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디자이너 정규태는 조급해하지도,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직접 꾸린 작지만 아늑한 비스트로가 그곳을 찾은 이들의 생각과 이야기로 넘실대는 공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는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10년. 누군가에게는 강산이 변할 만큼 묵직한 시간일 테지만, 적어도 정규태 디자이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어느 누가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성공가도를 달리다 이를 과감히 내려놓고 홀연히 떠날 수 있을까. 그랬던 그가 돌연 용산에 작은 비스트로를 오픈했다는 소식에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10여 년 전에도 이 근처에 자주 발걸음했던 기억이 나요. 재개발이 된다고 했었는데, 지금까지도 큰 변화가 없더라고요. 길 건너에는 고층 빌딩이 잔뜩 들어섰지만 반대편은 여전히 철길이 남아 있고, 사람 냄새가 가득하죠.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 공간에 마음을 뗄 수 없었어요.” 덜컥 이곳에 터를 잡아보겠다고 결정한 그는 1960년대부터 운영되던 두부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비스트로 통통 꾸떽’을 열었다. 처음에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사용하려 했지만, 두 개 층의 건물을 모두 작업실로 쓰는 대신 2층만 본래 목적으로 사용하고, 비교적 넓은 1층은 색다르게 사용하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비스트로 겸 카페를 운영하기 위한 작은 주방과 로비를 마주하게 된다. 깔끔한 화이트 톤으로 내부를 꾸몄고 천창을 무지갯빛 발로 덮어 다채로운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좁은 복도를 지나면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좁은 창을 통해 넓은 풍경을 볼 때와 같은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한 정규태 디자이너의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비스트로 통통 꾸떽의 메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다양한 식물과 나무 소재를 적극 활용해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꾸몄다. 중앙에 놓인 커다란 거울은 중심을 잡는 동시에 인위적인 파티션 대신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도 겸한다. 천장과 거울이 맞닿는 면에 레일을 설치해 360°로 거울이 회전하며 모든 공간을 비추도록 연출한 점 또한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다.공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지금까지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와 가구, 서적으로 채운 라이브러리는 그가 디자이너로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카페와 전시실은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바람이 반영돼 있다.
“사실 카페와 비스트로는 본디 문화인들의 만남의 장이자 다양한 대화와 담론이 펼쳐지는 곳이잖아요.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자유롭게 즐겼던 문화는 제게 항상 노스탤지어처럼 남아 있어요. 그곳에 대한 그리움은 한국에도 이런 복합 문화 공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어졌죠. 아무래도 디자인을 업으로 삼다 보니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갈증이 깊었거든요.” 그 말을 뒷받침하듯 간단한 식사와 커피,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프렌치 스타일의 의자와 테이블을 두었고 벽면에는 다양한 풍광이 담긴 66장의 사진을 걸어 전시까지 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오픈 초기인 지금은 그가 10년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 걸려 있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참여형 전시를 기획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렸다. “전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예술가로 만들 생각이에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정한 후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촬영에 임하다 보면 더 깊은 시선으로 디테일하게 사물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테고요. 그런 의도로 마련한 장치가 바로 이 액자 전시예요. 이 공간에 걸리는 사진만큼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전시될 거라 믿어요. 다 같이 모여 사진을 감상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유롭게 담론을 펼친다면, 다양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바람은 2층에서도 이어진다. 자신의 작업실 외 공간은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었다. 아저씨 혹은 삼촌을 뜻하는 불어인 ‘통통’처럼 앞으로 친근하게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다짐이 오롯이 담겨 있는 대목이다. “자연스럽게 이곳을 놀이터처럼 활용해주었으면 해요. 저 혼자서는 원하는 결과물을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예술가와 문화인이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뿐이죠. 이제 남은 것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몫이에요.” 특별한 계획도 없이 이곳을 만들었다는 그의 말과 달리 담담하게 그려내는 앞으로의 계획은 왠지 모를 기대감으로 가득 했다. 그가 그리워하는 프랑스의 어느 카페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게 될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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