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구조 변경과 취향에 기반한 선택을 거듭하며 또 한번의 변화를 맞이한 이 집은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가족의 삶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변화하는 집의 모습은 곧 가족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과 애정에 대한 또 다른 은유다.
피에르 샤포의 빈티지 테이블을 둔 주방. 뒤편에는 박성민 작가의 무화과 작품이 걸려 있다. 새로 낸 벽이 파사드 역할을 한다.
김시내 씨와 딸 해나.
난데없이 내리던 비가 어깻죽지를 꽤나 적셨지만, 묘하게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5년 전, 해사하게 웃던 딸 해나와 함께 <메종>에 가족의 집을 공개하며 또렷한 취향과 안목을 선보인 김시내 씨(@taradealfa_iroject)의 집을 다시금 찾아 가는 날이었기 때문. SNS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기민하게 시류를 파고드는 감각을 지닌 그기에 몇 해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공간 곳곳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기대가 일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목도한 풍경은 기대를 확신으로 바꿔주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꽤 지난 만큼 집의 모습도 바뀌었어요. 바깥에서의 시간보다 집 안에서의 생활이 늘어나면서 그간 느꼈거나 미처 보지 못한 점이 눈에 들어 왔거든요.” 함께 둘러보던 그녀가 집에 찾아온 변화를 차근히 설명했다. “가장 큰 변화는 공간을 명확히 구분지었다는 거예요. 그때만 하더라도 해나가 어리기도 했고 한눈에 집을 담을 수 있도록 탁 트인 시야를 원했었죠. 그러다 점점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에게도 사적인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졌고,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보니 알게 모르게 피로감도 높아지더라고요.” 각 구역마다 분명한 역할을 부여할 필요성을 느낀 그는 예전 시공을 담당했던 다임 에이앤아이와 함께 이 집의 대대적인 구조 변경을 감행했다.
군더더기 없이 힘 있는 다양한 피스를 놓은 거실. 한쪽 벽면에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파비오 렌치의 라운지 체어와 드 세데의 소파를 비치했고, 바닥에는 에이징된 모로칸 러그가 깔려 있다.
간살 도어가 열린 틈으로 1950년대 제작된 앙드레 소르네의 빈티지 캐비닛이 보인다. 시간이 흘러 더욱 매력적인 코발트 블루 컬러의 여닫이가 인상적이다.
주방은 김시내 씨의 감각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딥 그린 컬러와 마블링이 인상적인 대리석 상판과 부꼬르뉴 오븐이 좋은 합을 이룬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방과 거실 사이를 가로지르는 벽을 세우는 것. 휴게 공간으로의 거실 역할을 다시금 되찾기 위한 결정이었다. 여기에 드 세데 소파와 파비오 렌치의 하이어린 체어를 두어 거실이 마치 라운지처럼 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잡다한 오브제나 장식을 최대한 자제해 어느 정도의 여백은 남겨두는 대신 큼직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피에르 잔 느레의 의자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수납장 등 빈티지한 아트 피스를 두었다. 무엇보다 벽면 한 켠을 가득 메우는 이우환의 작품은 이 공간의 화룡점정이 되었다. 다이닝 공간 또한 과감한 구조 변경을 거쳤다. 기존에 붙박이처럼 설치된 싱크와 찬장을 뜯어내고 벽을 내 자투리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워킹맘이기도 한 그녀의 홈 오피스로 활용되는 동시에 주방은 한층 아늑해지는 효과를 얻었다. 거실이 심플하지만 곳곳에 힘을 준 느낌이라면, 주방은 한층 더 빈티지한 면모가 강조된 듯한 인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앙드레 소르네가 디자인한 코발트 블루 컬러의 캐비닛 그리고 피에르 샤포의 다이닝 체어와 테이블이 이곳을 더욱 아이코닉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 사실 다이닝 공간은 김시내 씨의 취향과 감각이 유독 강렬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오리엔탈적인 느낌이 강한 딥 그린 컬러의 아일랜드 상판, 이와 무드를 맞춘 코퍼 소재의 수전과 싱크대 등 사소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감각적인 믹스&매치를 발견할 수 있다. 주방 옆에 마련한 자투리 공간 겸 홈 오피스로 통하는 입 구와 거실로 나서는 출입구에는 각각 간살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는데, 붉은 기가 도는 나무로 제작한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키친 공간의 메인 피스인 피에르 샤포의 테이블이 빈티지인 만큼 목재의 상태가 시간에 의해 자연스레 에이징되며 마찬가지로 붉은 기가 일부 감돌기 때문에 이와 톤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다.
현관 옆은 수납에 특화된 공간이다. 마치 팬트리처럼 이곳에 식기와 생활용품 등을 보관한다.
김시내씨와 남편은 작품 수집과 감상을 즐긴다. 벽면 곳곳에 걸려 있는 작품은 그들의 컬렉터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김재용 작가의 ‘도넛’ 작품이 유달리 들어오는 딸 해나의 방. 다른 공간에 비해서 특히 넓은데, 창고 공간을 합쳐 이 같은 면적이 나왔다.
김시내 씨는 수납에 있어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커가는 아이와 옷을 좋아하는 남편의 니즈를 반해 수납공간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었던 것. 이를 위해 기존 실내 운동을 하던 공간의 벽 일부를 활용 해 붙박이장을 짜 수납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전에는 제가 원하는 걸 하고 싶어도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제는 집을 꾸려나가 는 데 있어 제 선택에 확신이 들어요. 살아본 사람이 이 집을 가장 잘 아는 건 당연하잖아요. 벽을 낸 점도 그래요. 공간을 쪼개가면서 의외성 있는 벽이 생겼지만, 오히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걸 수 있는 파사드가 늘어났어요. 덕분에 묵혀뒀던 작품을 맘껏 감상할 수 있게 됐죠. 보여주기식 인테리어가 아니라 이 집에 살면서 들었던 생각과 관점을 기준으로 고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김시내 씨의 말에 주방 한 켠에 걸린 박성민 작가의 무화과 작품과 복도를 장식한 존 발데사리의 아트피스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이제 향후 10년간 이 집에 대대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그녀지만, 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더욱 많은 개선의 여지는 반드시 찾아오게 되는 법. 하지만 그녀의 결정과 선택으로 가족에게 딱 맞춰 다시금 변화할 것이며, 아이가 자라듯 이 집 또한 세 가족과 함께 나날이 자랄 거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오픈 키친이었던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벽에 설치된 싱크대와 찬장을 철거하고, 약간의 틈을 낸 채 새로운 벽을 내서 만든 자투리 공간. 김시내 씨는 이곳을 홈 오피스로 활용한다.
드럼과 기타, 스피커가 놓인 해나의 방. 촬영팀에게 드럼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잠자리를 구현한 김시내 씨의 침실. 간접조명과 펜던트 램프를 달아 침실을 위한 은은한 빛을 연출한 점도 보인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욕실은 알프레도의 민트색 욕조가 아이코닉하다. 옆에 놓인 트롤리에는 레이블씨의 르푸르니에 플럼뷰티 오일과 뱀포드 로즈마리 윌로우 디퓨저, 뱀포드 비바이브런트 샴푸, 컨디셔너가 놓여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야외 운동이 힘든 점을 반영해 실내에 가족 전체를 위한 피트니스 공간을 마련했다. 딸 해나는 이곳에서 발레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