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독일어로 경관, 풍경 등을 의미하는 란트샤프트 Landschaft로 이름 지은 이 주택은 이 보미 세라미스트와 남편 윤제호 디자이너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과 고양이 랑이가 함께 살고 있다. 부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일찍 결혼해 베를린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2018년 부부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합정동에서 2년간 작은 작업실을 꾸리고 지내다 외곽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실현 하기 위해 아키텍츠 601의 심근영 소장을 찾아갔다. “먼저 갤러리 같은 건물을 원했어요. 심플하면서도 구조적으로 재미있는, 조형적 요소가 있는 건물이었으면 했어요. 또 작업실과 주거가 같은 건물에 있기 때문에 일하러 갈 때와 집에 갈 때의 마음가짐이 바뀔 수 있었으면 했어요”라며 부부가 입을 열었다. 물론 실내도 중요하지만 건축가가 지은 집은 외관에서부터 차별성을 띠기 마련. 일반적인 주거 형태에서는 보기 힘든 갤러리처럼 웅장한 입구가 눈길을 끌었다.
“건폐율이 20%밖에 되지 않는 대지의 조건으로 지하층을 최대로 계획하고 작은 볼륨의 지상층을 감싸안는 듯한 형상의 유기적인 곡선을 만들어냈어요. 웅장해 보이는 건축적 볼륨, 즉 조형미적인 의미도 갖지만 부부의 도예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이 크게 작용했어요.” 심근영 소장이 설명했다. 그는 단순함 가운데 한국적인 선의 흐름과 중첩의 미학이 현대적인 감성으로 완결된 부부의 도예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주택의 선과 볼륨 그리고 외부 진입 동선인 계단의 조형적 형태를 결정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축 설계의 핵심은 바로 중정이었다. 중정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실내에서도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한 것.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변화해요. 또 비가 올 때는 빗방울이 창에 맺히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지는 등 날씨와 계절에 따라 집의 모습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어머님, 아버님은 저희보다 일찍 일어나시는 편이라 매일 아침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정원을 둘러보시죠. 저희 부부도 마찬가지고요.” 남편 윤제호 씨가 말했다. 집에서는 중정을 통해 자연을 느낄 수 있다면, 지하에 자리한 작업실에는 건물 진입로에 있는 대나무 정원이 보이는 커다란 선큰을 계획했다. “4m가 넘는 고저차가 심한 경사지의 특성을 활용해 채광이 잘 드는 선큰을 만들었어요. 여름에는 바람이 통해 하나의 숨결이 되어주고 겨울에는 안락하고 따뜻한 흙과 나무의 채취를 안겨줘 주택의 서정적 경험을 더해주기를 바랐어요.” 심근영 소장이 덧붙였다.
사실 일과 생활을 분리해놓지 않고 평소에도 일 생각을 많이 할 만큼 워커홀릭인 이들 부부에게는 한 건물에 두 공간이 존재하지만 공간적, 정서적, 심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했다. “작업실은 조금 더 날것의 느낌이랄까요, 중성적인 분위기였으면 했 어요.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는 않게요. 집에는 저희 부부가 좋아하는 덴마크 작가의 가구와 베를린에서 사 모은 빈티지 소품을 활용해 간소 하지만 아늑한 분위기로 꾸몄어요.” 이보미 작가가 말했다. 여기에 심 소장의 전문적인 손길을 거쳐 기능에 따라 조망, 컨셉트, 재료의 물성, 조도 등에 변화를 주어 서로 다른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완성했다. 전원 라이프를 꿈꿨던 이들 가족에게는 각자만의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우선 이보미 세라미스트는 관심에도 없었던 식물과 꽃 이름을 하나 둘씩 알아가는 재미가 생겼으며 남편 윤제호 씨는 최근 등산에 재미를 붙였다. 어머님, 아버님에게도 물론 변화가 생겼는데, 특히 인터넷 사용이 익숙지 않은 아버님은 며칠 전 불을 피우는 화로를 구입해 불멍을 시작했다고.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역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우리의 모습도 변화시킨다는 말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