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④ 미완의 미학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의 주말다운 주말을 책임지는 전원주택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의 주말다운 주말을 책임지는 전원주택

여전히 채워나갈 것이 많다는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는 일말의 조급함 없이 그저 좋아하는 것들만 아스라히 자리할 집을 만들어간다. 미완성의 공간이 품어낸 너른 여유를 만끽하며.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정원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 8살 일레븐과 2살 올리브. 촬영팀을 가장 먼저 맞이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최혜진, 윤권진 대표. 촬영하던 중 옆집 강아지 디오가 놀러와 함께했다. 쭉 내민 혀와 먼지 같은 털이 시선을 끈다.

 

10여 년간 페르마타를 운영해온 최혜진, 윤권진 부부에게 서울은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도시였을 테다.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신에 있어 늘 감도 높은 결과물을 선보였던 그들은 한국의 메트로폴리스에 도사린 시류를 헤집는 높은 이해도와 기민한 감각을 줄곧 유지해왔다. 그랬던 이들이 4년 전 선택한 새로운 거주지는 다소 의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도 막히는 날엔 서울에서 2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용인 맹리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당이 있는 집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꿈을 품고 있잖아요. 기왕이면 시골로 가보자라고 결심하게 된 거죠. 물론 서울을 아예 벗어나는 것이다 보니 고민을 헤쳐나갈 시간이 길긴 했지만요. 정작 실행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더라고요.” 윤권진 대표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할 흙밭을 고른 다음, 땅의 모양에 따라 집터를 내고 남쪽을 바라보는 주택을 쌓아 올리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부는 흐르는 시내와 뒤편에 우거진 숲이 사이에 자리한 집터를 보며 마치 물과 나무가 둘의 공간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인상에 매료되어 자연의 품에 들어온 것처럼 집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보이길 바랐다고. 돌계단을 올라 마주하는 정원의 모습 그리고 집에 들어서면 부부보다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수십 종의 식물은 이 같은 바람의 부산물이다. 탄탄한 계획을 바탕으로 실행한 이주가 아니었기에 198㎡ 규모의 주택을 완벽히 채울 수는 없었지만, 자칫 군데군데 휑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메워준 것 또한 식물이었다. 페르마타에서도 작은 텃밭 겸 정원을 운영해왔던 부부는 이곳 맹리 집에도 직접 가드닝과 식재를 시도했다. 작은 텃밭과 달리 마당이라 부를 만한 너른 땅에 가드닝을 해야 하는지라 시행착오를 꽤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가 들인 노력만큼 어느 순간에 이르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여러 색과 수형의 식물이 제 존재감을 가득 뿜어내기 시작했다.

 

부부가 키우는 반려동물 중 가장 연장자인 미우. 따뜻한 볕이 드는 곳에서 잠든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 옆에 있는 작은 바비큐 가든의 테이블에는 멋스러운 우드 스틱과 향초를 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부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다이닝 공간. 위에는 커다란 라탄 조명을 달았고, 아래에는 큰 테이블을 두었다. 비스듬한 천장에 난 창문은 채광과 후드 역할을 겸한다.

 

부부는 정원만큼 머무는 곳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층과 2층으로 나눠지긴 했지만 모든 공간에는 방과 방을 구분짓는 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구태여 밖과 안을 나누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안과 안이 역할에 따라 인위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다 연결되어 있었으면 했던 부부의 생각이 십분 반영된 결과다. 1층만 보더라도 크게 다이닝 공간과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이 마련되어 있지만, 두 공간을 구분 짓는 별도의 문이나 가림막은 없다. 오히려 군데군데 창을 내 어디서든 밖을 볼 수 있게끔 한 모습을 더러 발견할 수 있다. 부부의 집에서는 페르마타에서 으레 봤을 법한 면모까지 더러 눈에 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둘은 직접 내부를 꾸며왔다. 세월을 얼핏 헤아리기 힘든 고재 가구나 러스틱한 오브제, 시원한 인상을 단박에 안겨주는 라탄과 케인 조명, 의자는 페르마타와 이 집이 오롯이 부부의 취향의 결과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특히 큰 목제 테이블을 둔 다이닝룸은 최혜진 대표가 특히 애정하는 곳으로, 여럿이 함께할 만큼 널찍한 상판이 마련되어 그에게 다양한 여지를 남기기 때문. 때로는 일감을 집 안으로 끌어오더라도 이 테이블에서 업무를 보고, 손님이 찾아오면 이곳에서 하염없이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로 쓰이는 공간의 일부. 이곳은 이제 미우의 주 영역이 되었다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에는 멋스러운 고재 장과 오브제를 두었다.

 

윤권진 대표의 애정은 주택 뒤편으로 향한다. 목공 작업이 취미인 윤권진 대표를 위해 뒷마당 한 켠에 마련한 공방과 지금 한창 짓고 있는 온실은 그의 애정을 한몸에 받는 스폿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에서 부부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존재는 바로 두 마리의 반려견 과 한 마리의 반려묘다. 8살 일레븐과 2살 올리브 그리고 열두 해를 살아온 미묘 미우는 맹리 주택의 최대 수혜자다. 마당은 일레븐과 올리브가 늘상 뛰어다니는 곳으로, 본래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처럼 쓰일 예정이었던 장소는 미우의 아지트가 되었을 정도. 서울에 일터를 두고 있어 주말에만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데, 세 마리의 반려동물 모두 주말만 기다리는 것 같다며 부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여전히 고쳐 야 할 부분과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멋쩍게 말하는 부부의 모습에서도 묘한 행복감이 도사린 듯한 착각은 어쩌면 잘못 본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씩이지만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나가는 이곳은 오롯이 이들 가족을 위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지금은 주말에만 이곳에 와요. 전원주택이니만큼 때로는 넘쳐나는 잡일에 여기서의 생활이 하염없이 싫다가도 때로는 벅차도록 행복하죠. 이곳에서는 주말이 정말 주말다워져요. 우리를 위한 공간에 우리를 두고 온전히 제 자신한테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여기 있으면 조급해지지가 않아요. 시간을 두고 하나씩 꾸며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죠. 서두를 필요가 없잖아요. 어차피 여긴 우리를 위한 곳인걸요.” 귀에서 맴도는 최혜진 대표의 말에서 군데군데 남겨둔 집의 여백이 다시금 읽혀지는 것만 같았다.

 

가든에서 보이는 조경과 벽이 이국적인 느낌을 한껏 낸다. 지금은 한풀 졌지만, 시기를 잘 맞춘다면 만개한 수국이 만드는 장관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윤권진 대표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데스크가 있다. 주로 여기에 앉아 킨츠키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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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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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③ 매일 만드는 아름다움

나무와 함께하는 일상이 담긴 작가 최성우의 파주 작업실

나무와 함께하는 일상이 담긴 작가 최성우의 파주 작업실

나무를 다루는 작가 최성우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진 도구는 파주에서 보내는 그의 나날을 대변하고 있었다. 무해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최성우 작가는 작업실 한 켠에 자신이 제작한 목공예품을 진열해두었다.

 

나무를 다루는 작가 최성우.

 

모두에게 하루는 동등하게 주어질 테지만, 아침으로 둔갑한 오후가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이 될 수도, 밤과 아침이 뒤바뀐 삶을 살아내기도 하는 등 그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최성우 작가는 하루의 시작을 어슴푸레한 안개가 낀 산 언저리 모습으로 기억한다. 새벽같이 파주에 위치한 작업실로 출근해 산책하듯 작업실 뒷산을 거닐며 주변을 관찰하는 것으로 물꼬를 트기 때문. 최성우 작가는 2년 전쯤 파주에 공방 겸 숍인 일상의 도구점을 차렸다. 처음에는 집 한 켠에 방음 장치를 설치해 작업을 하다 자동차 정비소 지하로 옮기기도 했지만, 이내 파주로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유를 파고들자면 그의 독특한 이력부터 짚어봐야 한다. 엔진공학을 전공한 최 작가는 10년여 동안 외국계 자동차 부품 회사를 다녔다. 예술이나 목공과는 전혀 접점이 없지만, 프랑스 여행 차 방문한 퐁피두 센터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마주한 이후, 새로운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쓰신 구본형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꿈을 찾고 싶다고 말했죠. 변화하기 쉽지 않은 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목공예를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도 도움이 됐어요.” 구태여 목재를 선택한 데에는 어린 시절, 손재주가 좋았던 할아버지와 나무를 만지며 보냈던 시간이 정처럼 남아 있는 이유도 있었다.

 

세세한 목공 작업이 요할 때는 이곳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정갈하고 소박한 멋이 인상적인 다양한 기물. 은행나무를 모티프로 한 수저와 따스한 매력의 목공 제품을 보면 마음이 한층 따뜻해진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목표의 윤곽을 그린 시점부터 디자인 기초를 다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마치 디깅 Digging이라도 하듯 주말마다 최경원 교수를 찾아가 색, 평면, 입체 구성 등을 배우며 디자인 지식을 하나둘 쌓아갔다. 목공 기술 또한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현재 작업실 옆에 위치한 반김 크래프트의 양병용 작가에게서 목재에 대한 지식과 이를 다루는 스킬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지하에서 작업을 할 때만 해도 뻗어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햇빛이 들어오지도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때 작가님께서 자신의 작업실 옆 공간이 비어 있다고 얘기하셨어요.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종종 들렀던 곳인지라 익숙하니 잘됐다 싶었어요. 저를 파주로 오게 해주신 분인 거죠.” 처음 작업실로 쓸 공간을 마주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던 빈 곳인지라 막막함도 느꼈었지만 최성우 작가는 하나하나 공간을 꾸려나갔다. 본래 좁고 단층이었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복층형 구조로 내부를 재편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붕과 바닥까지 보수해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1층은 큰 나무덩이를 재단하는 기계실과 세심한 수작업을 하는 곳으로, 위층은 사포질과 옻칠을 위한 공간으로 두었다. 달라진 건 밝은 해가 들어오는 작업실뿐만이 아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고택이나 한옥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어요. 공예를 알기 위해 삶의 모습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골이나 지방이라고 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파주는 되게 깨끗해요. 너른 평지도 있고, 작업실 뒤에는 산도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사계 같은 자연의 변화가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서울에서는 추워지고 더워진다는 느낌만 근근이 느껴졌는데 말이죠. 더 민감해질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작업 스타일이 한층 확장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최성우 작가는 덧붙였다.

 

작업실 2층에는 옻칠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한지를 벽지로 사용해 은은한 빛이 들어온다.

그는 지천에 자란 나무를 관찰하며 목재를 보는 눈을 조금 더 넓힌 것은 물론, 썩고 뜯겨나간 나무 껍질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이파리의 모습 등에도 주목했다. 늘 같게만 보였던 돌멩이가 지닌 각각의 디테일을 보면서 기존의 세공 방식에도 꽤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이제껏 나무를 파내면서 세공하는 일반적인 크래프트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면, 벚나무 껍질을 살짝만 다듬어 차 도구를 만든다든지 자연물이 본래 지닌 형태를 최대한 온전히 유지해보는 방식도 도전해요. 기존의 세공 방식을 그대로 쓰는 대신 목재의 종류를 바꿔보기도 하고요.” 재료에 대한 존중과 시도는 곧 작업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고, 괄목한 결과로 나타났다. 일상의 도구점을 운영하며 주로 숟가락이나 젓가락 등의 수저, 집기류를 선보였던 그지만, 자연물을 활용한 수저 받침, 다하 등 제품의 범주와 종류도 보다 넓혔다. 최 작가의 작업 범위가 확장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품도 있는가 하면, 주문 제작을 통해 타인의 일상에서 필요와 쓰임에 맞춰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 “각자 손에 익는 손잡이 크기와 길이도 확연히 다른 만큼, 그분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다 보면 더 유니크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해요. 가령 그립감을 키우기 위해 젓가락의 한 면을 더 잘게 각을 내 만드는 등 세세한 요소에 신경을 쏟는 것처럼요. 누군가의 필요와 쓰임이 곧 제게는 공예적인 성취로 바뀌는 거죠.” 볕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사계가 피부로 와닿는 이곳 파주 작업실로 오기까지 단 한 차례도 정체된 적 없었지만, 그는 나아가고 자라는 감각을 여전히 바란다고 말했다. 변치 않을 바람이라면 파주에서 자라난 그의 열망은 매일 조금씩 몸집을 키워나가지 않을까. 무해하고 아름다운 기물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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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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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② 우리가 있는 곳

부부의 자유로운 영혼을 닮은 여주 카페 디아

부부의 자유로운 영혼을 닮은 여주 카페 디아

문복애, 박정환 대표가 여주에 카페를 오픈한 것은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운명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였든 이들 부부의 자유로운 영혼은 숨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곳 카페 디아처럼 말이다.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망개와 함께한 문복애, 박정환 부부

아직 익지 않은 벼가 촘촘하게 심어진 논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펼쳐진 논밭 옆으로 흰색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나타난 현대식 건물이 주변의 자연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오픈한 지 올해 3년째인 카페 디아는 국내에 숨겨진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알려졌다. 바쁜 주말에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있지만 평일에는 문복애, 박정환 씨 부부가 운영한다. “저는 잡지사의 포토그래퍼였어요. 일을 하다 화가인 남편을 따라 뉴욕 맨해튼에서 15년을 살았죠. 더 일찍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긴 시간을 보냈네요. 한국에 돌아온 후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압구정동에 있는 허형만 커피에서 핸드 드립을 배웠어요. 집에서도 해보고 지인들에게도 커피를 내려주며 즐거운 취미로 즐겼죠. 그러다 이곳 여주에 카페를 내게 됐어요.” 문복애 대표가 커피를 내리며 카페 디아의 시작을 설명했다.

 

남동생이 가져다준 버려진 벽돌을 쌓아서 만든 옥상 의자와 벤치.

 

논길을 달리다 보면 흰색 단층 건물인 카페 디아가 불쑥 나타난다.

 

카페 디아는 창문 어디에서든 자연이 작품처럼 보인다.

 

20년 넘게 버려져 낡고 손볼 것이 많았던 식당 건물을 허물고 내부 인테리어는 온전히 부부가 맡았다.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을 새로 구입하기보다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주의예요. 지하에 화가인 남편의 작업실이 있어서 벽에 작품을 걸 수 있었고, 뉴욕에서부터 사용했던 가구와 소품, 주변 친구들의 준 물건들을 배치했죠. 식물도 양재동에서 직접 사다 나르고, 이리저리 테이블도 옮겨보면서 천천히 완성했어요”라는 아내의 말에 “오합지졸이에요(웃음). 하나의 컨셉트로 밀어부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된 거예요”라며 박정환 화가가 거들었다. 오픈 스튜디오처럼 하나로 뚫려 있는 공간은 정해진 컨셉트는 없었지만 그렇게 둘만의 색깔로 야금야금 채워졌다. 두 사람이 운영하다 보니 모든 것이 조금은 더디게 진행됐지만 부부는 이곳에 진심이었다. 특히 살짝 데워서 나가는 직접 만든 레몬 케이크는 이것 때문에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만큼 폭신한 맛이 매력적이며 원두를 계속 신선하게 유지하고 판매할 수 있는 소량 로스팅 기계는 박정환 작가의 담당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존재가 또 있다. 반려견 망개다. 어느 날 꼬질꼬질한 모습을 한 채 카페로 총총 걸어와 문복애 대표의 무릎에 탁 안겼다는 망개. 이 또한 계획에 없던 인연이었을까. 마침 놀러 온 친구들이 문 대표가 좋아하는 망개떡을 사왔는데, 덕분에 망개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했다.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망개가 온 다음 날 검진만 간단하게 하고 병원에 서 보호소로 보냈어요. 그런데 꿈에도 나오고, 마음이 쓰여서 가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죠. 망개를 찾는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또 계획에 없던 일이 생겼네요(웃음). 겁이 많고 소심하지만 카페 디아의 마스코트에요.”

 

커피도 만들고 케이크도 굽는 널찍한 카페 주방.

 

차양을 멋스럽게 내린 테라스.

 

살짝 데워서 나가는 레몬 케이크. 따뜻한 달짝지근함이 금세 기분을 좋아지게 만든다.

주변 환경이 아름다워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는지 궁금했지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카페를 오픈할 때 땅을 보러 다닌 것도 아니었고 꼭 여주를 고집했던 것도 아니었죠. 저와 남편은 지역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서울에 오픈했다면 또 그런 대로 우리만의 색깔을 지닌 공간을 만들어갔을 거예요.” 왠지 멋진 경치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던가 혹은 서울이 지겨워져서라는 예상 답안이 빗나간 순간이었다. 카페 디아를 찾은 어떤 손님은 처음에 이곳이 상업 공간이 아니라 두 사람의 집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은 단골이 됐지만 그때 손님이 말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문복애 대표는 말한다. 사는 집처럼 느껴질 만큼 부부의 자유롭고 꾸밈없는 모습이 이곳에 반영돼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활기찬 분위기, 일본 어느 카페의 빈티지한 분 위기, 자연스러운 차양을 내린 테라스에서 느껴지는 휴양지의 분위기 그리고 시골 외갓집에 놀러 온 듯한 편안한 분위기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 문복애, 박정환 대표는 뉴욕에 있었던 15년을 ‘실컷 잘 놀았던’ 시간으로 이야기한다. 하천이 흐르고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커피를 내리고, 그림을 그리는 지금의 시간을 부부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까. 카페 디아를 다녀간 이들은 마음의 짐을 툭 내려놓고 싶을 때 다시 찾고 싶은 보물 같은 커피집으로 이 곳을 기억할 것이다.

 

천장에 달린 작품의 존재감이 큰 실내.

 

벽에 걸린 보라색 작품은 박정환 작가의 작품. 빈티지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카페에 화룡점정이다.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정원은 어디에 앉아도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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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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