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텍츠 601 심근영 소장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으로 아파트에서 벗어나 집을 지었다. 두 세대가 사는 단독주택은 창을 통해 자연을 즐길 수 있고, 개방성과 우회적인 폐쇄성을 동시에 지닌 기능적인 집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천장. 7m 높이의 천장에서 내려오는 은은한 햇살이 계단 공간을 부드럽게 만든다.
삼각형 대지였지만 직사각형의 긴 집이 지어졌다. Ⓒ박영채
건축 디자이너인 아내와 목가구를 만드는 남편은 항상 세 가지 질문을 생각했다. 어디에서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들 부부가 살고 있는 번화한 도심에서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파트에 살면서 ‘내 집’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유학을 꿈꾸기도 해서 더욱 이 집에 애정을 쏟지 못했죠. 주말에도 집에서 누워 있기 바빴으니까요(웃음).” 실내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굵직하고 무거운 선을 다루는 건축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아키텍츠 601 심근영 소장이 말했다. 더 늦기 전에 집을 짓기로 결심한 부부는 남편의 빠른 추진력으로 판교에 있는 땅을 알아보았고, 약 3개월의 설계 기간과 8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집을 완성했다. 아내는 설계를 맡았고, 집에 들어가는 모든 새로운 가구는 남편이 제작했다. 백고벽돌로 외관을 단장한 이 집은 현관이 두 개다. 하나는 부부와 아들이 사는 1층 문이고, 그 옆의 현관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이어지는데 시어머니가 혼자 사시는 집이다. “위층에 시어머니가 사시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집의 입구도 다르고 동선이 겹칠 일이 없어서 불편함이 없어요. 2개의 층이 느낌도 다르고 각기 장점도 분명해요.”
옥상으로 통하는 2층의 계단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
거실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기둥은 지지대 역할을 해서 없앨 수 없었지만 오히려 공간에 색다른 요소가 됐다. 나무 가구를 위주로 단정하게 꾸민 2층 시어머니의 공간.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작은 방은 빛이 잘 들고 ㄱ자 형태의 창문이 독특해 시어머니의 개인 서재로 꾸밀 예정이다.
심근영 소장은 설계를 하면서 1층은 큰 창을 통해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차경을 채택했고, 2층은 옥상으로 이어지는 긴 계단과 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창문을 만들었다. 1층에서 아이 방과 침실을 제외한 공간은 주방과 거실뿐이다. 대신 주방과 거실을 한 공간에 두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식탁 겸 때로는 간이 책상이 되기도 하는 긴 테이블을 두었다. 손님 접대가 잦은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남편이 만든 것이다. 거실과 주방을 오가거나 침실을 들락거릴 때는 낮은 몇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선의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별도의 드레스룸을 둘 수 없어 침실에 옷장과 침대를 함께 두었다. 대신 옷장의 색깔을 벽처럼 보이도록 회색으로 제작해 오히려 아늑한 침실이 되었다. 머리를 두는 방향으로 큰 창문을 내고, 옆으로 긴 직사각형 창을 만들어 바깥의 나무들이 계절마다 액자 속 그림처럼 보이도록 한 것은 심근영 소장의 한 수였다.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1층과 2층 모두 공간에서 공간으로 넘어갈 때 복도같은 통로를 지나야 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내부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2층은 현관문을 열면 7m 천장에서 내려오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햇빛을 느끼며 계단을 올라갈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이처럼 아파트의 밋밋한 구조에서 벗어나 동선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은 단독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크나큰 매력일 것이다.
주방과 거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심근영, 정동원 씨 부부. 긴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남편이 직접 만든 것이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일하면서도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박영채
오래된 가구와 소품을 정갈하게 배치한 2층.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은 대체로 한옥을 제외하면 양옥에 뿌리를 두고 있다. 2세대가 사는 심근영 소장의 집 역시 외관은 직사각형에 백고벽돌로 지은 서양식 주택 같지만 은밀하게 설계된 동선이나 창을 통해 작은 마당을 들이는 방식, 남편이 직접 만든 간결한 나무 가구들이 어우러져 동양적인 느낌을 준다. 거실에 앉아 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바쁜 현대인에게 소박하지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심근영 소장에게 집을 짓고 나서 가장 큰 변화를 물었다. 퇴근하고 운전하면서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대답만으로도 부부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원래 기타리스트였던 남편 덕분에 집에서도 음악을 자주 듣는다. 소파와 사이드 테이블 등 대부분의 가구는 남편의 솜씨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야깃거리가 있는 물건들로 단정하게 꾸민 집. 스타일링이나 인테리어 디자인보다는 건축에 더 흥미를 느꼈다는 심근영 소장의 성향과도 잘 어울리는 집이다.
방으로 통하는 각이 진 통로. 프라이빗하면서도 동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크고 긴 창문들 덕분에 아늑한 공간이 된 침실.
박공지붕 모양의 창문을 만든 아들의 방.
건축 개요
대지면적 / 282.70㎡
건축면적 / 141.14㎡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 / 철근 콘크리트 구조
외부 마감 / 백고벽돌, 징크, 적삼목, 파석
내부 마감 / 원목 마루, 원목, 석고 보드 위
친환경 도장(벤자민무어), 수입 타일
건축 설계, 인테리어 설계 및 시공 / 아키텍츠 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