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더그린은 어떤 종류의 식물을 다루는가? 공간의 특색에 맞는 식물, 서로가 서로를 살려줄 수 있는 식물이 우리의 목표다. 식물 하나만으로 공간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부족한 부분을 식물로 보완해 완성하는 인테리어를 추구한다.
이곳의 식물은 돌, 새, 강아지, 그림 등 귀여운 오브제가 함께한다. 식물 옆 오브제와 배경의 색감 이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이 될 수 있다. 그 자체로 동화를 쓸 수도 있을 만큼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나올 수 있기 바란다. 화분이라는 제한된 곳에 심어진 식물일지라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은 정원을 만들고 싶다.
3~4년간 지낸 신사동에서 벗어나 소월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창 넘어 보이는 저쪽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이 동네를 늘상 출퇴근하다 보니 폭스더그린을 찾은 손님들도 소월길과 남산 둘레길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했다. 유동인구도 없고 상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지만, 여름이 되면 초록으로 가득하고 겨울에는 눈이 내려 아름답고, 봄이면 또 봄이라 아름답다. 이처럼 사계절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좋다. 남산을 마치 내 마당처럼 즐길 수 있다.
이곳을 꾸릴 때 특별히 신경 쓴 점은? 신사동에서는 마당과 유리 온실이 있었다. 그런 장점을 버리고 4층으로 올라온다는 것이 큰 모험이기도 했다. 신사동이 시즌 1이었다면, 소월길에서의 시즌 2는 조금 더 실내 식물에 집중할 예정이다. 하지만 또 슬슬 봄이 다가오니 건물 앞마당으로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웃음).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가? 주말에도 자주 나오는 편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7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딱 반반이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요즘 미세먼지로 공기가 최악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식물은 잘 자라는가? 미세먼지가 많으면 잎이 큰 식물은 잎에 먼지가 흡착되기 십상이다. 잎을 자주 닦아주어야 하며 분무도 해주고 영양제도 자주 뿌려줘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공기 정화 역할을 하는 식물을 추천해달라. 사실 대부분의 식물은 공기를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식물마다 특화된 기능이 있다. 예를 들면, 뱅갈 고무나무는 미세먼지를 없애는 데 탁월하며, 아레카야자는 다른 식물보다 산소를 더 많이 뿜어낸다. 셀렘은 비염과 축농증에 좋다. 극락조는 벤젠, 포름알데이드 등 유해 성분을 희석해주기도 한다. 각자의 특장점이 다를 뿐이지, 거의 모든 식물이 공기를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다가올 여름철에 기르기 쉬운 식물은? 헬레부르스 같은 호주 식물과 많은 물이 필요한 수국처럼 여름에 유난히 약한 식물은 피하는 게 좋다. 여름에는 수경 재배가 가능한 몬스테라를 추천한다. 공기 중에 나와 있는 가지를 뿌리를 포함해 잘라 물에 담가두면 뿌리가 나오고 새 잎도 돋아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머뭇거리지 말고 한번에 싹둑 잘라야 한다.
본인의 성향을 나타내는 식물이 있다면? 관엽식물인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를 좋아한다. 예측할 수 없는 모양으로 자라나는 선이 특징으로 추위나 더위에도 잘 버티며, 며칠간은 물 없이도 잘 자란다. 섬세해 보이지만 의외로 섬세하지 않고 잘 버텨내는 식물이다. 내 성향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식물을 고를 때의 성향과는 맞는 것 같다. 춤을 추는 듯 멋스러운 선이 마음에 든다.
반대로 싫어하는 식물도 있나? 스투키. 뾰족뾰족하게 생겨서 식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형화된 모양으로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인 생김새로 마음이 가지 않는 식물이다.
항상 꿈꿔왔지만 실행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나? 언젠가 우리 집 옥상을 ‘리디아의 정원’처럼 꾸미고 싶다. <리디아의 정원>이라는 책은 한 꼬마가 자기 집 옥상정원을 숲으로 가꿔가는 이야기다. 가끔씩 새도 찾아오고 공원으로 착각할 만한 옥상정원을 만들고 싶다. 매번 계획하지만 매년 실행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다(웃음).
얼마 전 직접 시공한 건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4층으로 된 건물의 3~4층에 자리 잡았다. 30년 된 건물의 겉을 벗겨내고 새하얀 옷을 입혔다.
사무실이 무척 실험적이다. 어찌 보면 개인의 취미 생활을 모아놓은 공간 같기도 하고. 크리에이터에게 사무실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상상력을 높이고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좋다. 사무실에 수족관을 만들고 거북이를 키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또한 이곳은 내게 일종의 캔버스이기도 한데, 클라이언트를 위한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실험을 해보고 있다.
사무실 전체를 모두 합판으로 시공한 것도 특이하다. 합판은 흔히 사용하는 소재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비싼 대리석이 아닌 합판처럼 저렴한 재료도 디자이너의 공이 들어가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합판이라는 소재로 끝장을 보고 싶었다. 원목도 결국 합판의 겹이 아닌가. 디자이너는 재료를 습득하고 적용하며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니까.
사무실이 커튼으로 나뉘어진 것도 재미있다. 커튼으로 파티션을 만들어보았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커튼이 사라져서 두 개였던 공간이 하나로 통합된다. 회의실은 사용하지 않을 때 항상 죽어 있지 않나. 적절한 시선 차단 효과만 있으면 될 것 같아서 레이어를 준 것이다.
로스팅 머신과 빈티지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커피 바, 산호초와 새우가 있는 어항, 최첨단 음향 시스템이 갖춰진 사무실, 책이 잔뜩 꽂힌 서가, 수많은 컬렉션까지 취미치고는 모두 전문적인 수준이다. 모두 디자인과 관계성이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관계가 없는 것은 하지 않는다. 물론 나쁜 버릇도 생겼다. ‘이건 디자인하는 데 도움이 돼. 내가 기분이 좋아지니까’ 하며 자꾸 물건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웃음). 그리고 내 신조는 그거다. 가지 않은 길은 있어도 끝까지 가보지 않은 길은 없다. 뭐든지 목숨 걸고 해야 한다.
거북이를 키우는 것이 특이하다. 거북이 맥스와 레이, 라이노. 쓰리디 맥스와 브이레이, 라이노 세러스 등의 컴퓨터 툴에서 딴 이름이다. 물론 고양이나 강아지를 더 좋아하지만 그러한 애완동물은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자주 놀아주지 않으면 외로움을 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거북이는 케어할 것이 많지 않다. 그리고 최소 80년 이상의 긴 시간을 산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직원들과 삶은 달걀에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원래는 구글처럼 샐러드 바를 만들고 싶었는데.
커피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가 마시는 음료 중에서 가장 창조력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커피다. 외국에서 유학할 당시 쌀이 떨어져도 항상 커피는 최고의 것을 구매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인턴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커피 내리는 방법이다. 회사를 그만둬도 커피숍에 취직 가능할 정도로 가르쳐준다.
사무실 곳곳에 좋은 물건이 정말 많다. 커피 머신도 무척 좋아 보인다. 키스반더웨스턴의 스피드스터다. 키스반더웨스턴은 라마르조끄의 라이벌 같은 브랜드인데, 빈티지 라인은 흔치 않다. 좋아하는 산업디자이너가 만든 것으로, 그의 초기 에스프레소 머신을 좋아한다. 아방가르드 작품처럼 생겼다. 물욕이 없는 디자이너는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항상 최고의 물건을 사용해봐야 한다. 그것이 디자인에 매우 큰 공부가 된다.
굳이 고가의 물건을 살 필요가 있나. 너무 집착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일에 대해서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짜를 쓰면서 나는 오리지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업자이지 디자이너는 아니다.
본인의 집이 사무실 바로 위층에 위치한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디자인은 나에게 취미다. 주변에서 어떻게 취미와 일이 같을 수 있냐고 묻는데, 나 역시 반문하고 싶다. 어떻게 취미와 일이 같지 않은데 하루 종일 할 수 있지? 의무라고 생각하면 쉽게 지치지만, 즐기기 때문에 번아웃될 일이 없다.
훌륭한 디자인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멋지다, 좋다가 아니다. 정말 너의 것인가? 이게 시작이다.
앞으로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왠지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친구의 건물을 설계한 것이 있다. 청평댐 근처에 있는 카페인데, 전체가 모두 솔라 패널로 되어 있다. 왜 솔라 패널은 못생겨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했다. 또 하나는 호수의 물을 빨아들여서, 그 물로 건물을 냉각시키는 것을 생각했다. 그 물이 미세먼지도 끌고 내려가니까 공기의 질도 좋아진다.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꼭 시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