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내내 많은 이들이 방문하지만 고요한 수도원처럼 정적인 뮤지엄 산. 그런 이곳과 썩 잘 어울리는 명상관이 문을 열었다.
빛이 잘 들 때는 LED 조명을 켠 것처럼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명상관.
빛과 공간의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다렸고,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를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뮤지엄 산. 안도 타다오는 2만 평이 조금 넘는 부지에 강원도의 산과 물, 풍경을 여유롭게 끌어 안는 뮤지엄 산을 설계했고, 올해 1월 그가 디자인한 또 다른 공간인 명상관이 문을 열었다.
차를 대고 웰컴 센터를 거쳐 조각 정원과 플라워 가든으로 들어섰다. 아직 이른 봄이라 푸르지는 않았지만 5월부터는 꽃으로 만발한 정원과 안토니 카로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조각품을 볼 수 있어 인기가 많다 . 180그루의 하얀 자작나무가 양 옆으로 즐비한 내리막길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물이 찰랑거리는 워터 가든과 뮤지엄의 본관이 나온다. 많은 이들이 사진으로 담는 알렉산더 리버만의 ‘아치웨이 Archway ’ 작품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뮤지엄 산의 건축물에는색 감이 별로 없기 때문에 붉은색 설치 작품의 카리스마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건축 물이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은 안도 타다오가 즐겨 하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물이 잔잔한 날에는 뮤지엄의 모습이 거울처럼 반사 돼 더욱 신비롭다.
갈라진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 명상관.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빛의 농도와 길이가 달라진다. 내부는 콘크리트 소재를 사용해 돔처럼 완성했다.
명상관이 위치한 스톤가든. 신라 고분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스톤가든에는 9개의 스톤마운드가 자리 잡고 있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본관에서 스톤가든으로 내려가는 야외 길. 산의 능선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계단 형식이 인상적이다.
뮤지엄 본관은 총 2층 규모로 미술 작품과 뮤지엄 산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예술작품을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한솔문화재단에서 세운 뮤지엄답게 제지 회사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종이박물관’이 있으며 ‘판화공방’처럼 직접 아기자기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한국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청조갤러리는 현재 박서보, 유영국, 류 경채 등 한국 추상화 미술을 이끈 이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한국미술의 산책 V: 추상화>전과 건축과 자연의 조화를 기하학적인 형태로 선보이는 <기하학, 단순함 너머> 전시를 진행 중이다.
내부를 거닐다 보면 전시 공간만이 아니라 건축의 기둥이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전시도 볼 수 있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특히 백남준 작가의 작품만을 위한 ‘백남준홀’이 별도로 있는데 9m나 되는 원형 공간에 놓인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 작품은 공간과 더불어 더욱 드라마틱하다. 뮤지엄 내부 역시 돌을 사용해 자연적이면서 웅장하지만 국내에서 채석한 돌이라 그런지 익숙하며 이질감이 적다. 안내 표시를 따라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게 되는 즐거운 미로다.
‘물의 교회’나 ‘빛의 교회’처럼 자연적인 연출만으로도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적인 연출 방식을 뮤지엄 산에서도 볼 수 있다.
본관에서 스톤가든으로 내려가는 야외 길. 산의 능선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계단 형식이 인상적이다.
돌과 콘크리트를 주요 소재로 사용했지만 딱딱하기보다 편안하고 자연적인 분위기를 선사하는 본관 내부.
본관 뒤로는 이글루처럼 동그란 형태를 띤 9개의 ‘스톤마운드’를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스톤가든이다.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에서 채석한 돌로만 완성해 부드럽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스톤가든은 안도 타다오가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 뮤지엄 산은 그동안 방문한 이들이 뮤지엄을 둘러보며 명상을 하는 듯했다는 소감을 꾸준히 전해들었고, 개관 5주년을 맞아 안도 타다오에게 명상관의 설계를 의뢰했다. 명상관 역시 봉긋하게 솟은 스톤마운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반원구를 가로지르는 창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안으로 들어서니 공기가 달라진다. 갈라진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작은 소리마저도 울리는 내부 공기의 밀도는 누구라도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천장의 곡선 틈을 타고 내려온 햇빛이 해시계처럼 시간마다 다른 길이를 보여주는 순간마저 시적이다. 명상관은 매일 운영하는 상시 프로그램과 스페셜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매트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내부를 콘크리트로 마감했지만 산업 소재의 딱딱함은 느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명상에 집중하고 나오면 잠시 다른 세상에 있다 나온 듯 되돌아가는 길이 처음과 다르게 다가온다. 명상관은 뮤지엄 가장 끝에 있는 제임스 터렐 전시관을 가기 전에 위치하는데, 그 역시 빛을 통해 내면에 집중하는 전시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뮤지엄에 명상을 하러 간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뮤지엄은 벽에 걸린 작품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머물면서 주변의 자연부터 건축, 작품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까지 찾을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혼자 또는 마음에 맞는 한두 명과 함께하면 더 좋을 것 같은 뮤지엄 산. 가끔 나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 때, 잠시 모든 것을 내려두고 싶을 때 이곳은 강원도의 능선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워터가든에서 바라본 뮤지엄 산의 본관. 건축물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연출은 안도 타다오가 좋아하는 설계 방식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븕은색 설치 작품은 알렉산더 리버만의 ‘Archway’다.
색채의 빛을 체험할 수 있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 ‘스카이스케이프 Skyscape’. James Turrell ⓒ Skysapce-TWILIGHT RESPLENDENCE, 2012. Photo by Florian Holzherr
뮤지엄 본관의 내부 역시 외관과 같은 돌로 마감했다. 콘크리트 기둥을 캔버스 삼아 완성한 정다운 작가의 작품 ‘자연으로부터 : 자연스럽게’.
<한국미술의 산책 V : 추상화> 전시가 진행 중인 청조갤러리.
현재 백남준홀에는 클래식 차량과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작품인 ‘1936 DESOTO’가 전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