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을 품어온 아파트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없이 부부의 취향과 감각으로만 완성했다. 다채로운 컬러와 스타일을 조합해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집은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했다.
거실은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의 빈티지 오디오 음향 기기와 아내가 고른 가구와 오브제가 어우러져 두 사람의 취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얗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특징인 미니멀한 공간 사이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과감하게 드러낸 톡톡 튀는 집을 만났다. 김혜민, 유성규 부부의 집은 정형화된 인테리어보다 자유롭고 과감한 시도가 돋보였다. 집 안 곳곳에 놓인 디자인 가구와 작은 소품만으로도 집 주인의 안목이 단번에 느껴졌다. 옥수동의 35년 된 오래된 아파트를 최소한으로 손보고 구조만 조금 변경해서 완성한 164m²의 집은 부부의 취향과 감각의 집합체나 다름없었다. 요즘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든 클래식한 몰딩과 거실 한켠을 지키고 있는 라디에이터, 격자 모양의 창문 틀 등 기존에 있던 요소를 십분 활용해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평소에도 반려견 도비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김혜민 씨. 패브릭 소파에 앉아 편하게 쉬고 있다.
12여 년간 대기업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고 현재는 의류 브랜드 쎄모먼 Ce Moment을 운영하고 있는 아내 김혜민 씨의 감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저는 클래식하고 빈티지한 것을 좋아해서 인위적인 것은 피하고자 했어요. 집도 최소한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원래부터 있던 요소는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인테리어 필름으로 문이나 붙박이장의 컬러를 변경하는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오래된 것이 주는 특별한 가치와 빈티지한 멋을 좋아해요. 요즘 다양한 컬러 사용을 즐기는데 집안의 소품으로 컬러 포인트를 주었어요. 컬러는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을 뿐 아니라 기분을 좋게 만들어줘요(웃음).” 이들 부부가 구입한 생활 소품이 하나둘 모여 차곡차곡 레이어링되면서 이 집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주방 옆으로 방을 터서 간이 주방과 팬트리 공간을 만들었다. 아내가 수집한 빈티지 의자가 곳곳에 오브제처럼 놓여 있다.
이는 부부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거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벨기에의 윌리 반 데 미에렌 Willy Van Der Meeren 옷장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포근한 색상이 주는 화사함이 거실 전체에 은은하게 번져 있다. 이 옷장은 캐비닛 대용으로 사용 중인데, 가구의 쓰임새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맞게 사용하는 그녀의 센스가 돋보인다. 그 앞에는 챕터원에서 구입한 내추럴한 분위기의 컴포터블 소파와 딜런 류가 디자인한 화려한 패턴의 스툴,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대명사 클래시콘의 데이베드와 사이드 테이블, 컬러가 매력적인 까시나의 LC7 등 각기 다른 스타일의 가구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스타일이자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나답게 집을 꾸미고 싶었어요. 우리스러운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제품을 고르는 기준은 본능적으로 제가 이끌리는 것을 고민하지 않고 구입하는 스타일이에요. 그 물건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물론 기능성과 사용성도 반드시 고려하고요. 어쩌면 오래전부터 물건을 구입하면서 실패와 같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사실 아직도 저다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침실로 이동하는 길목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컬러의 시트로 붙박이장과 욕실 문을 리폼했다. 톤 다운 된 민트 컬러 사이로 나무 소재의 캐비닛과 그 위에 놓인 샤를로트 페리앙의 사진 작품이 어우러져 멋스럽다.
김혜민, 유성규 부부의 취향과 감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단연 서재일 것이다. 영감의 방이라 불리는 아내의 서재는 아트서적과 포스터, 디자인 의자가 묘하게 합을 이뤄 아티스트의 방을 방불케 했다. “이곳에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제가 편안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영감이 떠오르거든요. 디자인 의자를 좋아해서 하나둘 사게 되었는데, 번갈아가며 앉기도 해요.” 어느 하나 튀는 컬러 없이 어우러지는 아내의 서재 반대편에는 남편이 직접 꾸민 서재가 있다. 그린 컬러로 물든 공간은 아내 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그의 취향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두 공간이 주는 대비도 이 집의 수많은 매력 가운데 하나다.
7살 도비가 소파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가에 아울렌티가 디자인한 피피스텔로 조명이 있다.
남편과 아내는 각기 선호하는 컬러가 달랐지만, 서로의 취향에 물들어가며 닮아가고 있었다. “오렌지 컬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남편 때문에 좋아하게 됐어요. 그 컬러가 주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더라고요(웃음).” 김혜민 씨가 침실 화장대 앞에 있는 허먼밀러의 주황색 임스 라운지 체어를 소개하며 수줍게 말했다. 침실에는 신혼 때 사용하던 앤티크한 화장대와 침대 맞은편에는 권성목 작가의 작품과 포스터 앞에 빈티지 멤피스 의자를 두었는데, 이곳은 마치 현대미술 갤러리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언뜻 보면 너무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해 있어 이질감이 느껴질 법도 하지만, 그녀만의 특별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있었다. 사실 누군가의 취향을 언급할 때는 기존의 스타일을 예로 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 있어 취향은 어느 하나로 규정되기보다 다양한 스타일을 직접 큐레이팅해 새로운 느낌을 창조했다. 취향이 곧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집’이라는 결과물로 증명한 이들 부부의 러브하우스는 공간을 연출하는데 있어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에게 바람직한 예시가 되기에 충분하다.
신혼 때 구입한 식탁에 빈티지 튤립 의자와 프리츠한센의 세븐 체어, 비트라의 스탠다드 체어를 조화롭게 배치했다. 그 위에는 베르판의 펀 1DM을 달아 빈티지한 어느 유럽의 다이닝 같은 무드를 자아낸다.
부부의 침실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한다. 신혼 때 구입한 클래식한 침대 아래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권성목 작가의 그림과 포스터, 빈티지 멤피스 의자를 놓아 현대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아내의 서재는 컬러풀하다. 전산의 블루 컬러 책장에는 아트 북과 오브제가 있으며 미뗌 바우하우스에서 구입한 마트 스탬 Mart Stam의 1930년대 빈티지 체어와 사무엘 스몰즈에서 구입한 빈티지 조명 등 아내의 취향이 총체된 곳이다.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남편이 직접 꾸민 서재에서는 그의 취미와 취향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아내의 서재는 컬러풀하다. 전산의 블루 컬러 책장에는 아트 북과 오브제가 있으며 미뗌바우하우스에서 구입한 마트 스탬 Mart Stam의 1930년대 빈티지 체어와 사무엘 스몰즈에서 구입한 빈티지 조명 등 아내의 취향이 총체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