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처럼 지대가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은석, 황선영 부부의 집은 아파트지만 손수 매만져 단독주택 같은 집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셀프 인테리어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 이 집의 변천사가 꽤 흥미롭다.
잡지 기자 출신인 이은석, 황선영 부부의 신혼집은 많은 이들이 방문 의사를 내비쳤을 만큼 종종 화젯거리였다. ‘아직 화장실 공사는 못했대. 근데 거실이 진짜 일본 집 같아’라는 식이었다. 이은석 씨는 굵직한 잡지 몇 개를 거쳐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퇴사한 뒤 콘텐츠와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다루는 ‘상점 학과 꽃(Tsurutohana)’의 기획자로 자신만이 길을 걷고 있고, 아내인 황선영 씨 역시 휴식이 필요해 두어 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스 매거진 에디터가 됐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즐거운 경험이 시작됐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 파티션을 중문으로 착각해 열려고 했던 것. 문을 열면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 싫어서 만든 벽 같은 장치라고 한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왼쪽의 다다미가 깔린 단층이 있는 복도를 지나야 한다. 신발을 벗고 다다미에 발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 집이다.
“2년 동안 살던 신혼집에서 이사를 해야 했어요. 아파트는 저희 감성에 맞지 않았지만 거실 창문을 통해 녹음을 보고는 여기 정도면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아파트 생활을 해야 했지만 109m2의 아파트를 단독주택처럼 바꿔보기로 했다. 이사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집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당은 없지만 거실 창가에 많은 식물을 두었고, 베란다를 확장하며 드러난 내력벽 기둥에는 나무를 덧댔다. 바닥부터 벽의 일부, 주방의 나왕합판까지 나무는 이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그 덕분에 집 안에 온기가 감돌고 포근해 보이는 효과도 있다. 나무 컬러의 긴 블라인드를 세로로 내리고 패브릭 소파와 의자를 옹기종기 모아두니 분위기는 한층 아늑해졌고, 뒤로 보이는 다다미 단층까지 힘을 보태 이곳이 9층 아파트임을 잊게 만들었다. 놀라운 것은 바닥과 도배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구를 배운 경력이 있는 손재주 좋은 남편이 도맡았다는 것이다.
“바닥도 원하는 정렬 방식이 있어서 공사 인부에게 부탁드렸는데, 왜 그렇게 힘들게 하냐며 이런 시공은 처음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혼자 집을 고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이사를 하고 나서 시작된 공사라 처음에는 서재에서 잠을 자다 침실이 완성되면 짐을 옮기는 식이었죠(웃음). 타일을 직접 붙이느라 정말 애를 먹기도 했는데, 특히 세면대 부분에 붙인 일본 모자이크 타일은 망이 아닌 종이에 붙어 있어서 생소하더라고요”라며 이은석 씨는 그동안 살았던 사람들이 몇 겹씩 덧대온 침실의 벽지를 뜯었던 작업은 괜히 했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나왕합판과 스테인리스 소재로 만든 주방과 후드, 거실에 놓인 나무 장과 의자, 서재에 놓인 부부를 위한 책상과 책장도 그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것들로 치수까지 꼼꼼하게 적어서 의뢰했던 도면을 간직하고 있을 만큼 애착이 깊다. 이은석 씨는 직업상 아내보다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요리부터 살림에 더 많은 비중을 담당해왔다. 때문에 넓고 깊은 개수대, 이사를 다녀도 언제든 모듈형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든 2단 책장, 동선에 맞게 실용적으로 모아둔 행잉 양념통 바스켓 등 보통 눈썰미와 생활력으로는 알 수 없는 디테일을 발견하는 것이 이 집의 진짜 매력이다. 특히 좁은 화장실에서 세면대가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기 위해 카운터 톱 세면대로 시공하고 포인트 타일을 붙여야 해서 옆으로 뺀 수전을 사용할 때 물이 튀지 않도록 앞부분이 긴 특수한 수전을 찾아서 달았다는 대목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아무리 집주인이어도 집에 대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시공하는 이는 없을 거라며 말이다. “현관 앞에 설치한 파티션 윗부분을 한지로 막아야 하고요, 침실에도 덧창과 붙박이장을 만들어야 해요. 서재방 창문 역시 너무 올드한 느낌이라 교체해야 하고요. 언제 다 하죠?(웃음)” 이은석 씨가 머쓱해하며 말했다.
남편이 진행하는 공사를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아내의 인내심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제가 성격이 무던하고 예민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바쁘게 지내기도 했고, 자고 일어나면 뭔가 바뀌어 있고 완성되어 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신혼 때 살았던 미국 스타일의 맨션이 작은 마당도 있고 구조도 재미있어서 추억이 많았거든요. 이 집도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빈티지 유리 오브제, 여행지에서 주워 온 작은 돌, 좋아하는 작가의 그릇, 좋아하는 CD, 추억이 담긴 조명과 가구들은 그 어느 유명한 작가의 작품 부럽지 않게 이 집에서 빛이 난다. 늦은 오후가 되니 거실에 긴 햇살이 늘어졌다. 부부는 유기견이었던 퐄키, 쟄키와 함께 살고 있다. 적당히 낡아 부드러워진 소파 위에서 곤히 자는 두 마리의 강아지마저도 집과 꼭 어울린다. 부부는 2년 후에는 아파트를 떠나 진짜 단독주택으로 가고 싶다는 희망 사항을 전했다. 벌써부터 이 집에 들어올 행운아가 부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