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직접 지은 집은 역시 달랐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적극 반영한 이 주택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집을 가꿔가며 영리하게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집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집은 가족의 단란한 일상을 위한 곳이자 때에 따라서는 사무실과 학교로도 변화하며 다방면으로 활용된다.건축가 조성욱 소장이 지은 264m²의 판교 주택은 요즘 같은 시기에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했다. “직접 지은 집은 이번이 두 번째예요.첫 번째 집은 친구네 가족과 함께 공유하는 듀플렉스형 주택이었어요. 아무래도 두 집이 반반씩 나눠 사용하다 보니 조금 작은 감이 있었죠. 이 집 역시 듀플렉스 형태이긴 하지만 7대3비율로 지하까지 합해 80평 정도의 규모가 돼요.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도늘어나고, 아이들 역시 수업도 해야해서 잘 온 것 같아요” 라며 조성욱 소장이 입을 열었다. 아내와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곳은 집 자체의 하드웨어도 그렇지만, 내부를 채우고 있는 가구와 조명 등의 소프트웨어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 “이전 집이 공동체 느낌이 강했다면, 저도 나이를 먹고 사회로부터 조금 떨어진 프라이버시가 강조된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또 플렌테리어가 큰 포인트였는데, 빡빡한 도심에서 얼마나 무릉도원같은 집을 만들 수 있겠어요. 그래서 집안 곳곳에 식물을 두었고 이 땅을 고른 결정적인 이유도 도로를 경계로 시에서 심은 나무들이 가득하다는 점이었어요. 나무를 바라보는 쪽으로 창을 내 그 뷰를 집안에서도 느낄 수 있었으면 했어요. 마치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말이죠.”
집 안으로 들어서기 전 현관문에 쓰여 있는 ‘오운’이라는 글자는 무얼 의미 하는지 궁금했다. “오운은 깨달을 오 悟에 구름 운 雲자예요. 외장재를 구하면서 1층은 목재를, 2층은 대리석을 사용했는데 그 대리석이 클라우디아라는 그리스 돌이에요. 클라우디아가 구름을 뜻하기 때문에 구름 운자를 가지고 어떻게 집을 만들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어머니 호가 ‘오운’이라 하더군요.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듯한 의미를 담아 지었어요.” 대부분의 아파트가 평수에 맞는 가구를 선택하지만, 이 집은 순서가 달랐다. 사용해보고 싶은 테이블과 아일랜드 주방, 소파까지 가구를 먼저 정한 뒤 이에 맞춰 창의 크기와 위치, 벽과 천장 높이를 정한 것. 채도가 낮은 무채색 계열의 배경에 컬러풀한 가구와 조명,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어 때때로 변화를 시도했다. 또 안방을 주인공으로 활용하는 보통 집과 달리 안방을 다락에 둔 점도 독특했다. “TV를 보거나 지인들과 파티를 열 때 활용하는 지하 공간과 거실과 주방이 자리한 1층, 아이들 방이 있는 2 층 그리고 안방이 있는 다락으로 구성돼요. 사실 마스터룸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곤하는데, 막상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들어와 잠만 자는 안방은 하루 종일 비워두게 되잖아요. 가장 주가 되는 2층에 아이들 방을 배치하고 안방을 다락으로 올렸죠. 결과적으로 1, 2층에서는 나오기 힘든 경사진 천 장을 갖게 되었고, 욕실은 테라스와 연결돼 목욕하면서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뷰를 감상할 수 있는 낭만을 누릴 수 있게 되었죠.” 이같은 구조는 자쿠지와 목욕탕을 옥상의 야외 공간과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일본의 호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다락의 특성상 천장이 낮아 나무의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어 삼나무로 벽을 감싸 휴양지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차의 경우 큰 집에서는 입체감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작은 공간에서는 하나의 단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확보가 좌우되죠.주방쪽으로 올라오는 곳에 단차를 둬 거실과주방을 구분했어요. 때문에 천장도 자연스럽게 올라갔고요. 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면은 심리적으로 부드러움을 주기 위해 라운드로 마감했고요. 조형성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지극히 기능성에서 나오는 형태와 공간들이에요”라며 조성욱 소장이 덧붙였다. 주변 환경에서 영향을 받아서일까? 어린 자녀들은 벌써부터 각자의 방에 있는 테라스를 어떻게 꾸밀지 구상 중이라고 한다. 작은아이는 낑깡나무나 화초를 키울까 생각 중이고 큰아이는 테이블과 벤치를 두고 싶어한다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을 높이고 여유로운 삶이 더욱 중시되는 요즘, 조성욱 소장의 판교 주택은 도심 한복판의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조성욱 건축사 사무소 www.johsungw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