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⑤ 꿈의 안식처

구례에 자리한 엄마의 품같은 숙소 겸 카페, 지리산 아침

구례에 자리한 엄마의 품같은 숙소 겸 카페, 지리산 아침
엄마의 품과 같다고 묘사되는 지리산 노고단을 멀리서 감상할 수 있는 곳. 숙소 겸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지리산 아침은 자애로운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울창한 숲길이 내다보이는 지리산의 아침 풍경.
 
지리산 아침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경 대표와 그녀의 여동생 김선경 씨.
  2015년, 화엄음악제가 10회를 맞이하던 해 구례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지리산 아침의 김민경 대표는 구례로 처음 출장 왔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입을 열었다. “7월 30일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어요. 산림이 울창한 지리산 국립공원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화엄사에 대한 첫인상도 좋았지만, 가로등 조차 많지 않아 불과 8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칠흑 같은 어둠에 빠진 것이 그렇게 평화롭게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서양 작곡을 전공하고 유학 생활을 포함해 7년간의 영국 생활을 정리한 뒤 한국으로 들어와 음악 축제 일을 했던 그녀가 구례와의 첫만남을 회상했다. “화엄음악제를 준비하면서 인근 펜션을 이용했는데, 그때 노후한 펜션 두 채를 인수해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는 어느 대표님 부부를 만났어요. 이듬해 봄에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로 개업했다는 연락을 받고 구례로 내려와 두 분과 차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저도 나이가 들면 시골에서 이런 일을 하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당시 이태원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이후 음악 일에 대한 회의감이 잦아지기 시작했던 2017년 겨울, 대표님께서 개인 사정으로 펜션 운영이 어려운데 혹시 맡아볼 의향이 있냐고 연락을 주셨고, 정말 1분도 고민하지 않고 ‘예스’를 외쳤어요.” 삶의 밸런스가 깨지고 있다는 것에 혼란스럽고 마음이 심란했던 타이밍에 어찌 보면 너무나 쉽게 태어나고 자란 서울을 갑작스럽게 떠나온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구례에서 숙소와 카페를 운영해보겠다는 다소 황당할 정도의 추진력으로 여기 구례로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곳을 임대해서 직접 모든 것을 총괄 운영하는 조건으로 2018년 3월 구례 산수유 축제가 시작하는 주말에 오픈했다. 호텔 지리산 아침娥寢은 예쁠 아와 잘 침자로 아침이라는 단어에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아름다운 잠자리, 말 그대로 Beautiful Stay라는 뜻을 담고 싶었지요. 저희는 인근의 펜션과 차별화되는 전략이 필요했고, 가족이 경영하고, 가족만이 베풀 수 있는 다정다감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간 곳곳에 그동안 소장했던 책과 가족사진, 소품을 비치했어요. 감성이 통하는 고객들과 대화의 물꼬가 터지는 지점이 바로 거기였던 것 같아요.” 김민경 대표는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거라며 가족 모두의 도움을 받아 신축과 이전까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민경 대표가 소장한 책과 가족사진, 이야기가 담긴 소품 등으로 꾸민 3층 라운지.
 

한국의 전통적 미감을 더한 쿠션은 디자이너 장응복이 제작한 것이다.
  특히 그녀의 여동생 김선경 씨가 적극 도왔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데에는 동생의 결심이 매우 컸다고 생각해요. 조카를 시골에서 잠시 키워봐도 좋겠다는 동생의 큰 결심으로 아이를 구례로 전학시키고, 합류해서 본격적으로 함께 일하게 되었죠. 하지만 아이를 호텔 숙소에서 등하교시키는 게 마음에 걸려 간간이 집을 보러 다니다 지금의 위치에 아담하고 예쁜 집이 매물로 나와 동생이 그 집을 샀어요. 장기적으로 우리가 직접 건물을 지어 운영해보자는 의견이 일치되면서 기존의 집을 철거하고 신축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어요”라며 건물을 신축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도미토리가 있는 호스텔을 계획했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이전이라서 혼자 산행을 오는 이들에게도 접근성이 좋은 숙소를 열면 어떨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지의 숙소는 개별적이면서도 무엇보다 위생적이고 안전한 공간이어야 했기에 객실별로 1인실, 2인실, 3인실로 구성하고 온돌과 트윈 등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타입을 나눴다. 설계와 시공은 전문 업체에서 진행했지만, 인테리어와 조경은 수많은 사진 레퍼런스를 통해 동생과 직접 골라 채워나갔다. “천편일률적으로 공식화된 숙소 인테리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이곳은 사실 구례스럽지 않아요. 영국에서 동생과 살았던 경험도 곳곳에 반영되었고, 저희가 구례에 살면서 체감한 구례가 가진 또 다른 이국적인 모습을 반영했죠.” 김민경 대표는 고층 빌딩 숲의 압도적인 전망이 아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 요동치는 들판을 매일 아침 내려다보는 것, 꽃이 피고 지는 것과 단풍이 산 위로 번지는 것을 매일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쉼과 삶에 대한 심리적 여유를 허락한다고 말한다. “한강변을 산책하듯 저희는 섬진강변을 걸어요. 이런 시간에는 다음을 계획하지 않고, 어떠한 걱정도 하지 않고, 오롯이 그 순간을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 행복해요. 내면의 화가 줄어들었고 실제로 지인들도 제 얼굴이 밝아지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세요.” SNS를 통해 지인들이 활동하는 소식을 접하고 대도시에서나 관람 가능한 공연과 전시에 대한 소식이 들리지만, 김민경 대표는 그 현장이 전혀 그립지 않다며 이곳에서의 삶에 120% 만족하며 살고 있다.  
자연 풍광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
 
높고 맑은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옥상에 마련한 아담한 수영장.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김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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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④ 미완의 미학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의 주말다운 주말을 책임지는 전원주택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의 주말다운 주말을 책임지는 전원주택
여전히 채워나갈 것이 많다는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는 일말의 조급함 없이 그저 좋아하는 것들만 아스라히 자리할 집을 만들어간다. 미완성의 공간이 품어낸 너른 여유를 만끽하며.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정원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 8살 일레븐과 2살 올리브. 촬영팀을 가장 먼저 맞이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최혜진, 윤권진 대표. 촬영하던 중 옆집 강아지 디오가 놀러와 함께했다. 쭉 내민 혀와 먼지 같은 털이 시선을 끈다.
  10여 년간 페르마타를 운영해온 최혜진, 윤권진 부부에게 서울은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도시였을 테다.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신에 있어 늘 감도 높은 결과물을 선보였던 그들은 한국의 메트로폴리스에 도사린 시류를 헤집는 높은 이해도와 기민한 감각을 줄곧 유지해왔다. 그랬던 이들이 4년 전 선택한 새로운 거주지는 다소 의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도 막히는 날엔 서울에서 2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용인 맹리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당이 있는 집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꿈을 품고 있잖아요. 기왕이면 시골로 가보자라고 결심하게 된 거죠. 물론 서울을 아예 벗어나는 것이다 보니 고민을 헤쳐나갈 시간이 길긴 했지만요. 정작 실행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더라고요.” 윤권진 대표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할 흙밭을 고른 다음, 땅의 모양에 따라 집터를 내고 남쪽을 바라보는 주택을 쌓아 올리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부는 흐르는 시내와 뒤편에 우거진 숲이 사이에 자리한 집터를 보며 마치 물과 나무가 둘의 공간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인상에 매료되어 자연의 품에 들어온 것처럼 집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보이길 바랐다고. 돌계단을 올라 마주하는 정원의 모습 그리고 집에 들어서면 부부보다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수십 종의 식물은 이 같은 바람의 부산물이다. 탄탄한 계획을 바탕으로 실행한 이주가 아니었기에 198㎡ 규모의 주택을 완벽히 채울 수는 없었지만, 자칫 군데군데 휑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메워준 것 또한 식물이었다. 페르마타에서도 작은 텃밭 겸 정원을 운영해왔던 부부는 이곳 맹리 집에도 직접 가드닝과 식재를 시도했다. 작은 텃밭과 달리 마당이라 부를 만한 너른 땅에 가드닝을 해야 하는지라 시행착오를 꽤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가 들인 노력만큼 어느 순간에 이르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여러 색과 수형의 식물이 제 존재감을 가득 뿜어내기 시작했다.  
부부가 키우는 반려동물 중 가장 연장자인 미우. 따뜻한 볕이 드는 곳에서 잠든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 옆에 있는 작은 바비큐 가든의 테이블에는 멋스러운 우드 스틱과 향초를 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부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다이닝 공간. 위에는 커다란 라탄 조명을 달았고, 아래에는 큰 테이블을 두었다. 비스듬한 천장에 난 창문은 채광과 후드 역할을 겸한다.
  부부는 정원만큼 머무는 곳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층과 2층으로 나눠지긴 했지만 모든 공간에는 방과 방을 구분짓는 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구태여 밖과 안을 나누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안과 안이 역할에 따라 인위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다 연결되어 있었으면 했던 부부의 생각이 십분 반영된 결과다. 1층만 보더라도 크게 다이닝 공간과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이 마련되어 있지만, 두 공간을 구분 짓는 별도의 문이나 가림막은 없다. 오히려 군데군데 창을 내 어디서든 밖을 볼 수 있게끔 한 모습을 더러 발견할 수 있다. 부부의 집에서는 페르마타에서 으레 봤을 법한 면모까지 더러 눈에 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둘은 직접 내부를 꾸며왔다. 세월을 얼핏 헤아리기 힘든 고재 가구나 러스틱한 오브제, 시원한 인상을 단박에 안겨주는 라탄과 케인 조명, 의자는 페르마타와 이 집이 오롯이 부부의 취향의 결과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특히 큰 목제 테이블을 둔 다이닝룸은 최혜진 대표가 특히 애정하는 곳으로, 여럿이 함께할 만큼 널찍한 상판이 마련되어 그에게 다양한 여지를 남기기 때문. 때로는 일감을 집 안으로 끌어오더라도 이 테이블에서 업무를 보고, 손님이 찾아오면 이곳에서 하염없이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로 쓰이는 공간의 일부. 이곳은 이제 미우의 주 영역이 되었다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에는 멋스러운 고재 장과 오브제를 두었다.
  윤권진 대표의 애정은 주택 뒤편으로 향한다. 목공 작업이 취미인 윤권진 대표를 위해 뒷마당 한 켠에 마련한 공방과 지금 한창 짓고 있는 온실은 그의 애정을 한몸에 받는 스폿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에서 부부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존재는 바로 두 마리의 반려견 과 한 마리의 반려묘다. 8살 일레븐과 2살 올리브 그리고 열두 해를 살아온 미묘 미우는 맹리 주택의 최대 수혜자다. 마당은 일레븐과 올리브가 늘상 뛰어다니는 곳으로, 본래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처럼 쓰일 예정이었던 장소는 미우의 아지트가 되었을 정도. 서울에 일터를 두고 있어 주말에만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데, 세 마리의 반려동물 모두 주말만 기다리는 것 같다며 부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여전히 고쳐 야 할 부분과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멋쩍게 말하는 부부의 모습에서도 묘한 행복감이 도사린 듯한 착각은 어쩌면 잘못 본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씩이지만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나가는 이곳은 오롯이 이들 가족을 위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지금은 주말에만 이곳에 와요. 전원주택이니만큼 때로는 넘쳐나는 잡일에 여기서의 생활이 하염없이 싫다가도 때로는 벅차도록 행복하죠. 이곳에서는 주말이 정말 주말다워져요. 우리를 위한 공간에 우리를 두고 온전히 제 자신한테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여기 있으면 조급해지지가 않아요. 시간을 두고 하나씩 꾸며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죠. 서두를 필요가 없잖아요. 어차피 여긴 우리를 위한 곳인걸요.” 귀에서 맴도는 최혜진 대표의 말에서 군데군데 남겨둔 집의 여백이 다시금 읽혀지는 것만 같았다.  
가든에서 보이는 조경과 벽이 이국적인 느낌을 한껏 낸다. 지금은 한풀 졌지만, 시기를 잘 맞춘다면 만개한 수국이 만드는 장관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윤권진 대표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데스크가 있다. 주로 여기에 앉아 킨츠키를 즐긴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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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③ 매일 만드는 아름다움

나무와 함께하는 일상이 담긴 작가 최성우의 파주 작업실

나무와 함께하는 일상이 담긴 작가 최성우의 파주 작업실
나무를 다루는 작가 최성우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진 도구는 파주에서 보내는 그의 나날을 대변하고 있었다. 무해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최성우 작가는 작업실 한 켠에 자신이 제작한 목공예품을 진열해두었다.
 
나무를 다루는 작가 최성우.
  모두에게 하루는 동등하게 주어질 테지만, 아침으로 둔갑한 오후가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이 될 수도, 밤과 아침이 뒤바뀐 삶을 살아내기도 하는 등 그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최성우 작가는 하루의 시작을 어슴푸레한 안개가 낀 산 언저리 모습으로 기억한다. 새벽같이 파주에 위치한 작업실로 출근해 산책하듯 작업실 뒷산을 거닐며 주변을 관찰하는 것으로 물꼬를 트기 때문. 최성우 작가는 2년 전쯤 파주에 공방 겸 숍인 일상의 도구점을 차렸다. 처음에는 집 한 켠에 방음 장치를 설치해 작업을 하다 자동차 정비소 지하로 옮기기도 했지만, 이내 파주로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유를 파고들자면 그의 독특한 이력부터 짚어봐야 한다. 엔진공학을 전공한 최 작가는 10년여 동안 외국계 자동차 부품 회사를 다녔다. 예술이나 목공과는 전혀 접점이 없지만, 프랑스 여행 차 방문한 퐁피두 센터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마주한 이후, 새로운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쓰신 구본형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꿈을 찾고 싶다고 말했죠. 변화하기 쉽지 않은 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목공예를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도 도움이 됐어요.” 구태여 목재를 선택한 데에는 어린 시절, 손재주가 좋았던 할아버지와 나무를 만지며 보냈던 시간이 정처럼 남아 있는 이유도 있었다.  
세세한 목공 작업이 요할 때는 이곳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정갈하고 소박한 멋이 인상적인 다양한 기물. 은행나무를 모티프로 한 수저와 따스한 매력의 목공 제품을 보면 마음이 한층 따뜻해진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목표의 윤곽을 그린 시점부터 디자인 기초를 다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마치 디깅 Digging이라도 하듯 주말마다 최경원 교수를 찾아가 색, 평면, 입체 구성 등을 배우며 디자인 지식을 하나둘 쌓아갔다. 목공 기술 또한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현재 작업실 옆에 위치한 반김 크래프트의 양병용 작가에게서 목재에 대한 지식과 이를 다루는 스킬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지하에서 작업을 할 때만 해도 뻗어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햇빛이 들어오지도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때 작가님께서 자신의 작업실 옆 공간이 비어 있다고 얘기하셨어요.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종종 들렀던 곳인지라 익숙하니 잘됐다 싶었어요. 저를 파주로 오게 해주신 분인 거죠.” 처음 작업실로 쓸 공간을 마주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던 빈 곳인지라 막막함도 느꼈었지만 최성우 작가는 하나하나 공간을 꾸려나갔다. 본래 좁고 단층이었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복층형 구조로 내부를 재편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붕과 바닥까지 보수해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1층은 큰 나무덩이를 재단하는 기계실과 세심한 수작업을 하는 곳으로, 위층은 사포질과 옻칠을 위한 공간으로 두었다. 달라진 건 밝은 해가 들어오는 작업실뿐만이 아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고택이나 한옥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어요. 공예를 알기 위해 삶의 모습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골이나 지방이라고 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파주는 되게 깨끗해요. 너른 평지도 있고, 작업실 뒤에는 산도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사계 같은 자연의 변화가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서울에서는 추워지고 더워진다는 느낌만 근근이 느껴졌는데 말이죠. 더 민감해질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작업 스타일이 한층 확장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최성우 작가는 덧붙였다.  
작업실 2층에는 옻칠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한지를 벽지로 사용해 은은한 빛이 들어온다.
그는 지천에 자란 나무를 관찰하며 목재를 보는 눈을 조금 더 넓힌 것은 물론, 썩고 뜯겨나간 나무 껍질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이파리의 모습 등에도 주목했다. 늘 같게만 보였던 돌멩이가 지닌 각각의 디테일을 보면서 기존의 세공 방식에도 꽤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이제껏 나무를 파내면서 세공하는 일반적인 크래프트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면, 벚나무 껍질을 살짝만 다듬어 차 도구를 만든다든지 자연물이 본래 지닌 형태를 최대한 온전히 유지해보는 방식도 도전해요. 기존의 세공 방식을 그대로 쓰는 대신 목재의 종류를 바꿔보기도 하고요.” 재료에 대한 존중과 시도는 곧 작업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고, 괄목한 결과로 나타났다. 일상의 도구점을 운영하며 주로 숟가락이나 젓가락 등의 수저, 집기류를 선보였던 그지만, 자연물을 활용한 수저 받침, 다하 등 제품의 범주와 종류도 보다 넓혔다. 최 작가의 작업 범위가 확장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품도 있는가 하면, 주문 제작을 통해 타인의 일상에서 필요와 쓰임에 맞춰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 “각자 손에 익는 손잡이 크기와 길이도 확연히 다른 만큼, 그분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다 보면 더 유니크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해요. 가령 그립감을 키우기 위해 젓가락의 한 면을 더 잘게 각을 내 만드는 등 세세한 요소에 신경을 쏟는 것처럼요. 누군가의 필요와 쓰임이 곧 제게는 공예적인 성취로 바뀌는 거죠.” 볕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사계가 피부로 와닿는 이곳 파주 작업실로 오기까지 단 한 차례도 정체된 적 없었지만, 그는 나아가고 자라는 감각을 여전히 바란다고 말했다. 변치 않을 바람이라면 파주에서 자라난 그의 열망은 매일 조금씩 몸집을 키워나가지 않을까. 무해하고 아름다운 기물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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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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