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구미동에 살고 있는 이들 부부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변화를 만끽하며 집에서 휴양하는 중이다.
“이 숲의 전경을 보는 순간 5분만에 결정을 내렸어요.” 수도원, 명상 센터, 화이트큐브갤러리….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키워드다. 채정원, 박귀현 씨 부부가 살고 있는 161m² 규모의 집은 하얗게 서린 겨울 숲의 설경을 한폭의 그림처럼 담고 있었다.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일순위는 숲 뷰였어요. 사실 도심에 위치한 이전집이 훨씬 따뜻하고 지금보다 출퇴근이 수월했지만 항상 답답해했던 것같아요”라며 아내가 입을 뗐다. 작년 말, 퇴직하고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직장에 다닐 때도 지치고 힘들면 주말에 새벽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제주의 숲길을 걸으며 몸과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에게 숲이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였다. 바람대로 집안에서도 숲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다음은 내부를 고칠 차례였다.
이들 부부는 5년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샐러드보울의 구창민 대표를 찾아갔다. “25년 된 오래된 아파트이다 보니 노후돼서 고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저희가 생각한 예산과 너무 큰 차이가 나서 정말 영혼까지 끌어 모은 것 같아요(웃음). 그 돈으로 누군가는 더 좋은 가구나 가전을 사라고 충고했지만 이사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이제는 한곳에 정착하고 싶은 욕구가 더욱컸어요.” 일곱번 넘게 이사를 다녔지만 전문 인테리어 업자한테 의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부부는 구창민 대표에게 필수 요건 세가지를 주문했다. 첫번째는 오롯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분위기일 것, 두번째는 동선과 효율성을 따질것, 그리고 세번째는 각방의 기능이 분명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부부는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정리한 마인드맵을 그려 미팅할 때 가져갈만큼 이 집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먼저 안방은 문을 열었을 때 자고 있는 모습이나 발이 보이지 않기를 바랐어요. 집이 나를 동굴처럼 품어주듯 안락하고, 특히 침실은 가릴 것은 가리되 답답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클라이언트가 머릿속으로 그린 요구사항은 샐러드보울의 구창민 대표가 디자인적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였다.
그는 침실 입구에 통로를 구축해 프라이빗하면서도 안락한 공간을 계획했고, 그 안으로 수납장과 단상을 두어 안방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갈 수 있게 했다. 또 욕실과 드레스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세면대를 바깥으로 빼내 파우더룸 겸 호텔같은 건식 욕실을 만들었다. 이로써 디자인과 효율성을 모두 갖춘 안정적인 구조가 완성됐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아내를 위한 명상 방이다.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교대학을 다니며 명상을 배울 만큼 명상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방 하나는 오롯이 나를 위한 공간이었으면 했다. “일상생활에서 쌓인 피로를 명상으로 풀고 싶었어요. 이 방은 음악도 필요없고 싱잉볼과 눈 앞에 펼쳐지는 나무 숲만 있다면 충분해요.” 흔히 주거공간에서 볼수 없는 단차도 눈에 띄었는데, 이렇게 공간을 구분함으로써 좁은 아파트가 지닌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거실은 지인들을 초대했을 때 머무르는 곳으로 널찍하게 구성했고, 명상 방 맞은편에는 남편이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좋아하는 영화나 TV를 볼 수 있는 미디어룸으로 만들어 부부의 소소한 라이프스타일을 치밀하게 반영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부부는 환경이 바뀌고 나서 자신들한테도 변화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효율성과 가성비, 실용적인 것에 치중되어 있었는데, 집을 고치면서 자신조차 몰랐던 취향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찾아가는 과정과 같았다고 말이다. 특히 아내는 이곳으로 이사온 뒤 스트레스 지수가 몰라보게 낮아진 것은 물론이고, 실제 숲에 들어온 것처럼 몸이 이완되는 기분을 매일 느낀다고 한다. 집이 가져다주는 평화로움이란 이런 모습일까? 환경이 주는 영향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