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삶을 사는 공간이다’라는 진부한 말에 어느 때보다 긍정하게 되는 요즘, 이대로 성실하게 지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처음 마주한 가족은 셋째를 소중히 품고 있는 엄마 조성희 씨와 달콤한 낮잠에서 막 깬 둘째 해인이었다. 해인이의 귀여운 걸음걸이를 따라가니 198㎡를 가 늠할 수 있는 넓은 거실과 만났다. 조그마한 몸집의 18개월 아기의 시선에는 운동장처럼 보일 만큼 널찍한 거실과 통창으로 탁 트인 뷰가 인상적이었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지만, 육아의 흔적은 희미했다. 성희 씨의 인테리어 취향이 집을 한결 정돈된 모습으로 다듬어준 이유다. “시선을 뺏을 만큼 튀거나 잠깐 스쳐 지나가는 유행 아이템은 좋아하지 않아요. 집은 편안해야 한다는 생각에 뉴트럴 톤의 컬러를 주로 선택하고 빈티지하거나 현대적인 가구를 좋아하는데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에요”라고 말한 그녀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쿠션, 그림으로 컬러 포인트를 준다고 덧붙였다. 공간마다 걸린 오리지널 포스터는 구입처, 구입 시기가 각기 다르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데 취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혼 전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아내와 달리 남편은 집은 지저분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주의다. “남편은 제 취향을 존중해주는 편이에요. 다만 기능 없이 단순히 보는 것에만 그치는 오브제는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이 점은 제가 남편 취향을 따라갔네요. 언제부턴가 저도 추상적인 오브제는 찾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그녀가 웃었다.
이 집은 조성희, 주지현 부부의 세 번째 집이다. “전에 박물관 관장을 지내던 분이 살았는데, 집도 박물관처럼 살림이 가득했어요. 그 짐만 빠지면 우리다운 집을 꾸밀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택했죠. 천편일률적인 여느 아파트와 달리 곳곳에 주택의 모습을 띤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남편이 거실 벽을 페인트칠한 것 외에는 그대로 살고 있어요. 지금까지 리모델링을 하며 산 적은 없어요.” 성희 씨의 설명처럼 그들이 집을 찾는 기준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살림을 늘리지 않고 깔끔하게 살 자신이 있기 때문에 집의 컨디션이 괜찮은 곳, 공간이 나누어진 곳보다 넓게 트인 것에 만족했다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복도를 따라 왼쪽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지는 구조가 재밌다. 7살인 첫아이 아인의 방과 컴퓨터방이 나온다. 아이 방은 다른 공간에 비해 컬러를 많이 들였지만 채도가 낮은 컬러가 주를 이룬다. 아인이가 직접 고른 침대와 엄마의 감각이 함께 어우러진 포근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무채색으로 채운 컴퓨터방은 이베이 직구로 구한 구찌니 조명으로 포인트를 줘 개성을 살렸다. 온 가족이 누워도 넉넉한 패브릭 소파가 놓인 거실은 가족의 아지트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가족 놀이터와 같은 곳이다. “코로나19 이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어요. 정말 집이 일상 그 자체예요. 둘째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태어나서 할머니 집 외에는 바깥세상 구경을 잘 못했죠. 요즘처럼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고, 집 앞 놀이터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다는 건 부모인 저희한테도 위안이 되더라고요. 넓은 집을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에요.” 성희 씨가 말했다. 평범하고도 안전한 일상이 이 집에 고스란히 쌓이는 중이다.
묵직한 색감의 아일랜드 주방 옆으로는 다이닝룸이 자리하고 있다. 6인용 테이블을 놓았는데, 최대 10명까지도 가능해 가까이 사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유용하다. 침실은 성희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결혼 전부터 기르던 반려묘 우엉이와 토비도 이곳에서 가장 오래 머문다. 침실 한편에는 다른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팔각형 모양의 여유 공간이 있는데, 창이 시원하게 나있어 근처 공원의 초록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남편과 와인 한잔하거나 혼자 책을 보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부부 모두 만족하며 사용하는 모션 베드, 직접 제작한 책장, 볼수록 멋있는 빈티지 테이블 등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것으로 집 안을 채웠다. 공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이템이 있는데 바로 러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곳곳에서 러그를 수입해 판매하는 수입 러그 전문 회사 이씨라 메종을 이끌고 있다. “공간의 성격에 따라 러그를 다르게 선택해야 만족하며 사용할 수 있어요. 침실, 아이 방은 발이 닿는 느낌이 푹신한 러그를, 의자를 놓고 사용하는 컴퓨터방이나 다이닝 룸은 짜임이 있는 탄탄한 러그를 선택했죠.” 그녀는 러그가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해 넓은 곳에서는 포인트 아이템으로 활용해도 좋지만, 좁은 장소에서는 바닥과 비슷한 컬러를 선택해야 더 넓어 보인다는 팁도 잊지 않았다. 이제 이 가족은 네 번째 집으로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 첫째 아인이가 건강하게 뽕 나오라고 지어준 뽕이라는 태명의 셋째까지 일곱 가족으로 완전체가 되면 새 집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일상을 쌓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엄마의 취향은 또 어떤 멋진 그림을 그려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