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아직 익지 않은 벼가 촘촘하게 심어진 논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펼쳐진 논밭 옆으로 흰색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나타난 현대식 건물이 주변의 자연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오픈한 지 올해 3년째인 카페 디아는 국내에 숨겨진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알려졌다. 바쁜 주말에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있지만 평일에는 문복애, 박정환 씨 부부가 운영한다. “저는 잡지사의 포토그래퍼였어요. 일을 하다 화가인 남편을 따라 뉴욕 맨해튼에서 15년을 살았죠. 더 일찍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긴 시간을 보냈네요. 한국에 돌아온 후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압구정동에 있는 허형만 커피에서 핸드 드립을 배웠어요. 집에서도 해보고 지인들에게도 커피를 내려주며 즐거운 취미로 즐겼죠. 그러다 이곳 여주에 카페를 내게 됐어요.” 문복애 대표가 커피를 내리며 카페 디아의 시작을 설명했다.
20년 넘게 버려져 낡고 손볼 것이 많았던 식당 건물을 허물고 내부 인테리어는 온전히 부부가 맡았다.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을 새로 구입하기보다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주의예요. 지하에 화가인 남편의 작업실이 있어서 벽에 작품을 걸 수 있었고, 뉴욕에서부터 사용했던 가구와 소품, 주변 친구들의 준 물건들을 배치했죠. 식물도 양재동에서 직접 사다 나르고, 이리저리 테이블도 옮겨보면서 천천히 완성했어요”라는 아내의 말에 “오합지졸이에요(웃음). 하나의 컨셉트로 밀어부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된 거예요”라며 박정환 화가가 거들었다. 오픈 스튜디오처럼 하나로 뚫려 있는 공간은 정해진 컨셉트는 없었지만 그렇게 둘만의 색깔로 야금야금 채워졌다. 두 사람이 운영하다 보니 모든 것이 조금은 더디게 진행됐지만 부부는 이곳에 진심이었다. 특히 살짝 데워서 나가는 직접 만든 레몬 케이크는 이것 때문에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만큼 폭신한 맛이 매력적이며 원두를 계속 신선하게 유지하고 판매할 수 있는 소량 로스팅 기계는 박정환 작가의 담당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존재가 또 있다. 반려견 망개다. 어느 날 꼬질꼬질한 모습을 한 채 카페로 총총 걸어와 문복애 대표의 무릎에 탁 안겼다는 망개. 이 또한 계획에 없던 인연이었을까. 마침 놀러 온 친구들이 문 대표가 좋아하는 망개떡을 사왔는데, 덕분에 망개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했다.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망개가 온 다음 날 검진만 간단하게 하고 병원에 서 보호소로 보냈어요. 그런데 꿈에도 나오고, 마음이 쓰여서 가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죠. 망개를 찾는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또 계획에 없던 일이 생겼네요(웃음). 겁이 많고 소심하지만 카페 디아의 마스코트에요.”
주변 환경이 아름다워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는지 궁금했지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카페를 오픈할 때 땅을 보러 다닌 것도 아니었고 꼭 여주를 고집했던 것도 아니었죠. 저와 남편은 지역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서울에 오픈했다면 또 그런 대로 우리만의 색깔을 지닌 공간을 만들어갔을 거예요.” 왠지 멋진 경치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던가 혹은 서울이 지겨워져서라는 예상 답안이 빗나간 순간이었다. 카페 디아를 찾은 어떤 손님은 처음에 이곳이 상업 공간이 아니라 두 사람의 집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은 단골이 됐지만 그때 손님이 말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문복애 대표는 말한다. 사는 집처럼 느껴질 만큼 부부의 자유롭고 꾸밈없는 모습이 이곳에 반영돼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활기찬 분위기, 일본 어느 카페의 빈티지한 분 위기, 자연스러운 차양을 내린 테라스에서 느껴지는 휴양지의 분위기 그리고 시골 외갓집에 놀러 온 듯한 편안한 분위기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 문복애, 박정환 대표는 뉴욕에 있었던 15년을 ‘실컷 잘 놀았던’ 시간으로 이야기한다. 하천이 흐르고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커피를 내리고, 그림을 그리는 지금의 시간을 부부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까. 카페 디아를 다녀간 이들은 마음의 짐을 툭 내려놓고 싶을 때 다시 찾고 싶은 보물 같은 커피집으로 이 곳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