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인플리즈 스튜디오의 김혜영 대표는 디자인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고, 다양한 경험을 서슴지 않는 에너지를 지닌 그녀의 집은 정형화된 것 없이 자유분방하지만 시류의 흐름 또한 놓치지 않았다.
‘ 똑똑.’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인 체크인플리즈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김혜영 대표의 집에 체크인을 했다. 에어비앤비의 개념도 희미하던 시절, 경리단길에서 사무실과 게스트하우스 ‘체크인플리즈’를 운영해온 김혜영 대표는 회사를 다니다 2015년에 독립했다. 마치 런던 에이스호텔의 로비가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들며 일도 하고 사람을 만나는 장소인 것처럼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인테리어 회사가 합쳐진 4층 주택이 독립의 시작이었다. 이제 카페는 운영하지 않지만 23살부터 해온 인테리어 디자인은 여전에 그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조각을 전공한 남편 도원탁 실장은 프로젝트에 따라 참여도 하고 소재에 대한 조언도 건네며 그녀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신혼여행을 뉴욕으로 다녀왔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을 묵었어요. 그때 플랫 전체를 빌려서 지냈는데 에어비앤비를 운영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파티를 위해 대관을 하는 등 꽤 높은 숙박료임에도 입소문을 타며 운영은 꾸준히 잘됐다. 그러던 중 김혜영 대표와 남편은 집과 사무실을 분리해 출퇴근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정릉의 아파트에서 처음 아파트 생활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편안했다. “아파트가 저와 잘 맞더라고요(웃음). 이사를 가야 하나 싶을 즈음 이전 고객 분이 연락을 주셨어요. 제주도로 내려가게 됐다며 그동안 이 집에서 사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공들여 고친 집을 아무에게나 내주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작업한 공간에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을 것 같아 오게 됐죠.” 고객의 짐이 다 빠지고 나니 잘 정돈된 스튜디오 형태의 집이 나왔다. 천장도 노출하고 아이 방의 문 색깔도 과감하게 원색으로 칠하는 등 외국의 스튜디오처럼 정형적이지 않은 집을 원했던 고객의 바람이 담긴 집이다. 김혜영 대표는 자신의 살림살이와 감각을 반영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집으로 만들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거실 구조
세컨드호텔에서 구입한 넉넉한 깊이를 자랑하는 행복소파와 원형 식탁을 둔 거실은 일반적인 아파트 거실과는 사뭇 다르다. TV를 놓는 자리로 정해진 아트월도 없고, 그와 마주 보는 소파도 없다. 언제든 소파의 위치를 바꿀 수 있고, 식탁도 분위기에 따라 이리저리 옮기곤 한다. 바닥은 방을 제외하고 폭이 넓지 않은 직사각형 타일을 시공해 레트로한 분위기를 냈고, 천장도 모두 노출을 해서 아파트라기보다는 스튜디오 같다. “가끔 구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면 소파 두 개를 붙이거나 펜던트 조명 아래쪽으로 식탁을 옮겨요. 펜던트 조명은 이 집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없을 것 같다며 고객 분이 남겨두고 가셨죠. 최근에는 빈티지 플로스 조명 옆으로 식탁을 두었어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해서 남편이 구해준 오디오를 한 켠에 두었고요.” 가변적으로 바뀔 수 있는 트랜스포머 같은 거실이 인상적이다.
아름답게 가리기
이 집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아름답게 가린 부분이 있다. “현관 문을 열었을 때 정면에 화장실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정면에 가벽을 세우고 창문처럼 모루 유리를 끼웠죠. 대신 실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옆의 벽을 철거했고요.” 그뿐만이 아니다. 거실에서도 화장실 쪽이 보이는 것을 가리기 위해 수납 제작 가구를 가로로 길게 두었다. 덕분에 화장실도 가려지고 안방 침실로 들어가는 사적인 통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안방 침실도 별도의 옷방을 만들지 않고 헤드보드를 겸한 가벽을 세워 뒤쪽에 옷장을 두었다. 옷이 많지 않은 고객의 생활을 반영해 옷 수납을 간소화한 공간이다.
살림 노하우가 담긴 아이디어
김혜영 대표는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에만 신경 쓰지 않았다. 살림을 해본 주부의 경험적인 노하우가 반영된 몇몇 코너가 이를 반증한다. 거실 창가에는 턱을 높이고 아래 배수로를 만들어 무거운 화분도 옮기지 않고 바로 물을 줄 수 있고, 약통이나 양념통, 커피 도구 등 꺼내두면 산만해 보이는 자잘한 살림살이를 가릴 수 있는 수납 선반을 곳곳에 만들었다. 냉장고 옆의 벽을 활용하기도 했고, 거실 안쪽에도 선반을 만들어 물건을 올려둘 수 있다. 현관의 중문도 새로 만든 현관 입구의 폭을 감안해 문 대신 봉을 달고 커튼 형태의 파티션처럼 제작했는데, 이 역시 신선한 아이디어다.
가구로 힘주기
“의자를 정말 좋아해요. 꼭 앉는 용도로 구입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려고 구입하기도 해요. 파란색 문 앞에 둔 체르너 의자 역시 그래요. 빈티지이고 다리가 나무여서 앉을 때 불안함이 느껴지는 삐걱 소리도 나죠. 그렇지만 정면, 측면 어디를 봐도 나무 곡선이 너무 아름다워 계속 보게 돼서 별도로 자리를 만들었어요”라는 김혜영 대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의자를 비롯한 미드센트리 시대의 빈티지 가구가 많았다. 특히 주방 가구는 체크인플리즈 스튜디오의 시그니처 디자인이다. 나왕합판과 유리로 만든 정갈한 부엌 가구는 최근 들어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체크인플리즈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한 부엌 가구를 모듈화해서 판매해보려고 해요. 요즘 많은 분이 시공하고 싶어하는 디자인이기도 하고요. 제가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해요.” 고객의 취향을 존중해 매번 다른 인테리어 디자인을 선보여온 김혜영 대표이지만 자신의 집에서만큼은 좋아하는 디자인을 숨길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일이 정말 좋아요. 18년째 하고 있지만 특히 주거 공간을 디자인할 때 즐거워요. 의뢰가 들어오면 좋아하는 옷 브랜드 등 고객의 스타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질문지도 드려요(웃음).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이 살 집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계속 하고 싶은 일이고요.” 하얀색 집은 많지만 이 집이 남다른 이유는 명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