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파크는 위치부터 의미가 깊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그 바다가 바로 눈앞에서 시원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편에는 통영과 한산도가 보이며, 1년 내내 아름다운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천혜의 명소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원래 수산물 가공 공장이었다니 놀랍다. 허옥희 대표는 오래전부터 이 아름다운 대지를 문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고민해왔다. 그러다 1년 전 미술가 최정화를 만나면서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아트 스테이가 만들어졌다. 참치와 굴을 가공했던 공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문형석의 아이디어로 리노베이션했다. 완전히 새로 짓기보다 부지의 역사를 살린 건축물로 완성한 그의 아이디어가 놀랍다.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건축 거장 리처드 마이어와 함께 일했던 젊은 건축가다운 도발적인 선택이다. 여러 개의 건물이 가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흰색 건물에는 수영장과 라이브러리가 있고 검은색 건물에는 미술관이 있다. 바다 쪽 정면에서 보면 수영장이 작게 보이는데, 2층에 직접 올라가보면 깜짝 놀랄 만큼 크고 멋지다. 수영장 수심은 바다를 향해 갈수록 깊어지는데,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성인 키 정도로 깊다. 바닥에서 새로운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오며 흰 벽에 설치한 이국적인 샤워기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의 수영장은 기존 건물의 구조가 보여 그리스 유적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반대 방향에서 보는 수영장은 순백의 깔끔한 배경이라 완전히 다른 공간 같은 인상이다. 수영장의 백미는 네덜란드 아티스트 그룹 MVRDB의 조각 작품일 것이다. 형형색색의 작품이 수영장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그늘에는 테이블도 비치되어 있는데, 가장 시원한 곳으로 인기가 높다. 바닷바람이 솔솔 부는 테이블에서 샴페인 한잔하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수영장 위층에는 라이브러리와 카페가 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망이 좋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바다에 떠 있는 고깃배를 바라보다 보면 책보다 바다를 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단점이 있을 것 같다. 바로 옆에 있는 작고 동그란 7개의 건물은 호텔이다. 두 동은 복층이고, 다섯 동은 단층이다. 복층 건물의 2층에는 야외 테라스가 있어 투숙객들이 이곳에서 바닷바람을 쐴 수 있다. 단층 호텔의 욕실에는 천창이 있어 샤워를 하면서 구름과 별을 볼 수 있다. 낮에는 햇살이 비추기 때문에 샤워를 하자마자 히노키 욕실이 잘 마르는 것은 물론이다. 호텔 내부는 원목으로 꾸며져 있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호텔이 7개 동뿐이기에 개관하면 예약이 치열하지 않을까 싶다. 건축물 곳곳에는 밧줄을 이용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밧줄은 마치 큰 배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인데, 이는 박희웅 회장과 허옥희 사장 부부가 오랫동안 종사해온 수산업에 대해 건축가가 보내는 경의의 표현이다. 또한 수영장처럼 천장이 없는 야외 공간에 설치한 하얀 밧줄이 바람에도 굳건하게 버티는 모습은 미학적으로도 훌륭하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햇살에 드리워졌다가 금세 사라지는 밧줄 그림자도 매혹적이다. 1만2000평의 대지에는 조각공원과 정원이 있다. 원래 이 바닷가에는 나무가 많았는데, 바다를 시원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최정화 예술감독과 김봉찬 조경전문가의 의견으로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제주의 ‘베케 Veke’ 가든으로 유명한 조경전문가 김봉찬이 바닷 가에 손수 키가 큰 화초를 심었고, 수영장 옆에는 덩굴식물, 뒤편에는 다채로운 과일나무를 심었다. 요즘에도 매일 정원사들이 정원을 가꾸고 있지만 제대로된 정원을 보기 위해서는 1~2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김봉찬 조경전문가의 정원은 비료와 농약, 거름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조경이 특징이다. 거제도의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기 위한 아름다운 선택이다.
오른쪽 해변에는 최정화 작가의 대표작 과일나무 조각과 대한민국 위인 조각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정원의 중심에 작품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거제도의 바다를 먼저 감상하고 미술 작품을 보여주고자 하는 최정화 작가의 배려인 듯 하다. 과일나무 조형물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만큼 멀리에서도 눈에 띈다. 대한민국 위인 조각 작품은 방문객들이 바닷가를 한참 거닐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보석같은 작품이다. 필리핀 대리석으로 만들었지만 한동안 버려졌던 영웅들의 조각상과 그 좌대가 따로따로 전시되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 펼쳐진 한산대첩을 굳이 생각하지 않고 조성한 조각 공원이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조각도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 100m길이의 공간에 50개의 조각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보면 더욱 근사하다. 왼쪽 해변의 대형 돌 조각도 포토 스팟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거대한 부조 조각 20개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작품으로 변신했다. 최정화 작가는 이 작품을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소리들’이라 명명했다. 영국의 스톤헨지를 연상시키는 숭고한 작품이다.
두 곳의 프라이빗 해변은 바지락도 캘 수 있는 숨은 명소인데, 조각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운동장과 야외 무대도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다. 거제의 산에서 가져온 큰 돌로 만든 야외 무대는 파란 바다가 배경이니 더 이상의 장식이 필요 없다. 앞으로 이곳에서 연주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호수 위의 무대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 Bregenz Festival이 부럽지 않을 것 이다. 아그네스 파크는 9월 초에 개관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정화 작가가 지속적으로 아트 스테이를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 하니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거제도민과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문화 아카데미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며, 투숙객이 아니라도 조각공원과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 새로운 명소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아그네스 파크가 만들어갈 아트 스테이의 새로운 정의를 기대해본다. 거제와 통영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