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들인 골목길
연희동 골목을 집 안에 들인 네 가족의 집. 외부와 내부가 공존하는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안하기에 충분하다.
가끔 그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마치 다른 동네에 온 듯한 건축이 종종 보일 때가 있다. 반면 새 건물이지만 오래전부 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주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건축물도 있다. 연희동에 있는 네 가족의 주택이 그랬다. 신축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연륜이 느껴지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정겹게 다가왔다. 주변 환경을 고 려하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고민하고 설계하는 푸하하하 프렌즈에서 시공 과 설계를 맡았다. “집 주변 연희동은 분위기가 무척 따뜻하면서 고즈넉해요. 그런데 집에 들어오는 순간 동네와는 상관없이 하얀 사각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 안타까웠 어요. 동그란 벽과 각이 진 담장 사이는 골목이 집으로 변해가는 중간 과정 입니다. 외부지만 내부 같은 공간이고요. 동그란 벽을 타고 동네의 분위기 가 집까지 연결돼요.” 한승재 소장이 덧붙였다. 연희동 골목에서 영감을 받 아 빨간 벽돌을 쌓아 만든 이 주택을 보는 순간 갤러리나 뮤지엄이 떠올랐 다. 건축물을 완전히 감싸는 담장 너머로 유려한 곡선의 외벽이 세워져 있 는데, 마치 좁은 골목처럼 이어져 있다. 흔히 생각하는 담장의 개념을 깨뜨 린 것이다. 그래서 이 집을 ‘집 안에 골목’이라 부른다.
“누구나 공간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이 있어요. 탁 트인 곳에 있고 싶으면서 도 내밀한 공간에 있고 싶기도 하죠. 때로는 관심을 받고 싶지만 그 관심을 피하고 싶기도 해요. 골목이라는 열린 장소가 집이라는 내밀한 장소 안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았어요.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말이에요.” 한승재 소장이 설명한 골목은 집 안에서도 이어졌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된 내부는 전체적으로 벽과 문이 없고 원룸마냥 개방적 으로 보인다. 외부에서도 그렇듯 내부에서도 벽과 벽을 세워 길을 만들고 , 동선의 흐름을 가로막지 않도록 계획했기 때문이다. 벽이라는 존재가 무언 가를 가로막는 기능을 하는 인위적인 것이라면, 이곳에서는 그런 벽의 존재 가 느껴지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곳곳에 콘크리트를 그대로 살린 바닥과 천장, 벽을 마주하는데, 자칫 상업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바이빅테이 블에서 맞춤 제작한 나무 가구로 인해 따스하면서도 아늑함이 느껴졌다.
1층에는 26㎡의 원룸으로 주방과 다이닝 그리고 거실이 연결된다.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는 곳에 창문을 뚫고, 이 창문을 통해 집의 기둥이 조각처럼 보이게 의도했다.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배치되는 일반적인 주거 형태와 달리 공간이 이어지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자연스럽 게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2층으로 올라서면 갈림길이 있는 골목에 서 있는 듯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고민되었다. 높은 천고를 자랑하는 2층은 부부의 침실과 아이들 방, 작은 서재 겸 거실이 있는데, 이 방과 방 사이가 어느 곳 이나 다 이어져 있었다. 특히 부부 침실과 아이들 방은 다리로 연결되는데, 이 다리를 건널 때 길게 낸 창문과 천창을 통해 마주하는 외부의 자연환경 을 바라보면 여기가 실내인지 실외인지 착각마저 든다. 북쪽을 제외한 나머 지 방향으로는 건물이 붙어 있어 북향으로 창을 내는 대신 집을 사방으로 모두 가리고 가운데 천창을 계획했다. 그래서 2층의 모든 방은 남쪽 하늘을 향해 뚫었다고 한다. 까다로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전화위복의 기회와 건 축가의 영민함이 더해져 보다 특별한 집이 설계되었다.
“골목처럼 집을 돌아다닐 수 있고, 이곳에 앉을까 저곳에 앉을까 매번 고민 하게 되죠.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집에서 가족들을 만날 수도 있고요(웃음).” 한승재 소장의 말처럼 2층은 마치 골목길을 여행하듯 흥미 롭다. 지하 1층의 골목길은 신비롭고 근사했다. 마치 동굴에 들어가듯 곡선 의 벽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공간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전시가 열리 기도 하고 임대를 하기도 한다. “클라이언트는 이 집에서 필요한 것을 자꾸 찾아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요즘은 높은 천장에 그물을 달고 싶어해 요. 단독주택에 사는 재미가 이런 게 아닐까요. 특히나 꼬마 둘이 계단에서 책을 읽고 콘크리트 벤치에 누워 노래를 부르고, 양팔을 벌리고 벽돌 담장 을 따라 걷는 등 구석구석에서 잘 놀아주고 있어요.” 건축주와 건축가의 합 이란 이런 것일까. 건축가의 과감한 제안에 건축주의 대담한 아이디어가 더 해져 특별하고도 세상에 하나뿐인 집이 탄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