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의 기억
금속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완성되기까지는 뜨거운 열에 녹이고 담금질과 두드림의 과정을 견뎌야 하는데, 차분하게 열이 식고 난 후의 금속은 차가움 그 자체다. 류연희 작가의 은 작품을 바라보며 사뭇 여름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무더운 여름 한낮의 열기를 견디고 난 후 밤에 맞이하는 찰나의 바람은 순간 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고 달다. 얼음처럼 차갑게 보이지만 손에 쥐면 지난 열기의 묵직함을 간직하고 있는 은의 매력이 여름과 꼭 닮았다. editor 신진수
소리가 기억한 계절
기이하게도 여느 계절과 달리 여름의 기억은 소리로 남는다. 서늘한그늘이 드리운 너른 풀밭, 흘러나오는 음악과 둘러앉은 이들의 말소리까지. 귀가 이 계절의 인상을 기억하는 것만 같다. 맑고 풍성한 사운드가 아니더라도 한 손에 너끈히 잡히는 차가운 구리와 황동의 촉감, 옻으로 형형색색 칠한 색을 두른 아날로그 스피커와 음악이 담긴 휴대폰 하나만 있어도 이 계절의 기억은 머릿속에서 선연한 모습으로 재생된다. editor 이호준
청산에 살어리랏다
예부터 여름철 최고의 전통 소재 모시는 까슬까슬한 촉감이 시원하고 멋스럽다. 그런데 모시는 햇볕이 들지 않는 서늘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그 때문인지 모시로 만든 옷은 왠지 뜨거운 햇볕 아래 일을 할 때 입는 것이 아니라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는 여유로운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조상들의 멋이 한껏 느껴지는 여름날처럼 우리도 지혜롭고 멋스럽게 이 여름을 향유할 수 있기를! editor 권아름
어느 심해 속 아름다운 신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에메랄드 바다 그 깊은 곳에 잔잔하게 고요함이 머무른다. 눈을 감고 심해를 떠올릴 때면 알 수 없는 평온이 찾아온다. 투명한 해파리, 신비로운 해양생물이 떠돌것만 같은 그곳. 박혜인 작가가 만든 이 유리 작품을 보면 이런 상상을 시각화해준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 속까지 영롱함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묘한 형태가 주는 즐거움까지. editor 권아름
고아한 미감
태양은 뜨겁지만 그늘을 찾아 들어가면 서늘함이 느껴지는 날씨, 휴가철이 다가오면 해변에 깔린 새하얀 모래를 밟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짙은 태토 위로 그와 대비되는 분장 토를 흘리듯 얹고 최소한의 연마 작업으로 마무리한 김규태 작가의 어글리 포트는 기억 저편의 한없이 뜨겁고 고운 백사장의 모래를 흩뿌린 듯하다. editor 원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