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협소주택 세로로에서 최민욱 소장 부부를 만났다. 집은 사람의 가치관을 대변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기에 삶의 방식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들 비슷하게 사느라 힘들다. 스몰러 아키텍츠 최민욱 소장과 와인 전문가인 아내 정아영씨는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 그냥 자신들한테 잘 맞는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자그마한 땅을 구입해 부부에게 가장 행복한 형태를 짜기로 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협소주택 세로로에 다녀왔다. 작은 공간과 많은 계단 등 협소주택에 대한 몇몇 걱정은 있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철저한 계산하에 탄탄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15㎡의 5층 구조로 단정하게 쌓아 올린 집은 하나의 층에 하나의 기능만 두어 효율성을 높였고, 초록이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큰 창을 내 마치 숲속에 있듯 쾌적했다. 반대로 주변 건물과 맞닿은 곳은 창을 최소화해 프라이버시도 보호했다. 그리고 부부는 그 안에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 보였다.
회사 이름도 ‘스몰러’이고, 대표적인 포트폴리오도 협소주택이다. 작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원래는 되게 큰 사무소에 다니고 있었다. 정림건축이라고 올해로 50년 넘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크기도 하고. 그곳을 다니면서 좋은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 고층 빌딩, 관공서 설계 같은 것을 했는데 큰 건물을 하다 보니 건물이 지어지는 것을 보는 경험이 적더라. 큰 프로젝트이다 보니 설계도 몇 년, 시공도 몇 년 걸리니 말이다. 건물은 결국 지어져야 의미가 있지 않나. 짓는 경험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나와서 작은 것을 다시 해보자고 생각했다. 더 작은 것을 의미하는 스몰러 Smaller는 스몰 앤 베터 Small and Better를 합친 것이다. 작아서 더 좋은 공간. 그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대표적인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겠다. 신혼집이라 들었는데. 그렇다. 사실 이 집은 아내와 함께 지은 거나 다름없다. 설계는 내가, 아내는 건축주(웃음). 아내하고는 13년 연애하고 작년에 결혼했다.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갔다 만났고, 몇 년 뒤 다시 간 프랑스에서 직장을 구해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간 다양한 작은 집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통해 집이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잘 맞고 편안하다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현재의 집이 있는) 이 장소를 봤을 때도 우리에게 잘 맞겠다 싶었다.
아내는 무슨 일을 하는가? 프랑스에서는 연구원으로 일했고, 지금은 와인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와인은 교환학생 때부터 우리 둘의 공통된 취미였다. 2017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에서 와인 공부를 하고 왔다. 결국은 둘 다 퇴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집의 완성 과정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한다. 2016년 땅을 먼저 구매했고, 면적에 어울리는 것을 생각하다 집을 짓게 되었다. 사무실을 지을지, 집을 지을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변 경관을 본 아내가 당연히 집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웃음). 창밖으로 숲이 보이는데 이 풍경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건너편이 한양도성공원인데 앞으로 유네스코로 지정된다는 이야기도 있고. 땅을 구매하는 데 1억, 건물을 짓는 데 1억6천, 나머지는 가구를 구입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집이 작다 보니 아무래도 다양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공간이 한정적이니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설계해야 했다. 가구도 공간에 맞춰 골랐고, 작게는 신발을 몇 켤레 둘 것인지까지 고민했다. 생활 반경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생활 반경이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되어 있어서 어떻게 동선을 짤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단열도 많은 신경을 썼다. 단열이 잘되어야 유지 관리비가 적게 나오니까. 단열재, 창호 등에 비용을 많이 할애했고 실제로 관리비가 굉장히 적게 드는 편이다. 여름철에는 에어컨을 틀어도 한 달에 3만원 정도 나온다. 전기세는 평소에는 1만5천원, 한겨울 가스비는 10만원 수준이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유아인의 집을 보니 계단이 많아서 조금 힘들어 보이던데. 훨씬 크고 좋은 집이라 비교 대상은 아닌것 같다. 하지만 동선을 잘 계획하면 많이 이동할 이유가 없다. 우리 집은 각 층이 하나의 방이다. 맨 꼭대기 층은 옷방과 욕실, 4층은 침실과 화장실이다. 즉 옷을 갈아입고 씻고 자는 것은 모두 위에서 끝난다. 그리고 아래인 3층은 주방, 2층은 서재와 화장실로 사용한다. 낮 시간은 아래에 있는 두 개의 층에서 보낸다. 각 방은 꼭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만 가니 문제가 없다.
장점도 꽤 많을 것 같다. 사생활도 적절하게 분리할 수 있고, 일을 하다 침대에 눕고 싶은충동도 막을 수 있고. 정확하다. 그게 수직으로 사는 차이점이더라. 한 층에 하나의 방이 있으니, 그 공간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부부끼리도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 수직으로 분리되어 있어 프라이버시가 생기더라. 아내가 1층에 있고, 내가 4층에 있으면 크게 불러도 들리지 않는다. 집에 함께 있어도, 어떨 때는 그렇지 않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막상 살아보니 보완했으면 좋겠다 싶은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조금 더 컸으면 좋겠고, 야외 공간도 있으면 한다. 주택에 살고 있는데 바깥 공간이 없다. 1층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고, 집 앞이 문화재라 루프톱 정원도 만들 수가 없었다. 주택에 살면서 바비큐도 할 수 없다니. 그런 점이 조금 아쉽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모든 신혼부부와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신혼집을 생각하면 어느 지역에 살지, 아파트에 살지 빌라에 살지 등등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게 흐르지 않나? 애초에 우리에게 그것은 옵션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과 생활 패턴에 맞춰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고, 서울에서 살고 싶고 인프라도 필요했다. 그렇다고 귀농을 할 수는 없으니까. 한번 그 경쟁에 들어가면 계속 비슷한 사이클로 가야 하는데 우리의 가치관하고도 맞지 않았다. 빚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빚이 있어서 그것을 감당해야 하면 우리는 또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 갖고 있는 만큼만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 둘 다 현재 지향형이고 무리하게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다. 현재 지향형이라니, 무척 좋은 단어다. 지금 행복하면 된다. 빚이 생기면 스트레스도 심하지 않나. 주변에 그런 지인들을 많이 봐왔다. 빚을 갚느라 월급의 반을 떼이는 경우도 있더라. 아무리 연봉이 높은 회사에 다녀도 지치고, 주말에는 자느라 바쁘고, 왜 사는지 의문까지 든다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생각이 하루아침에 결정된 것은 아니고 서로 오래 이야기하고 논의한 것이다.
정말로 신혼부부에게 대안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을 세속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본다. 환경이 그런 것이니 말이다. 신혼부부한테는 딱히 주거 대안이 없다. 경기도냐 서울이냐, 아파트냐 빌라냐, 자가냐 전세냐. 선택지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고, 결국 예산에 맞춰 선택해야 하니 제안적이다. 전체 인생을 봐도 그렇다. 도심에 사느냐, 전원주택에 사느냐. 이 두 가지밖에 없다. 젊었을 때는 아파트에 살고 나중에는 전원주택으로 간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집이 주목 받고 회자되는 것도 같은 이유인 듯하다. 전셋값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안착한 것이니. 그간 이러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분들이 많은 공감을 해주는 것 같다.
집을 보고 건축 의뢰도 많이 올 것 같은데. 그렇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몇 개 있다. 당산동 9평 프로젝트, 창신동 14평 프로젝트 같은 것들. 14평 집 클라이언트는 이 집이 회자화되기 전 인스타그램을 보고 연락해와서 시작된 경우다.원래 협소주택에 관심이 있었는데 검색을 하다 우리 집을 발견했다고 한다. 주변에 아는 땅이 있어서 소개했더니 그날 바로 계약을 하셨다. 이게 사실 어느 정도 안목이 필요하다. 일단 땅을 좀 많이 보고, 거기에서 어떻게 살지 어느 정도 상상력이 있어야 쉽게 결정할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집에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야 결정이 쉽겠다. 그렇다. 문의는 많이 오는데, 그 부분을 먼저 설명드리곤 한다. 그리고 땅을 많이 보러 돌아다니시라고 조언한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공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다. 서울시 틈새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내가 맡은 것은 동네 틈새 프로젝트다. 도시의 틈에 틈새 사진관, 틈새 카페, 틈새 놀이터, 틈새 장기 기원 같은 여러 가지 팝업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획을 통해 그 틈새 공간을 다시 가치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아무래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버려진 땅이 많지 않나. 그러한 곳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관내에서 그것을 이어갈 수도 있고, 건축주와 무언가를 해볼 수도 있고. 다양한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하나의 결인 것 같다. 롤모델이 있는가? 시게루 반. 워낙 세계적인 건축가이고 슈퍼스타다. 언젠가 그가 모교에 강연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 “건축가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부자를 위해 일하느라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내가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지진이 일어난 현장에 코카콜라 박스 같은 것으로 집을 만들고, 종이 같은 것으로 교회를 짓기도 한다. 물론 이외에도 자신의 프로젝트도 많고, 그중 하나로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한동안 이런 착한 건축, 사회적 건축이 건축계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좀 잠잠해진 것 같지만. 노트북에 그의 사인을 받아서 가지고 다닌다. 시게루 반의 철학을 좋아해서 그의 사무소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그처럼 대중을 위해 의미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더욱 작은 것을 해보고 싶다. 조금 더 작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작아지면 비용 역시 훨씬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5평으로 3개 층을 만들면 주차장 없이 만들 수 있다. 5평짜리 거실, 주방, 침실이 3개이니 총 15평이다. 비용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되게 도전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더 스몰러. 더욱 작은 것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