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혼 5년차에 접어든 김은지, 조인호씨 부부는 1년 전 용산의 한 아파트에 112m²의 두 번째 신혼집을 꾸렸다. 겉으로는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아파트였지만, 이는 부부의 선택에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강과 인접해 있어 언제든 산책을 나갈 수 있다는 점은 함께 살고 있는 북실북실한 갈색털과 단추같은 눈망울을 지닌 반려견 푸에게도 충분히 좋은 공간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마자 팽그르르 돌며 적극적으로 반기는 푸의 모습 뒤로 비초에 606시스템 선반으로 벽 한 면을 메운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선반과 마주보는 공간에는 묵직한 스틸 프레임과 검은 가죽 등받이의 비초에 620 소파가 놓여 있었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했던 게 비초에 제품이에요.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새로 이사하는 집의 인테리어 방향을 결정하기 전에도 꼭 놓아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죠(웃음).” 남편 조인호 씨가 말했다. 특히 학생시절부터 모은 가구가 꽤 있었던지라 리모델링을 함에 있어 마치 정리정돈의 과정을 거치듯 다양한 가구가 혼재되지 않고 각자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타의 것을 가리거나 비워둘 수 있도록 고안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였다. 물론 가장 먼저 선택한 비초에 가구를 중심으로 집의 모습을 갈무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도화지같이 깔끔한 느낌을 주기 위해 벽을 모두 화이트 톤으로 마감한 덕택에 곳곳에 놓인 가구가 제 색을 뚜렷하게 발휘하고 있었다. 이전 집은 블랙 컬러가 메인이었던 것에 비해 지금의 집은 저층인지라 볕이 비교적 잘 들지 않을것 같다는 점을 고려해 최대한 밝은 인상을 주려했던 이유도 있었다. 액자처럼 걸린 TV 아래 놓인 오렌지 컬러의 USM장과 거실과 주방 사이에 놓인 프리츠한센 다이닝 테이블, 그 위에 달린 아르텍 벌집 램프, 컬러 별로 놓인 임스 체어 등 아이코닉한 디자인 가구는 이런 의도의 연장선상에 놓인 요소다. “하나씩 디자인 가구를 사모으기 시작한지 꽤 되었어요. 무언가를 살 때 저희 부부는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서로에게 하는 편인데, 이 기준에 가장 부합하기도 했고요. 그중에서도 프리츠한센 테이블은 많이들 사용해서 흔하기 때문에 망설여지긴 했지만, 오래도록 눈에 밟히더라고요. 이 마음이면 꾸준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죠.” 디터 람스를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꼽은 부부는 그의 디자인 철학처럼 많은 아이템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고심하며 하나둘 채워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 백패킹이나 러닝을 즐기지만, 좀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요즘은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내추럴 와인을 즐기는 시간을 자주 가진다고 덧붙였다.
푸를 위한 인테리어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곳곳에 모로칸 스타일의 폭신한 러그를 깐 것은 물론, 일반적인 강마루와 달리 발이 닿으면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바닥재를 선택했기 때문. 바닥이 미끄러울수록 반려견의 관절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덕분에 푹신한 러그를 좋아하는 푸는 종종 장난감을 꺼내와 러그 위에서 장난을 치곤 한다. 푸가 좋아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창밖으로 조금씩 들려오는 소리와 풍경이다. 2층에 살고 있어 굵은 줄기를 지닌 나무가 종종 그림처럼 창에 걸리는 모습이 연출될 때도 있고 사람들의 크고 작은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곤 하는데, 이러한 것이 신기한 듯 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푸가 벌써 8살이에요. 3년간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처음 봤을 때의 푸는 8, 9개월밖에 안 되었거든요. 물론 함께 하고서 부터 푸가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다 보니 점점 남편과 함께하는 둘만의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가족이니까요. 그냥 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아요.” 자연스레 유기견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게 됐다는 부부는 시간이 흐른 뒤 가능하면 정원이 있는 집에서의 삶도 꿈꾼다고 밝혔다. “아직 여력은 안 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을 임시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잠깐이겠지만, 행복한 기억을 선사해주고 싶은 거죠. 정원이 있다면 푸도 뛰어놀기에 좋을 것 같고요. 가능하다면요.” 가볍게 얘기했지만, 너른 풀밭에서 뛰어다니는 푸와 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잠시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