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 스타일로 연출한 펜트하우스를 찾았다. 이곳은 비움과 절제의 미학을 충실히 구현한 공간으로 거주자에게 진정한 쉼을 선사하고 있었다.
집은 일터와 달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에 단어에서부터 따스하고 편안 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날의 집은 획일화된 구성으로 개인의 고유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성아이디에 디자인을 의뢰한 유호현 씨는 오롯이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집을 바랐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돌아와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원했다. 디자인을 총괄한 한수진 과장은 공간을 점검한 뒤 최종적으로 젠 스타일을 제안했다. “한 번도 고치지 않아서 어둡고 올드한 마감으로 공간이 탁해 보였어요. 지나치게 구조화돼 있어 37층 펜트하우스의 장점이 드러나지 못했고요. 우선 높은 곳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정돈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다 보니 자연스레 젠 스타일로 디자인 컨셉트를 설정했습니다.” 젠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비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절제된 선으로 공간을 다듬으면 자연스럽게 내부와 외부가 어우러지며 특유의 공간미를 품게 된다.
이곳은 주상복합 아파트로 과감한 구조 변경이 가능했다. 유학 중인 딸이 1년에 2주 남짓 집에 돌아오는 것을 제외하면 337m2의 비교적 넓은 공간을 유호현씨 혼자 사용한다는 점 또한 덜어내는 작업을 한결 수월하게 했다. 창고를 헐고 현관과 거실 사이의 가벽을 없애니 공간이 시원스럽게 열렸다. 베란다 역시 확장해 거실과 각 방에 우면산과 예술의 전당의 전경을 들였다. 방 하나를 없애 다이닝룸을 만들고, 거실 뒤에 있던 서재에 출입문을 하나 더 만들어 주방에서도 접근이 용이하게 평면을 구성했다. 공간을 덜어낸 곳이 있다면 일부러 더한 곳도 있다. 이 집의 컨셉트가 가장 도드라지는 곳이기도 한 현관이다. 손님을 다 실로 안내하기 전 외부 세계와 단절하기 위해 걷는 일본의 노지露地처럼 이 집의 현관은 기본 크기에서 좀 더 길게 확장해 전이 공간의 역할을 유도했다. 또 극단적으로 어두운 먹색이라 중문의 세로 간살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이 선명하게 보여 집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을 부여한다. “보통 젠 스타일의 공간은 화이트, 베이지, 브라운 톤을 많이 쓰지만 먹색이 가장 동양적이라고 생각해 적용해봤어요. 현관에 사용한 먹색을 중심으로 농도를 달리하며 집 안 곳곳을 차분하게 잡아줬어요. 같은 색이어도 타일, 금속, 유리, 거울 등 소재마다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라 지루하지 않은 느낌이 완성됐어요.”
유호현 씨는 한수진 과장이 제시한 컨셉트를 전적으로 따랐지만, 적극적으로 요청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유학 중인 딸이 방학 동안 집에 돌아왔을 때 꼭 안아주듯 포근하게 맞이하는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 딸 사랑이 남다른 그를 위해 한수진 과장은 딸의 방을 다른 곳과 달리 화이트, 베이지 등 따뜻한 색감을 주조색으로 설정했다. 옷장은 도장 대신 패브릭으로 살짝 도톰하게 만들어 재료 특유의 포근한 느낌을 불어넣고, 독특한 결이 느껴지는 타일과 나무를 매치해 화장실도 결을 같이했다. “방을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는 부클레 원단의 소파를 배치했어 요. 침구도 아기자기한 포인트 주름이 있는 것을 선택해 여성스러운 느낌을 부여했고요.” 가구, 소품, 패브릭 등 스타일링을 맡은 김성자 실장이 설명을 더했다. 덕분에 딸의 방은 대부분 사용하지 않음에도 전혀 낯설거나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이사를 하면서 주문한 임스 라운지 체어에 앉아 고즈넉이 우면산을 바라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유호현 씨는 바쁜 일정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 어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비우고 덜어내며 완성한 도심 속 펜트하우스는 사용자와 함께 호흡하며 비로소 밀도 있는 공간으로 완성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