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10여 년간 페르마타를 운영해온 최혜진, 윤권진 부부에게 서울은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도시였을 테다.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신에 있어 늘 감도 높은 결과물을 선보였던 그들은 한국의 메트로폴리스에 도사린 시류를 헤집는 높은 이해도와 기민한 감각을 줄곧 유지해왔다. 그랬던 이들이 4년 전 선택한 새로운 거주지는 다소 의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도 막히는 날엔 서울에서 2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용인 맹리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당이 있는 집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꿈을 품고 있잖아요. 기왕이면 시골로 가보자라고 결심하게 된 거죠. 물론 서울을 아예 벗어나는 것이다 보니 고민을 헤쳐나갈 시간이 길긴 했지만요. 정작 실행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더라고요.” 윤권진 대표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할 흙밭을 고른 다음, 땅의 모양에 따라 집터를 내고 남쪽을 바라보는 주택을 쌓아 올리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부는 흐르는 시내와 뒤편에 우거진 숲이 사이에 자리한 집터를 보며 마치 물과 나무가 둘의 공간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인상에 매료되어 자연의 품에 들어온 것처럼 집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보이길 바랐다고. 돌계단을 올라 마주하는 정원의 모습 그리고 집에 들어서면 부부보다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수십 종의 식물은 이 같은 바람의 부산물이다. 탄탄한 계획을 바탕으로 실행한 이주가 아니었기에 198㎡ 규모의 주택을 완벽히 채울 수는 없었지만, 자칫 군데군데 휑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메워준 것 또한 식물이었다. 페르마타에서도 작은 텃밭 겸 정원을 운영해왔던 부부는 이곳 맹리 집에도 직접 가드닝과 식재를 시도했다. 작은 텃밭과 달리 마당이라 부를 만한 너른 땅에 가드닝을 해야 하는지라 시행착오를 꽤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가 들인 노력만큼 어느 순간에 이르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여러 색과 수형의 식물이 제 존재감을 가득 뿜어내기 시작했다.
부부는 정원만큼 머무는 곳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층과 2층으로 나눠지긴 했지만 모든 공간에는 방과 방을 구분짓는 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구태여 밖과 안을 나누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안과 안이 역할에 따라 인위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다 연결되어 있었으면 했던 부부의 생각이 십분 반영된 결과다. 1층만 보더라도 크게 다이닝 공간과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이 마련되어 있지만, 두 공간을 구분 짓는 별도의 문이나 가림막은 없다. 오히려 군데군데 창을 내 어디서든 밖을 볼 수 있게끔 한 모습을 더러 발견할 수 있다. 부부의 집에서는 페르마타에서 으레 봤을 법한 면모까지 더러 눈에 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둘은 직접 내부를 꾸며왔다. 세월을 얼핏 헤아리기 힘든 고재 가구나 러스틱한 오브제, 시원한 인상을 단박에 안겨주는 라탄과 케인 조명, 의자는 페르마타와 이 집이 오롯이 부부의 취향의 결과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특히 큰 목제 테이블을 둔 다이닝룸은 최혜진 대표가 특히 애정하는 곳으로, 여럿이 함께할 만큼 널찍한 상판이 마련되어 그에게 다양한 여지를 남기기 때문. 때로는 일감을 집 안으로 끌어오더라도 이 테이블에서 업무를 보고, 손님이 찾아오면 이곳에서 하염없이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윤권진 대표의 애정은 주택 뒤편으로 향한다. 목공 작업이 취미인 윤권진 대표를 위해 뒷마당 한 켠에 마련한 공방과 지금 한창 짓고 있는 온실은 그의 애정을 한몸에 받는 스폿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에서 부부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존재는 바로 두 마리의 반려견 과 한 마리의 반려묘다. 8살 일레븐과 2살 올리브 그리고 열두 해를 살아온 미묘 미우는 맹리 주택의 최대 수혜자다. 마당은 일레븐과 올리브가 늘상 뛰어다니는 곳으로, 본래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처럼 쓰일 예정이었던 장소는 미우의 아지트가 되었을 정도. 서울에 일터를 두고 있어 주말에만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데, 세 마리의 반려동물 모두 주말만 기다리는 것 같다며 부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여전히 고쳐 야 할 부분과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멋쩍게 말하는 부부의 모습에서도 묘한 행복감이 도사린 듯한 착각은 어쩌면 잘못 본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씩이지만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나가는 이곳은 오롯이 이들 가족을 위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지금은 주말에만 이곳에 와요. 전원주택이니만큼 때로는 넘쳐나는 잡일에 여기서의 생활이 하염없이 싫다가도 때로는 벅차도록 행복하죠. 이곳에서는 주말이 정말 주말다워져요. 우리를 위한 공간에 우리를 두고 온전히 제 자신한테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여기 있으면 조급해지지가 않아요. 시간을 두고 하나씩 꾸며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죠. 서두를 필요가 없잖아요. 어차피 여긴 우리를 위한 곳인걸요.” 귀에서 맴도는 최혜진 대표의 말에서 군데군데 남겨둔 집의 여백이 다시금 읽혀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