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과 아트. 분야가 맞닿은 곳에 두 사람이 있었다. 경험은 여유가 되었고, 천천히 쌓아온 안목은 확고한 기준이 되었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복합 문화 공간 성수야드, 그곳에서 스튜디오 트루베 조규진 대표와 유승은 아트 디렉터가 합심해 거창한 주제 대신 편안하지만 뚜렷한 취향의 장을 펼쳤다.
시가지 속 푸르게 움튼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건물 하나. 벽돌을 쌓아올린 외벽에는 자연히 드러나는 시간의 흐름이 역력한 흔적과 질감이 남아 있고, 곳곳에는 섣불리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수학기호 장식이 걸려 있다. 이곳의 이름은 성수야드. 젊은 예술가들이 거침없는 행보를 선보이는 성수에 새로운 대안 예술 공간이자, 복합 문화를 표방하는 건물이 탄생한 것이다. 꽤나 연식이 느껴지는 이 건물은 조소은 아틀 리에의 조소은 소장의 손을 거쳐 다시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처음 공간을 마주할 때면, 붉은 벽돌과는 대조를 이루는 창문과 문의 초록색 틀이 인상적인 외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문손잡이나 건물 외관 곳곳에 새겨진 수학기호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의 정체는 바로 현대미 술가 리암 길릭의 작품 ‘And House Can Speak’. 클래식한 벽돌 건물에 그의 작품이 더해져 독특한 조형미마저 느껴진다. 내부는 한층 빈티지하다 . 훤히 골조가 드러난 내벽과 함께 테라스에는 레트로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타일이 깔려 있기 때문. 복합 문화 공간답게 이곳에 자리한 가게들도 눈에 띈다. 지하에 위치한 갤러리 바톤의 전시 공간 챕터 투 야드를 시작으로, 아이웨어를 선보이는 스펙스 몬타나의 플래그십 스토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2층 한 켠에서도 독특한 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테리어 디렉터이자 스튜디오 프루베를 운영하고 있는 조규진 대표와 아트 디렉터 유승은 대표가 합심해 선보인 팝업 전시 <아워야드 Ouryard>다.
함께 작업하며 친분을 쌓아온 인연과 합이 이곳에서 감각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전시 기획 의뢰를 받고 나서 공간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각자 소장하고 있는 가구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예전에 지어진 건물을 리모 델링한 터라, 전시 공간에 남아 있는 예스런 흔적이 빈티지를 좋아하던 서로의 취향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단박에 틀이 정해지자 후속 과정은 흘러가듯 순탄했다.서로의 집이나 작업 공간에 놓인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보니 하나하나 리스트를 정해놓지 않더라도 가구와 어울리는 작품을 매치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전시 공간을 구획 짓는 일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친해지다 보니 서로의 집이나 작업실도 심심찮게 방문했어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취향을 알 수 있었죠. 이번 전시에서는 그 점이 큰 도움이 됐어요. 구태여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조규진 대표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회상하며 말했다.
가벽 등의 보조장치가 없어도 공간은 확연히 구분된다. 문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것은 모듈 변형이 자유로운 조재원 작가의 삼각 선반. 이어 스케이드보드 위 회화가 인상적인 박지현 작가의 h‘Te Air’ 시리즈와 호제 잘주핀 Jorge Zalszupin이 디자인한 시니어 라운지 체어의 우아한 곡선이 펼쳐진다. 고개를 돌리면 또 하나의 벽이 보인다. 수십 개의 패널이 벽을 메우고 있는 모습은 마치 별개의 작품들의 조합 혹은 하나의 큰 작품같기도 하다. 패널의 원형은 바로 우유 박스나 북 커버 등을 대량 생산하는 톰슨 Thomson 기법을 위해 제작된 목형 틀. 그것들을 작품으로 승화해 모아놓은 것이다. 바로 앞에 놓인 사이드 테이블과 스툴은 버려진 몰딩을 모아 제작 했는데, 흡사한 사연을 지닌 두 작품이 절묘한 합을 이룬다. 또한 이 구역에서는 자크 히티어 Jaques Hitier의 설치형 선반과 램프, 브라질 가구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르지오 로드리게스 Sergio Rodrigues의 오스카 체어, 독일의 개념 미술가 카린 잔더 Karin Sander가구현한 석류 오브제까지 함께 비치해 레트로한 면모가 느껴진다. 맞은편에는 건축가 오스카 니메이어 Oscar Niemeyer가 제작한 리우 체어와 빌헬름 사스날 Wilhelm Sasnal의 작품 ‘더 선’이 웅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이하게도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으레 전시에서 작품을 강조하는 데 쓰이는 핀 조명을 달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이는 전시를 평범한 작품전이나 가구전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의 바람이 담긴 것이라고. 또, 자유롭게 작품과 가구를 매치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작품 간의 배치만큼은 유승은 대표의 숨은 의도가 어려 있다. “특정한 장르나 국적, 유명세 등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버려진 것을 사용한 작품을 묶어보기도 하고,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을 보여준다면 한국 작가의 작품 또한 함께 보여줄 수 있도록 했죠.” 힘을 빼고 그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지만 곳곳에서 엿보이는 이런 디테일에서 숨길 수 없는 내공이 드러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되새길 수 있었다는 두 사람. 함께하는 다음을 상상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긍정의 말을 전하는 그들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가 샘솟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