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모습을 갖춘 한옥을 만났다. 아스라이 자리한 시간 속에 오래도록 간직한 취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벽옆에는 대나무를 심고 바닥에는 자잘한 자갈을 깔아 아늑한 마당을 완성했다.
사무 공간 옆 길게 난 창 사이로 보이는 라이크라이크홈 손명희 대표.
서촌의 먹자골목 뒤 낮은 빌딩이 촘촘히 세워진 거리를 헤치듯 나아갔다. 그 끝에 다다르자 주변과 사뭇 다른 인상의 한옥이 어슴푸레 보였다. 한 블록만 넘어가도 차들이 쏜살같이 내달리고, 골목 사이로 먹음직한 냄새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퍼지는 데 반해, 어떠한 속도감 없이 그저 존재하는 듯했다. 이곳의 주인은 인테리어 스타일링 회사 라이크라이크홈의 손명희 대표. 그녀는 이전 성북동에 있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필운동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늘 한옥에 대한 갈망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어요. 꿈에도 나올 정도 였으니까요. 그러다 이곳에 발을 들이기까지 2년 여의 시간이 걸렸어요. 그간 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곳을 만나려고 그랬던 것만 같아요. 발을 들이자 마자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지 대번 그려졌거든요.”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외국인 전용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고 있었던 곳이 그녀의 손을 거치자 차츰 변신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작업은 보수공사. 여러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기둥을 기준으로 여러 개의 벽을 세워 칸막이처럼 사용했던 터라, 마치 블록처럼 나눠진 내부를 모두 터야만 했다. 천장 또한 문화재 복원 전문가와 함께 방치되다 시피한 서까래를 다시금 말끔한 상태로 복원시키는 작업을 거쳤다고.
직접 짠 블랙 컬러 장으로 공간의 중심을 다졌다.
말끔해진 내부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리빙룸으로, 업무를 보다가도 언제든 쉴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인 만큼 데이베드로도 사용 가능한 코발트 블루 컬러의 빈티지 소파와 라운지 체어를 두었다. 이와 함께 박홍구 작가의 소반과 정진화 작가의 그림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비치해 작은 갤러리같은 인상을 준다. 사무실 한가운데 위치한 다이닝 공간은 직접 짠 묵직한 블랙 컬러의 장과 클라이언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련한 티크 테이블이 무게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가장 안쪽에 마련된 것은 서재 겸 사무공간. 빈티지 숍에서 구매한 조지 넬슨의 테이블과 피에르 귀아리슈의 튤립 체어를 함께 매치해 감각적인 작업 공간을 구현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빈티지가 되어버린 서양 가구와 동양의 느낌이 잔존하는 조화는 이곳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다. “이곳에 놓인 가구는 대개 집에서 오랫동안 사용하던 것들이에요. 매일 마주하던 가구였지만 사무실에 놓으니 새롭더라고요. 함께 동고동락한 것들이라 시간의 흐름이 언뜻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오히려 이곳과 잘 어우러지니 묘하더라고요.”
테이블 옆 벽에는 정진화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다.
살짝 들어오는 햇빛이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동양적인 느낌의 소반과 식물.
매력적인 색상의 소파와 파토 라운지 체어로 포인트를 준 리빙룸. 직원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기 좋다.
더욱이 소반이나 도기, 동양화 등 사무실 곳곳에 무심히 둔 듯한 동양적인 작품과 대나무가 촘촘히 심어진 마당의 풍광까지 더해져 동서양의 감각이 탁월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미팅이 어려운 시기이니 만큼 사무실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마당이 있어 아이가 있는 직원들이 한시름 덜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온전히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으니 더욱 애착이 가네요.” 한옥에 대한 손명희 대표의 애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즘은 점점 바뀌어가는 이곳의 모습을 상상하곤 해요. 지금은 인테리어 사무실로 쓰고 있지만, 칙칙한 기운이 감돌지 않기를 바라요. 그러니 더욱 다양하게 이곳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려고요. 그걸 그려보는 재미도 꽤 있는 편이고요. 형태가 어찌 됐든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나, 이곳이 사람의 온기가 머무르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직접 짠 블랙 컬러 장으로 공간의 중심을 다졌다.
손명희 대표의 사무 공간은 한옥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다. 빈티지 가구숍에서 구매한 책상과 튤립 체어 그리고 포근하게 들어오는 햇빛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무실 곳곳에 무심히 둔 오브제 덕분에 작은 갤러리를 방문한 듯한 인상이다.
사무실 곳곳에 무심히 둔 오브제 덕분에 작은 갤러리를 방문한 듯한 인상이다.
벽에 걸린 고지영 작가의 작품과 빈티지 가구를 통해 이 한옥만이 지닌 절묘한 조화로움을 엿볼 수 있다.
티크 테이블과 탁월한 합을 보이는 에곤 아이어만의 SE68 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