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함께하는 일상이 담긴 작가 최성우의 파주 작업실
나무를 다루는 작가 최성우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진 도구는 파주에서 보내는 그의 나날을 대변하고 있었다. 무해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모두에게 하루는 동등하게 주어질 테지만, 아침으로 둔갑한 오후가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이 될 수도, 밤과 아침이 뒤바뀐 삶을 살아내기도 하는 등 그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최성우 작가는 하루의 시작을 어슴푸레한 안개가 낀 산 언저리 모습으로 기억한다. 새벽같이 파주에 위치한 작업실로 출근해 산책하듯 작업실 뒷산을 거닐며 주변을 관찰하는 것으로 물꼬를 트기 때문. 최성우 작가는 2년 전쯤 파주에 공방 겸 숍인 일상의 도구점을 차렸다. 처음에는 집 한 켠에 방음 장치를 설치해 작업을 하다 자동차 정비소 지하로 옮기기도 했지만, 이내 파주로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유를 파고들자면 그의 독특한 이력부터 짚어봐야 한다. 엔진공학을 전공한 최 작가는 10년여 동안 외국계 자동차 부품 회사를 다녔다. 예술이나 목공과는 전혀 접점이 없지만, 프랑스 여행 차 방문한 퐁피두 센터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마주한 이후, 새로운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쓰신 구본형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꿈을 찾고 싶다고 말했죠. 변화하기 쉽지 않은 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목공예를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도 도움이 됐어요.” 구태여 목재를 선택한 데에는 어린 시절, 손재주가 좋았던 할아버지와 나무를 만지며 보냈던 시간이 정처럼 남아 있는 이유도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목표의 윤곽을 그린 시점부터 디자인 기초를 다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마치 디깅 Digging이라도 하듯 주말마다 최경원 교수를 찾아가 색, 평면, 입체 구성 등을 배우며 디자인 지식을 하나둘 쌓아갔다. 목공 기술 또한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현재 작업실 옆에 위치한 반김 크래프트의 양병용 작가에게서 목재에 대한 지식과 이를 다루는 스킬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지하에서 작업을 할 때만 해도 뻗어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햇빛이 들어오지도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때 작가님께서 자신의 작업실 옆 공간이 비어 있다고 얘기하셨어요.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종종 들렀던 곳인지라 익숙하니 잘됐다 싶었어요. 저를 파주로 오게 해주신 분인 거죠.” 처음 작업실로 쓸 공간을 마주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던 빈 곳인지라 막막함도 느꼈었지만 최성우 작가는 하나하나 공간을 꾸려나갔다. 본래 좁고 단층이었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복층형 구조로 내부를 재편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붕과 바닥까지 보수해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1층은 큰 나무덩이를 재단하는 기계실과 세심한 수작업을 하는 곳으로, 위층은 사포질과 옻칠을 위한 공간으로 두었다. 달라진 건 밝은 해가 들어오는 작업실뿐만이 아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고택이나 한옥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어요. 공예를 알기 위해 삶의 모습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골이나 지방이라고 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파주는 되게 깨끗해요. 너른 평지도 있고, 작업실 뒤에는 산도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사계 같은 자연의 변화가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서울에서는 추워지고 더워진다는 느낌만 근근이 느껴졌는데 말이죠. 더 민감해질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작업 스타일이 한층 확장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최성우 작가는 덧붙였다.
그는 지천에 자란 나무를 관찰하며 목재를 보는 눈을 조금 더 넓힌 것은 물론, 썩고 뜯겨나간 나무 껍질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이파리의 모습 등에도 주목했다. 늘 같게만 보였던 돌멩이가 지닌 각각의 디테일을 보면서 기존의 세공 방식에도 꽤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이제껏 나무를 파내면서 세공하는 일반적인 크래프트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면, 벚나무 껍질을 살짝만 다듬어 차 도구를 만든다든지 자연물이 본래 지닌 형태를 최대한 온전히 유지해보는 방식도 도전해요. 기존의 세공 방식을 그대로 쓰는 대신 목재의 종류를 바꿔보기도 하고요.” 재료에 대한 존중과 시도는 곧 작업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고, 괄목한 결과로 나타났다. 일상의 도구점을 운영하며 주로 숟가락이나 젓가락 등의 수저, 집기류를 선보였던 그지만, 자연물을 활용한 수저 받침, 다하 등 제품의 범주와 종류도 보다 넓혔다. 최 작가의 작업 범위가 확장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품도 있는가 하면, 주문 제작을 통해 타인의 일상에서 필요와 쓰임에 맞춰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 “각자 손에 익는 손잡이 크기와 길이도 확연히 다른 만큼, 그분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다 보면 더 유니크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해요. 가령 그립감을 키우기 위해 젓가락의 한 면을 더 잘게 각을 내 만드는 등 세세한 요소에 신경을 쏟는 것처럼요. 누군가의 필요와 쓰임이 곧 제게는 공예적인 성취로 바뀌는 거죠.” 볕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사계가 피부로 와닿는 이곳 파주 작업실로 오기까지 단 한 차례도 정체된 적 없었지만, 그는 나아가고 자라는 감각을 여전히 바란다고 말했다. 변치 않을 바람이라면 파주에서 자라난 그의 열망은 매일 조금씩 몸집을 키워나가지 않을까. 무해하고 아름다운 기물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