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한 가지 목적만을 지닌 공간의 시대는 지나갔다. 건축과 패션,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까지도 예술 작품과 맞닿기 시작한 것. 공간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문화와 예술적인 배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여섯 개의 공간을 찾았다.
로통드에서는 우르스 피셔의 작품으로 세계 각국의 의자를 밀랍으로 만들어 햇빛에 서서히 녹아내리게 했다. ©Urs Fischer Courtesy Galerie Eva Presenhuber, Zurich. Photo : Stefan Altenburger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콘크리트 실린더로 생겨난 통로에는 1889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든 24개의 쇼윈도가 있다.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Tadao Ando Architect&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Maxime Tétard, Studio Les Graphiquants, Paris
부훌렉 형제가 가구의 연장선으로 조명 브랜드 플로스와 협업해 15m 높이의 기념비적인 샹들리에를 만들었다. Ronan et Erwan Bouroullec Luminaire, escalier 19e ©Studio Bouroullec Courtesy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파리의 도심 가운데 높은 천막과 철근으로 가려 모든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옛 상업거래소 Bourse de Commerce 건물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3년 동안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걸친 이곳은 새로운 예술적 목적이 부여되며 재탄생했다. 케링 Kerring 그룹의 회장이자 슈퍼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5000점 이상의 아트 컬렉션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길 갈망했고, 이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실현되었다. 프랑수아 피노의 문화 프로젝트 동반자인 안도 타다오가 건축 설계를 맡았다. 건축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작업이라는 안도 타다오의 말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이기에 유산을 복원하는 동시에 건축을 창조하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건물 이전의 영광을 복원하고 그만큼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1986년 역사문화재로 등록된 상업거래소를 상징하는 돔 천장은 철제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특별한 유리로 보강하고 피노 컬렉션의 작품을 돋보이게 디자인했다. 그리고 내부의 중심인 로통드 전시관에는 무려 29m 너비, 9m 높이의 콘크리트 원통형 공간을 원형 건물 중심에 세워 전시 공간을 나누는 동시에 건물의 중심을 극대화하고 관람객들이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원통형을 따라 올라가면 유리 돔 아래에서는 세계 무역장소를 묘사한 아름다운 19세기 프레스코화를 마주할 수 있다. 공간을 압도하는 이 프레스코화는 문화재로 등재됐는데 총 넓이가 1400㎡로 5명의 예술가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는 프랑스 박물관 위원회의 인증을 받은 전문가 알릭스 라보의 복원팀이 20m 높이의 철근 위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등 건물 내부와 외부 가구는 부훌렉 형제가 맡아 디자인했다. 3개 층으로 이루어진 10곳의 전시 공간에서는 아트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이 공존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고, 회담과 토론, 콘서트도 열린다. 파리의 현대미술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선언하는 의미를 지닌 창립전 <Ouverture>는 피노 컬렉션 프로젝트의 새로운 국면을 시도하는 개막을 의미하는 것 외에도 다양성을 보여주는 예술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이라는 가치를 표현하기도 한다. 로통드 전시 공간에서는 우르스 피셔 Urs Fischer의 극사실주의 왁스 조각 시리즈부터 콘크리트 원형 공간 통로에 1889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24개 쇼윈도에 전시된 베르트랑 라비에의 작품, 2층 갤러리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 데이비드 해먼스의 모든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등 32명의 아티스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프랑수아 피노의 대담한 결단력과 그의 욕망이 예술가들의 본고장인 파리의 중심에 신선한 예술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건물의 유산과 작품이 어우러져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을 하나로 묶은 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이미 파리의 새로운 예술 성지가 되었다.
콘크리트 원통형 실린더를 산책로처럼 천천히 따라 올라가면 19세기의 거대한 프레스코화와 마주한다.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Tadao Ando Architect&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Patrick Tourneboeuf
오대륙 간에 일어나는 무역을 찬양하는 프레스코화는 상업거래소가 품고 있는 보물이다.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Tadao Ando Architect&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Marc Domage
2층 전시 공간에서는 이전 피노 컬렉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David Hammons Vue d’exposition “Ouverture”,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Paris 2021 Courtesy de l’artiste et de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Photo Aurélien Mole
상업거래소를 상징하는 돔 천장은 금속과 유리로 만들었으며 리노베이션 공사가 한창 진행될 때도 특별 관리를 받으며 철재는 그대로 살리고 슬레이트 지붕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해 하나의 작품처럼 완성했다.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Tadao Ando Architect&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Vladimir Partalo
갤러리3에서는 6인의 사진작가 작품이 전시 중이다. 1970~90년대 작품으로 성별, 정체성, 성을 주제로 다뤘다. ©Louise Lawler, ©Sherrie Levine, exhibition view of Ouverture, Bourse de Commerce -Pinault Collection, Paris, 2021. Photo Aurelien Mole.
베르트랑 라비에의 작품은 고대 유물이나 금, 도자 같은 장식품을 보관하는 진열장을 전시실로 만들어 자신의 작품 시리즈를 케이스화한 전시를 선보였다. Walt Disney Productions 1947–2018 n°6, 2018. ⓒBertrand Lavier / ADAGP, Paris 2021, exhibition views of Ouverture,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Paris, 2021. Photo Aurelien Mole.
부훌렉 형제가 디자인한 실외 벤치는 안도 타다오의 원형 실린더의 연속으로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Studio Bouroullec Courtesy Bourse de Commerce- Pinault Collection Photo Studio Bouroullec
로통드 전시 공간에는 부훌렉 형제가 아르텍과 함께 개발한 ‘로프 체어’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산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강철 튜브로 만들어 간단하지만 두꺼운 로프로 다소 역동적인 지지대와 등받이를 디자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