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연식이 되어 보이는 아파트 입구를 지나 집안으로 들어서자 외부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과는 상반되는 젊고 유니크한 매력이 가득했다. 집 안을 가득 메운 미드센트리 모던 빈티지 가구를 비롯해 소품 하나하나에서 집주인의 취향이 단번에 읽혀졌다.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있는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소 르네의 캐비닛과 르 코르뷔지에의 LC3 라운지 체어, 에로 사리넨의 다이닝 체어 그리고 주방을 밝히는 조지 넬슨 조명까지…. 이곳은 아파트멘터리의 브랜딩을 총괄하는 하태웅 씨와 카카오커머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송현정 씨 부부의 첫 번째 보금자리다. “결혼한 지 2년차 된 신혼부부예요. 결혼 전부터 키웠던 고양이 밤이와 결혼하고 데려온 둘째 벼루와 함께 살고 있어요.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의 밤이와 달리 벼루 는 아직 9개월 밖에 되지 않아 힘이 넘치죠. 둘의 성향이 너무 달라서 상극이에요(웃음)”라며 부부가 반려묘 두 마리를 소개했다. 전셋집인 터라 별도의 리모델링을 하지 않기로 한 부부는 낡은 벽지만 교체하고 온전히 자신들의 취향이 담긴 가구와 소품으로 인테리어를 꾸미자고 타협했다. “리모델링은 하지 않았지만 집안에 저희만의 스타일은 담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공간에 맞는 적절한 가구로 스타일링을 했어요. 둘 다 미드센트리 모던 스타일의 가구를 좋아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동양적인 선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자연스럽게 동양적인 소품과 유럽의 빈티지 가구를 하나 둘씩 구입하게 되었고, 지금은 전체적인 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게 모호해졌어요. 뭐랄까, 오히려 저희만의 스타일이 완성된 게 아닌가 싶어요.” 하태웅 씨의 설명을 듣고 다시금 집 안을 찬찬히 살펴봤다.
유럽 빈티지 장식장 위에는 답십리에서 구입한 180년 된 도자가 있고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모빌 옆으로 수묵화에서나 나올 법한 수려한 곡선이 인상적인 동양적인 식물을 배치했다. 동서양의 매력이 한껏 느껴지는 다양한 물건이 의외의 조화를 이루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다못해 손을 대지 않은 오래된 몰딩과 마룻바닥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누렇게 바랜 인터폰마저 전체적인 분위기를 멋스럽게 만들었다. 심심한 벽면에는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을 작품처럼 걸어 달콤한 신혼 분위기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가구를 배치할 때도 어떻게 하면 전형적인 아파트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소파를 벽에 붙이고 그 맞은편에 TV를 놓는 것이 일반적인 아파트의 모습이잖아요. 저희 부부는 판에 박힌 그런 구조에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실에 베리에이션을 많이 줬어요. 암체어와 소파를 마주보게 배치하고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창가에 두어 창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을 바라볼 수도 있어요.” 남편이 설명했다. 이들 부부는 감각적인 분위기의 카페와 전시를 즐겨 다녔지만, 팬데믹으로 외부 활동이 점점 줄어들면서 집 안에 자신들의 취향을 녹여낸 전시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물로 이 ‘컬렉터의 집’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장도 수납 기능보다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기 위해 세팅했어요. 저희가 여행지에서 사온 물건이나 오브제를 집 안에 전시해보자는 생각으로 이런 합이 만들어졌어요”라며 아내가 말했다. 남편 역시 좋아하는 식물이나 화기를 진열할 수 있는 선반을 제작해 시즌마다 큐레이션을 달리하며 소소하지만 예술적인 감성이 흐르는 부부만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다고. 결과적으로 집 안에 부부만의 전시 공간이 생긴 셈이다. 이들의 첫 번째 신혼집은 단지 먹고, 쉬고, 자는 것뿐 아니라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며 부부만의 전시 공간으로 거듭났다. 마지막으로 언젠가는 넓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덴마크의 루이지에나 미술관에서 봤던 원형 계단이 있는 2층집을 꿈꾼다는 이들 부부가 써내려갈 앞으로의 시간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