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레플레이의 출발은 ‘우연’이었다. “카페를 하려고 한 게 절대 아니에요. 건물주는 따로 있고 이곳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저는 그저 도움만 주는 입장이었죠”라며 윤이서 디자이너가 입을 열었다. 본래 신당동 시장 골목은 보신탕집과 점집이 많아 열악한 환경으로 유명하다. 이후 차츰차츰 중고 가구상이 들어와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몇년 전만 해도 쌀을 파는 미곡상의 도매 가게로 가득했다고. 현재는 중고 주방용품 가게가 하나씩 들어오면서 이 작은 시장 골목이 조금 더 정신 없고 험해진 탓도 있다. “여기는 여관도 아닌 여인숙이었어요. 입구에서부터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시설이 정말 남루했어요. 주변 상인들이 벽에 소변을 보거나 학생들이 몰래 담배를 피우는 장소이기도 했고요. 바닥이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어요.” 말 그대로 지금의 레레플레이가 완성되기까지는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있었던 것. 애초 카페를 운영할 계획이 없었다는 그녀는 건물주가 원하는 대로 최소한의 자재만 들여 원룸을 계획하고 있었다. 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비좁은 골목이라 철거만 해도 수개월이 걸렸지만 이 과정에서 그녀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제가 본격적으로 이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지금의 2층은 여인숙이었을 당시 시멘트만 대강 발라두고 바람이 다 통하는 곳에 수도꼭지와 세숫대야 하나만 있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욕실이었어요. 바닥도 다 썩어문드러져 있었죠. 그런 2층의 천장을 뜯어보니 옛날 나무가 나왔어요.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살짝 손만 댔더니 우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중정이 생겼어요. 그걸 보는 순간 나무를 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 거죠.” 무언가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 윤이서 디자이너는 건물주를 설득해 이곳을 복합 공간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입구 쪽으로 조그마한 주방을 만들고 그 안에 의자 몇 개를 두어 카페로 운영하고 2층은 갤러리로 만들어보겠노라고 방향을 바꿨다. 여러 전문가와 함께 팀을 꾸려보고자 했지만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고, 어떻게 하면 이 건물을 효율적이고 현실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가장 적합한 콘텐츠는 무엇일지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했다. 그때 카페야말로 이곳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카페를 운영해본 적은 없지만 제 나름대로 다회도 열고 이런저런 것을 하고 있었어요. 커피는 물론 몸에 건강한 베이커리 등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저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었죠. 이를 대중과 만나는 지점을 찾아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카페는 제게도 새로운 도전이었고 재미있는 프로젝트였어요.” 레레플레이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많은 것이 임기응변이었다. 곰팡이가 쓴 벽을 걷어내고 화가의 섬세한 붓터치로 벽을 새롭게 칠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난간은 이 집에서 나온 파이프를 그대로 살린 것이며, 중정 바닥에 깔린 디딤돌 역시 두꺼운 시멘트 밑에 숨어 있던 구들돌을 활용하는 등 마지막 한 톨까지 쓸 수 있는 것은모두 살렸다. 그녀는 무심코 결정할 수 있는 카페 이름도 여러 의미를 담아 신중하게 지었다. “Re make, re cycle은 우리가 지구를 위해 의무감을 가지고 해야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우리가 지구를 위해 사는게 아니라 진정 나를 위해 살면 지구는 저절로 깨끗해진다고 생각해요. 정작 우리는 아무거나 먹고 나에 대한 기준은 없는데 지구에 대한 기준만 있죠. 예를 들어 좋은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리플레이 버튼을 누르잖아요. 리플레이하는 삶을 살고 싶은 거지, 리사이클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 개념을 보다 능동적인 단어로 표현하자면 리플레이인 거죠. 거기에 Re를 하나 더 붙여 레레플레이로 지었어요. 커피 한잔을 팔아도 이처럼 명확한 기준이 있다는 걸 고객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앞으로 레레플레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하자 그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요일마다 이곳 시장 골목에서 플리마켓이 열려요. 모든 중고상이 밖으로 나와 각종 물건을 팔아요. 여력이 생기면 레레플레이의 개념으로 플리마켓을 열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밖에서 시장 할아버지들이 파는 것도 구경하고 저희 물건도 구경할 수 있도록요. 중고도 좋지만 작가들과 협업해 그들의 재고품이라든지 다음 작업을 위해 소진하고 싶은 것을 좋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를 생각하고 있어요.” 문득 신당동 시장 골목을 활보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