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데우스 로팍의 집

잘츠부르크의 낭만을 담은 갤러리스트 타데우스 로팍의 집

잘츠부르크의 낭만을 담은 갤러리스트 타데우스 로팍의 집

갤러리스트 타데우스 로팍의 집을 소개한다. 10월 7일, 유럽 5개 도시에 이어 서울에도 갤러리를 개관하기에 <메종>을 위해 특별히 자신의 집을 공개한 것. 잘츠부르크의 낭만과 갤러리스트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아름다운 집을 살짝 들여다보자.

토니 크랙 Tony Cragg의 2005년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 ‘Divide’가 테라스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작품은 524kg이지만 한없이 날렵해 보인다. ©Tony Cragg / DACS, London 2021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한국 개관 전시 작가인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2017년 작품 ‘Passato Indietro’ 앞에 서 있는 타데우스 로팍 대표.

 

타데우스 로팍 Thaddaeus Ropac 대표는 1983년 잘츠부르크에 첫 갤러리를 열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3살이었고, 지난 40여 년 동안 갤러리는 현대미술과 함께 성장했다. 유럽의 런던, 파리 등 총 5곳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서울 한남동에 갤러리를 개관한다고 발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는 한국과 오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서울에 아시아 최초 의 갤러리를 오픈하는 계획은 팬데믹이 유행하기 전부터 세웠던 것이라 예정대로 문을 열게 되었지요. 우리 갤러리는 이불을 비롯한 한국 작가들과 프로젝트를 함께해왔기에, 서울이 위대한 예술가와 세련된 컬렉터가 있는 활기찬 예술 도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브렉시트 Brexit에도 불구하고 2017년 런던에 갤러리를 열었을 만큼 확신을 가지고 경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더군다나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서울의 개관 전시는 독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Georg Baselitz 의 개인전 <가르니 호텔 Hotel Garni>이니 기대가 크다. “한 명의 미술가를 선정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첫 전시에서부터 우리 갤러리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게오르그 바젤리츠를 초대한 것은 그가 한국과 의미 깊은 연결고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최초의 바젤리츠 개인전 <잊을 수 없는 기억: 게오르그 바젤리 츠의 러시안 페인팅>에 참여했는데, 한국 관람객들이 바젤리츠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놀라웠습니다. 이 전시로 인해 바젤리츠가 한국에 잘 알려지게 되었기에 그에게 한국 갤러리 개막 전시를 요청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왼쪽의 작은 작품 2점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1967년 종이 그림 ‘Kullervoss’, ‘Untitled(Geteilter Held)’. 오른쪽 벽을 메운 대작은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의 2002년 작품 ‘Etroits Sont les Vaisseaux’.

 

떡갈나무로 만든 한 쌍의 의자가 있는 공간에 설치한 그림과 조각은 모두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이다. 유화는 1979~80년 작품 ‘Die Holländerin’이고, 나무 조각은 1990년에 만든 ‘Dresdner Frauen-Die Elbe’

바젤리츠는 1969년부터 작품의 구도를 거꾸로 뒤집어 그려왔는데, 이는 추상과 구상 사이를 탐구하고 형식을 비워내는 방법이자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번에는 한국 전시를 위해 준비한 신작 회화 12점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이렇듯 40여 년간 세계를 누비며 맹활약해온 갤러리스트의 집은 어떨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집은 유럽 곳곳과 미국에 여러 채 있지만 그는 <메종>을 위해 잘츠부르크의 빌라 엠슬레이브 Villa Emslieb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잘츠부르크는 그가 처음 갤러리를 열었던 곳이고, 작지만 유럽 문화가 아주 잘 어우러지는 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집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1618년에 만들어진 이 빌라는 18세기에 모차르트가 연주한 적도 있을 만큼 지역의 명소로 군림해왔다. 그는 1995년부터 이곳에 머물렀는데, 그간 갤러리에서 전시를 선보였던 게오르그 바젤리츠, 안토니 곰리,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로이 리히텐슈타인, 바스키아, 토니 크랙의 작품이 멋지게 전시되어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그레이와 레드의 조화가 시크한 거실의 화룡점정은 역시 미술 작품이다. 왼쪽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1967년 그림 ‘Modern Painting’이고, 가운데 있는 도널드 저드 Donald Judd의 1989년 조각 작품 ‘Untitled’이 멋스럽다. 오른쪽의 나무 두상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1979/84년 작품 ‘Kopf’다.

 

빌라의 입구에는 안젤름 키퍼의 우아한 조각 작품 ‘Paleder’(2006년)가 설치되어 있다. ©Anselm Kiefer / VG Bildkunst, Bonn 2021

“나는 이 모든 아티스트를 잘 알고 있고 그들과 오랜 시간 함께 일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그들과의 만남은 갤러리스트로 큰 의미가 있지요. 예를 들어, 바스키아와 함께했던 전시에서 우리는 그의 모든 자화상 연작을 보여주었는데, 나는 운 좋게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직접 골라 소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특별한 작품은 내 컬렉션의 초석이 되었지요.” 그의 환상적인 컬렉션은 여러 도시의 집에 전시되어 있고, 특별한 전시를 위한 대여 요청도 자주 받는다. 그는 미술관 전시에 작품을 빌려주는 것은 갤러리스트의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하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작품이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면 또 다른 작품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는 그의 집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잘츠부르크의 집에 새로운  작품을 걸면서, 뉴욕과 런던 집의 작품 디스플레이도 다시 살펴보게 된다.  특히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오스트리아 출신답게 음악을 사랑하기에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자택으로 음악가를 초대해 작은 연주회를 갖기도 한다. “현대음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세기의 클래식 음악도 좋아합니다. 미술뿐 아니라 작곡가, 음악가에 대한 애정이 제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모차르트도 이 집에서 연주했고,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도 2년 전에 연주했습니다.”

 

새로 단장한 정원에 설치한 에르빈 부름 Erwin Wurm의 알루미늄 조각 작품 ‘Big Suit’ ( 2010/2016년). © Erwin Wurm / Bildrecht, Wien 2021

 

안토니 곰리의 조각 ‘Diaphragm iv’(1997년). © Antony Gormley / DACS, London 2021

 

다이닝룸에는 3m가 넘는 알렉스 카츠 Alex Katz의 유화 작품 ‘January 4’(1992년)가 있어 분위기가 활기차게 느껴진다. 왼쪽의 작은 그림은 장 미셸 바스키아의 ‘Self Portrait’(1983년)이다.

그의 집은 섬세하고 정교한 20세기 유럽 디자인 가구와 현대미술 작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모든 작품이 추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최근 정원을 대대적으로 손봤는데, 이는 조각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정원 또한 17세기에 만들어졌기에 정원사와의 면밀한 논의가 필요했다. “유럽은 한국처럼 엄청난 전통과 역사를 지녔습니다. 현대미술을 역사적 배경과 병치하는 것은 종종 흥미롭지만 나는 특별히 역사적인 건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새롭게 선보이는 한국 갤러리는 현대식 건물이지요. 어떠한 공간이든 현대미술 작품과 배치하는 것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여러분도 나만의 공간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는 한국 MZ세대 컬렉터에게 항상 미술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은 그가 전시했던 미술가들이 모두 거장이 되었지만, 40년 전에는 그들 또한 젊은 작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알베로 베린톤 Alvaro Barrington, 올리버 비어 Oliver Beer, 멘디 엘 사예 Mandy El-Sayegh, 라엘 존스 Rachel Jones, 메간 루니 Megan Rooney 등 젊은 예술가를 소개해왔으며 젊은 미술가가 미래를 만드는 세대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유행을 따르거나 히트 리스트를 요청하는 컬렉터들이 있어요. 하지만 나는 컬렉션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전시를 많이 보고, 미술 작품을 보는 눈을 높여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만의 안목을 갖게 되면 고유한 컬렉션을 누리고 즐길 수 있습니다.” 타데우스 로팍 대표의 아름다운 잘츠부르크 집을 보니 그가 성공하기까지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에너지는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고 만끽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하다.

 

빌라의 정원 연못에는 알렉스 카츠의 대형 조각 ‘Chance’(2016년)이 설치되어 있다. 17세기에 지은 저택과 21세기의 현대미술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 Alex Katz / ARS, New York 2021

 

2329cm 높이의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브론즈 조각 작품 ‘Sing Sang Zero’(2011년). ©Georg Baselitz

 

갤러리스트는 수영장에도 작품을 설치한다. 톰 삭스의 사랑스러운 조각 작품은 ‘Miffy Fountain’(2008년)이다. 실비 플뢰리 Sylvie Fleury의 작품 ‘Be Amazing’(2001년)이 수영장에 설치되어 있다.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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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photographer: Ulrich Ghez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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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⑤ 꿈의 안식처

구례에 자리한 엄마의 품같은 숙소 겸 카페, 지리산 아침

구례에 자리한 엄마의 품같은 숙소 겸 카페, 지리산 아침

엄마의 품과 같다고 묘사되는 지리산 노고단을 멀리서 감상할 수 있는 곳. 숙소 겸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지리산 아침은 자애로운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울창한 숲길이 내다보이는 지리산의 아침 풍경.

 

지리산 아침을 운영하고 있는 김민경 대표와 그녀의 여동생 김선경 씨.

 

2015년, 화엄음악제가 10회를 맞이하던 해 구례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지리산 아침의 김민경 대표는 구례로 처음 출장 왔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입을 열었다. “7월 30일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어요. 산림이 울창한 지리산 국립공원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화엄사에 대한 첫인상도 좋았지만, 가로등 조차 많지 않아 불과 8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칠흑 같은 어둠에 빠진 것이 그렇게 평화롭게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서양 작곡을 전공하고 유학 생활을 포함해 7년간의 영국 생활을 정리한 뒤 한국으로 들어와 음악 축제 일을 했던 그녀가 구례와의 첫만남을 회상했다. “화엄음악제를 준비하면서 인근 펜션을 이용했는데, 그때 노후한 펜션 두 채를 인수해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는 어느 대표님 부부를 만났어요. 이듬해 봄에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로 개업했다는 연락을 받고 구례로 내려와 두 분과 차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저도 나이가 들면 시골에서 이런 일을 하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당시 이태원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이후 음악 일에 대한 회의감이 잦아지기 시작했던 2017년 겨울, 대표님께서 개인 사정으로 펜션 운영이 어려운데 혹시 맡아볼 의향이 있냐고 연락을 주셨고, 정말 1분도 고민하지 않고 ‘예스’를 외쳤어요.” 삶의 밸런스가 깨지고 있다는 것에 혼란스럽고 마음이 심란했던 타이밍에 어찌 보면 너무나 쉽게 태어나고 자란 서울을 갑작스럽게 떠나온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구례에서 숙소와 카페를 운영해보겠다는 다소 황당할 정도의 추진력으로 여기 구례로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이곳을 임대해서 직접 모든 것을 총괄 운영하는 조건으로 2018년 3월 구례 산수유 축제가 시작하는 주말에 오픈했다. 호텔 지리산 아침娥寢은 예쁠 아와 잘 침자로 아침이라는 단어에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아름다운 잠자리, 말 그대로 Beautiful Stay라는 뜻을 담고 싶었지요. 저희는 인근의 펜션과 차별화되는 전략이 필요했고, 가족이 경영하고, 가족만이 베풀 수 있는 다정다감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간 곳곳에 그동안 소장했던 책과 가족사진, 소품을 비치했어요. 감성이 통하는 고객들과 대화의 물꼬가 터지는 지점이 바로 거기였던 것 같아요.” 김민경 대표는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거라며 가족 모두의 도움을 받아 신축과 이전까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민경 대표가 소장한 책과 가족사진, 이야기가 담긴 소품 등으로 꾸민 3층 라운지.

 

한국의 전통적 미감을 더한 쿠션은 디자이너 장응복이 제작한 것이다.

 

특히 그녀의 여동생 김선경 씨가 적극 도왔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데에는 동생의 결심이 매우 컸다고 생각해요. 조카를 시골에서 잠시 키워봐도 좋겠다는 동생의 큰 결심으로 아이를 구례로 전학시키고, 합류해서 본격적으로 함께 일하게 되었죠. 하지만 아이를 호텔 숙소에서 등하교시키는 게 마음에 걸려 간간이 집을 보러 다니다 지금의 위치에 아담하고 예쁜 집이 매물로 나와 동생이 그 집을 샀어요. 장기적으로 우리가 직접 건물을 지어 운영해보자는 의견이 일치되면서 기존의 집을 철거하고 신축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어요”라며 건물을 신축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도미토리가 있는 호스텔을 계획했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이전이라서 혼자 산행을 오는 이들에게도 접근성이 좋은 숙소를 열면 어떨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지의 숙소는 개별적이면서도 무엇보다 위생적이고 안전한 공간이어야 했기에 객실별로 1인실, 2인실, 3인실로 구성하고 온돌과 트윈 등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타입을 나눴다. 설계와 시공은 전문 업체에서 진행했지만, 인테리어와 조경은 수많은 사진 레퍼런스를 통해 동생과 직접 골라 채워나갔다. “천편일률적으로 공식화된 숙소 인테리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이곳은 사실 구례스럽지 않아요. 영국에서 동생과 살았던 경험도 곳곳에 반영되었고, 저희가 구례에 살면서 체감한 구례가 가진 또 다른 이국적인 모습을 반영했죠.” 김민경 대표는 고층 빌딩 숲의 압도적인 전망이 아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 요동치는 들판을 매일 아침 내려다보는 것, 꽃이 피고 지는 것과 단풍이 산 위로 번지는 것을 매일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쉼과 삶에 대한 심리적 여유를 허락한다고 말한다. “한강변을 산책하듯 저희는 섬진강변을 걸어요. 이런 시간에는 다음을 계획하지 않고, 어떠한 걱정도 하지 않고, 오롯이 그 순간을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 행복해요. 내면의 화가 줄어들었고 실제로 지인들도 제 얼굴이 밝아지고 행복해 보인다고 하세요.” SNS를 통해 지인들이 활동하는 소식을 접하고 대도시에서나 관람 가능한 공연과 전시에 대한 소식이 들리지만, 김민경 대표는 그 현장이 전혀 그립지 않다며 이곳에서의 삶에 120% 만족하며 살고 있다.

 

자연 풍광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

 

높고 맑은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옥상에 마련한 아담한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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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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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④ 미완의 미학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의 주말다운 주말을 책임지는 전원주택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의 주말다운 주말을 책임지는 전원주택

여전히 채워나갈 것이 많다는 페르마타 최혜진, 윤권진 대표는 일말의 조급함 없이 그저 좋아하는 것들만 아스라히 자리할 집을 만들어간다. 미완성의 공간이 품어낸 너른 여유를 만끽하며.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정원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 8살 일레븐과 2살 올리브. 촬영팀을 가장 먼저 맞이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최혜진, 윤권진 대표. 촬영하던 중 옆집 강아지 디오가 놀러와 함께했다. 쭉 내민 혀와 먼지 같은 털이 시선을 끈다.

 

10여 년간 페르마타를 운영해온 최혜진, 윤권진 부부에게 서울은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도시였을 테다.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신에 있어 늘 감도 높은 결과물을 선보였던 그들은 한국의 메트로폴리스에 도사린 시류를 헤집는 높은 이해도와 기민한 감각을 줄곧 유지해왔다. 그랬던 이들이 4년 전 선택한 새로운 거주지는 다소 의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도 막히는 날엔 서울에서 2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용인 맹리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당이 있는 집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꿈을 품고 있잖아요. 기왕이면 시골로 가보자라고 결심하게 된 거죠. 물론 서울을 아예 벗어나는 것이다 보니 고민을 헤쳐나갈 시간이 길긴 했지만요. 정작 실행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더라고요.” 윤권진 대표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할 흙밭을 고른 다음, 땅의 모양에 따라 집터를 내고 남쪽을 바라보는 주택을 쌓아 올리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부는 흐르는 시내와 뒤편에 우거진 숲이 사이에 자리한 집터를 보며 마치 물과 나무가 둘의 공간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인상에 매료되어 자연의 품에 들어온 것처럼 집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마냥 보이길 바랐다고. 돌계단을 올라 마주하는 정원의 모습 그리고 집에 들어서면 부부보다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수십 종의 식물은 이 같은 바람의 부산물이다. 탄탄한 계획을 바탕으로 실행한 이주가 아니었기에 198㎡ 규모의 주택을 완벽히 채울 수는 없었지만, 자칫 군데군데 휑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메워준 것 또한 식물이었다. 페르마타에서도 작은 텃밭 겸 정원을 운영해왔던 부부는 이곳 맹리 집에도 직접 가드닝과 식재를 시도했다. 작은 텃밭과 달리 마당이라 부를 만한 너른 땅에 가드닝을 해야 하는지라 시행착오를 꽤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가 들인 노력만큼 어느 순간에 이르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여러 색과 수형의 식물이 제 존재감을 가득 뿜어내기 시작했다.

 

부부가 키우는 반려동물 중 가장 연장자인 미우. 따뜻한 볕이 드는 곳에서 잠든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 옆에 있는 작은 바비큐 가든의 테이블에는 멋스러운 우드 스틱과 향초를 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부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다이닝 공간. 위에는 커다란 라탄 조명을 달았고, 아래에는 큰 테이블을 두었다. 비스듬한 천장에 난 창문은 채광과 후드 역할을 겸한다.

 

부부는 정원만큼 머무는 곳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층과 2층으로 나눠지긴 했지만 모든 공간에는 방과 방을 구분짓는 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구태여 밖과 안을 나누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안과 안이 역할에 따라 인위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다 연결되어 있었으면 했던 부부의 생각이 십분 반영된 결과다. 1층만 보더라도 크게 다이닝 공간과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이 마련되어 있지만, 두 공간을 구분 짓는 별도의 문이나 가림막은 없다. 오히려 군데군데 창을 내 어디서든 밖을 볼 수 있게끔 한 모습을 더러 발견할 수 있다. 부부의 집에서는 페르마타에서 으레 봤을 법한 면모까지 더러 눈에 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둘은 직접 내부를 꾸며왔다. 세월을 얼핏 헤아리기 힘든 고재 가구나 러스틱한 오브제, 시원한 인상을 단박에 안겨주는 라탄과 케인 조명, 의자는 페르마타와 이 집이 오롯이 부부의 취향의 결과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특히 큰 목제 테이블을 둔 다이닝룸은 최혜진 대표가 특히 애정하는 곳으로, 여럿이 함께할 만큼 널찍한 상판이 마련되어 그에게 다양한 여지를 남기기 때문. 때로는 일감을 집 안으로 끌어오더라도 이 테이블에서 업무를 보고, 손님이 찾아오면 이곳에서 하염없이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로 쓰이는 공간의 일부. 이곳은 이제 미우의 주 영역이 되었다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에는 멋스러운 고재 장과 오브제를 두었다.

 

윤권진 대표의 애정은 주택 뒤편으로 향한다. 목공 작업이 취미인 윤권진 대표를 위해 뒷마당 한 켠에 마련한 공방과 지금 한창 짓고 있는 온실은 그의 애정을 한몸에 받는 스폿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에서 부부의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존재는 바로 두 마리의 반려견 과 한 마리의 반려묘다. 8살 일레븐과 2살 올리브 그리고 열두 해를 살아온 미묘 미우는 맹리 주택의 최대 수혜자다. 마당은 일레븐과 올리브가 늘상 뛰어다니는 곳으로, 본래 최혜진 대표의 작업실처럼 쓰일 예정이었던 장소는 미우의 아지트가 되었을 정도. 서울에 일터를 두고 있어 주말에만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데, 세 마리의 반려동물 모두 주말만 기다리는 것 같다며 부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여전히 고쳐 야 할 부분과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멋쩍게 말하는 부부의 모습에서도 묘한 행복감이 도사린 듯한 착각은 어쩌면 잘못 본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씩이지만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나가는 이곳은 오롯이 이들 가족을 위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지금은 주말에만 이곳에 와요. 전원주택이니만큼 때로는 넘쳐나는 잡일에 여기서의 생활이 하염없이 싫다가도 때로는 벅차도록 행복하죠. 이곳에서는 주말이 정말 주말다워져요. 우리를 위한 공간에 우리를 두고 온전히 제 자신한테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여기 있으면 조급해지지가 않아요. 시간을 두고 하나씩 꾸며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죠. 서두를 필요가 없잖아요. 어차피 여긴 우리를 위한 곳인걸요.” 귀에서 맴도는 최혜진 대표의 말에서 군데군데 남겨둔 집의 여백이 다시금 읽혀지는 것만 같았다.

 

가든에서 보이는 조경과 벽이 이국적인 느낌을 한껏 낸다. 지금은 한풀 졌지만, 시기를 잘 맞춘다면 만개한 수국이 만드는 장관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윤권진 대표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데스크가 있다. 주로 여기에 앉아 킨츠키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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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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