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에 위치한 손명희씨의 집은 머무르고 싶은 편안함으로 가득했다.
인터뷰가 끝났지만 쉽사리 일어날 수 없었다. 좋은 소파의 힘이 아니다. 집도 사람도 너무 편안해서 그랬다. 사람을 자꾸 방심하게 하는 힘이 있는 집이었다. 아이보리 톤의 벽과오래된 나무 바닥 그리고집 안 곳곳에 놓인 빈티지 가구와 싱그러운 식물까지. 그 모든 것이 ‘편안함’이라는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인테리어 스타일링 회사 라이크라이크홈을 운영하는 손명희 씨의 솜씨다. 그녀는 지난 6월 남편, 4살짜리 아이와 함께 돈암동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191m²(58평)라는 계획에 없던 넓은 평수의 아파트였지만 순식간에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이사까지 서른 곳 넘는 집을 봤어요. 그런데 여기는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조금만 손보면 원하는 스타일로 고칠 수 있겠다.” 전셋집이라 공사는 영리하게 최소화했다. 벽지와 걸레받이를 밝은 색으로 바꿔 공간을 넓어 보이게 했고, 오래된 붙박이장은 가벽을 세우거나 문짝만 바꿔 변화를 주었다. 오랜 시간을 품은 나무 바닥과 몰딩, 인터폰 같은 기존의 것은 그냥 두었다. 특유의 자연스러운 느낌이 갖고 있던 가구들과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빈티지 가구를 좋아해서 많이 갖고 있어요. 그런데 자꾸 사다보니 특별한 포인트에 시선이 가더라고요. 이 캐비닛도 보세요. 다리가 무척 특이하죠?” 손명희 대표가 입구에 놓인 케이스 브라크만 Cees Braakman의 가구를 가리키며 눈을 반짝였다. 신기한 일이다. 으레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고가의 가구를 두지 않는다. 망가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이 중요한 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예민함을 내려놓기로 했어요. 흠집이 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리고 가구 때문에 아이를 훈육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 같더라고요.” 대신 아이의 방을 마련해 장난감같은 개인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거실 테이블에도 아이의 장난감 집이 튀어나와 있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렇다면 손명희씨가 가장 공을 들인 공간은 어디일까. 직업상 클라이언트의 요구에서 빗겨나 시도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 같았다.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주방을 가리켰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직접 제작했다는 원목 싱크대. 독특한 원형 손잡이와 가구에서나 쓰일법한 중첩같은 것이 사소하지만 특별하게 느껴졌다. “대학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하고 푸드 스타일리스트 일을 했어요. 인테리어로 직종을 변경했는데 아무래도 주방에 대한 시공 의뢰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동선도 넓게 써보면서 불편한 곳은 없는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그 때문에 주방의 벽을 터서 어디에서나 들어 올 수 있도록 순환형 구조를 만들었다. 홈 카페와 식사용 도구를 각각 한켠에 정리해두어 효율성도 높였다. 무심코 겪을 수 있는 사소한 불편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이렇게 동선을 고려한 것은 부엌뿐만이 아니다. “드레스룸도 동선을 생각해서 배치했어요. 오래된 집이다 보니, 안방은 과하게 넓고 현관 입구에 있는 방은 너무 작았거든요. 그래서 안방에있는 붙박이장에 가벽을 만들어 입지 않는 계절 옷을 보관하고, 자주 입는 옷은 현관 입구에 있는 작은 방에 넣어두었어요. 외출하고 돌아와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손질할 수 있도록 말이죠.” 편안함이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 외로 많은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이 있지 않을까. 가을비가 추적댔지만, 그녀의 집은 왠지 사시사철 봄날일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