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열린 가죽&소재 박람회 리네아펠레에 다녀왔다. 그간 갖고 있던 가죽에 대한 편견이 모조리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10월 2일부터 4일까지 밀라노에서 열린 가죽&소재 박람회 리네아펠레 Lineapelle에 다녀왔다. 매년 2월과 10월에 진행되는 리네아펠레는 밀라노뿐 아니라 뉴욕, 런던, 도쿄, 광저우에서도 열리는 세계적인 규모의 박람회다. 가죽을 중심으로 섬유, 부자재 등 다채로운 소재를 만나볼 수 있다. 소재는 가구, 자동차, 벽지, 인테리어 소품처럼 수많은 분야에 적용되기에 전시를 찾는 바이어의 분야도 무척 다양하다. 올해는 46개국 1270여 업체가 참여해 2020~21년 겨울 컬렉션을 다채롭게 수놓았으며, 주최 측에서는 114개국에서 참여한 2만 명 이상의 바이어가 방문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의 컬러인 레드를 주제로 한 트렌드관부터 최첨단 기술이 반영된 미래적인 소재를 모아놓은 이노베이션 스퀘어까지 볼거리가 풍성했다. 특히 이노베이션 스퀘어에서는 물에 젖지 않는 가죽, 버섯의 균사체나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든 섬유 등 시선을 끄는 최첨단 기술이 즐비했다.
올해의 테마 컬러인 레드를 주제로 꾸민 박람회장.
가죽의 지속 가능성
리네아펠레에서는 다채로운 소재를 다루지만 그 중심은 아무래도 가죽이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스웨이드처럼 부드러운 가죽뿐 아니라 프로 승마 선수가 사용하는 말안장을 위한 가죽을 생산하는 보나우도 Bonaudo, 까시나, 폴트로나 프라우, 카펠리니 등 유명 가구 업체에 가죽을 공급하는 아우소니아 Ausonia 등 유명 태너리(가죽 가공 업체)의 제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시 주제인 ‘지속 가능성’과 가죽을 연결시킬 수 있을까? 가죽은 동물을 죽여서 얻은 부산물인데 과연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리네아펠레의 CEO 풀비아 바키 Fulvia Bacchi는 그렇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고기를 먹잖아요. 그렇다면 고기를 먹고 남은 가죽은 어떻게 될까요?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이 깃든 가죽.
결국 버려지게 되겠죠.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99.5%의 가죽은 육가공산업 공정에서 폐기되는 동물의 가죽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재활용을 통해 환경을 살리는 순환을 목표로 하죠.” 이탈리아의 수많은 태너리 업체가 그렇듯이 아우소니아도 친환경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소프트 가죽과 베지터블 가죽을 만들고 있어요. 베지터블 가죽은 생산 과정에서 크롬 대신 식물성 성분을 사용한 것을 말하죠. 무척 자연적인 가죽이에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죠. 하지만 크롬 가죽보다 두 배 정도 비싸고,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아요.” 어려운 이야기이니 가죽의 가공 방식부터 다시 찬찬히 살펴보자. 소의 피부인 가죽은 반드시 그것을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썩기 쉬운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층 같은 것을 제거해 냄새를 없애고 보존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무두질을 요한다. 그런데 19세기, 중금속의 일종인 크롬이 개발됨에 따라 가죽은 대량생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전통 방식이 아닌 크롬을 사용해 가공하면 시간도 훨씬 단축되고 까다로운 기술도 필요 없기에 수많은 업자들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하지만 크롬이 발암물질로 알려지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사용을 금지했다. 이에 반응성 낮은 크롬으로 대체됐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은 상태다. 심지어 그 편의성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아직도 크롬을 사용하는 태너리가 많다.
다양한 기술이 반영된 패브릭.
가죽 가공 과정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버섯의 균사체로 친환경 섬유를 만드는 모구 Mogu.
반대로 베지터블 가죽은 이에 상응하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만든다. 가죽을 가공할 때 크롬 대신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타닌을 쓰는데, 이는 와인을 마실 때 입안에 까끌까끌하게 남는 타닌과 동일한 것이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나오지 않고 무척 친환경적이지만 크롬에 비해 반응성이 떨어져 가공 과정에서 오랜 시간과 기술을 요한다. 또한 가공 후에도 새것처럼 매끈하지 않고 마치 오래 쓴 듯한 느낌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죽을 구매하는 브랜드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완벽한 가죽을 원했다면, 요즘은 자연스러운 스크래치도 인정하는 분위기죠. 사실 완벽한 가죽의 경우,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등 공정에 부수적인 것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친환경적이지 못한 거죠.” 유서 깊은 태너리 업체인 몬타벨로의 마케터 비올라 달레 메세 Viola Dalle Mese가 설명했다. 이탈리아의 태너리 업체는 가죽을 만드는 공정 역시 환경을 고려해 친환경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생성을 최소화하는 업체에서 생가죽을 구매하기도 하고,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농업에 사용해 폐기물이 생기지 않게 한다. 특히 이탈리아 소가죽은 대부분 수입한 것을 사용하기에 소가 어느 농장에서 자랐고, 무엇을 먹었는지 등 다양한 정보를 추적하는 인증 제도도 갖추고 있다. 환경과 동물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가죽을 비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것보다는 자연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한 좋은 가죽을 찾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됐다.
몬타벨로는 가죽을 주제로 아트 퍼포먼스를 전개하기도 했다.
MINI INTERVIEW
리네아펠레의 첫 여성 CEO인 풀비아 바키를 만나 가죽 산업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가죽 업계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리네아펠레에서 48년간 일했다. 내가 가죽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가죽 업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 있는 것은 맞다. 디자이너들이 퀄리티 있는 가죽의 사용을 거부하고 어린 세대들은 가죽을 고루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나는 그런 상황과 인식을 개선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피렌체 디자인 학교인 폴리모다의 학생들이 가죽으로 만든 제품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디자인 학교와 패션 스쿨의 어린 학생들에게 가죽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나는 어린 세대에 관심이 많다. 그들을 교육시키고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분야에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가죽은 패션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인테리어에 적용되는 경우는 어떠한가? 인테리어 용품은 집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피부에 직접 닿을 때가 많고 아이들도 많이 쓴다. 이탈리아 가죽은 정부의 엄격한 기준으로 깐깐하게 만들고 있다. 제작 공정에서 몸에 해로운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만드는데 이를 검증하는 인증 제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