에서 만들어낼 다채로운 컬러가, 이제는 조금 지루해진 서울에 다채로운 스타일을 더해줄 그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