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했던 몇 년치의 집을 모아놓고 보면 그 당시 유행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요소나 가구 등이 눈에 밟히기 마련이다. 한 시기의 유행을 살펴볼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종종 집주인만의 개성이 느껴지는 집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공간 디자이너인 꾸밈by 조희선 대표가 “굉장히 강하고 독특한 집이에요”라며 언지를 줬을 때만해도 사실 무덤덤했는데 직접 마주한 이 집은 예상보다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집만 보고 집주인을 예측해볼 수 있을까. 컬러가 넘실대는 이 집의 주인공은 개그우먼 박나래 씨다. TV 화면을 통해 그녀가 컬러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란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만 집전체가 거대한 물감 팔레트 같을 줄은 몰랐다.
“40년이나 된 단독주택이에요. 처음에는 인테리어 공사만 하려고 했었는 데요, 철거를 하다 보니 오래 묵은 집의 문제점이 하나 둘씩 드러나더군요. 철거를 하고, 가벽을 세우고, 구석구석 손을 봤죠”라며 조희선 대표가 길었던 여정의 시작을 설명했다. 집주인이자 스타일에 대한 주장이 확고했던 박나래 씨는 오랫동안 살 생각으로 그동안 꿈꿔왔던 것을 이 집에 담아내고자 했다. “일을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던 시절에는 아주 작은 집에서도 살았고, 이사도 참 많이 다녔어요. ‘나래’s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인 이 집은 언젠가 집을 갖게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컨셉트예요.” 박나래는 TV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를 통해 친분을 쌓은 조희선 대표에게 집을 의뢰했고, 많은 셀러브리티의 집을 디자인한 경험이 있는 그녀라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제대로 반영해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집은 거대한 체스판을 떠올리게 하는 다이아몬드 패턴의 거실과 주방 바닥의 타일, 미로의 문을 떠올리게 하는 아치 형태의 프레임, 마블링처럼 물감이 섞여 있는 듯한 벽, 마치 벽지가 작품이 된 듯 천장에 액자 몰딩을 설치한 다이닝 공간,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새와 나비의 모습을 담은 패브릭 소파 등 왜 컨셉트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지 알 수 있을 만한 독특한 요소들이 혼재해 있다. 지하부터 이어지는 계단도 층마다 컬러와 패턴을 달리해 공간을 이동할 때도 재미가 있다.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컬러를 반영했는데, 노란색 침대 헤드보드와 보라색 벽지의 매치가 산뜻하고 욕실로 가는 벽에는 류종대 작가의 올록볼록한 거울 작품을 달아 안쪽 공간을 화사하게 밝힌다. “저는 컬러를 정말 사랑해요. 무채색 공간에 가면 편안하기보다 오히려 답답하더라고요. 제일 싫어하는 색깔이 블랙&화이트일 정도예요(웃음). 집에 컬러가 많으니 어떤 가구나 소품을 두어도 비슷한 컬러가 있어서 매치가 잘 되고요, 조금 어질러져 있어도 티가 덜 나요. 쉬는 날 거실에 앉아 집을 둘러보고 있으면 정말 행복해요”라는 말에서 개그우먼 박나래가 얼마나 컬러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남들은 불멍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컬러멍’으로 위안을 받는 셈이다.
사실 집에 컬러를 반영하고 싶은 이들은 많지만 막상 시도하려고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좋아하는 컬러를 그냥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괜찮은 인테리어가 되기 어렵다. 꾸밈by 조희선 대표와 오수미 선임 디자이너가 쌓은 내공과 노하우는 그래서 더 빛을 발한다. 컬러가 지나치게 많으면 어지러울 수 있기 때문에 주방과 다이닝 공간 사이의 벽은 블랙&화이트 패턴을 넣었고, 많은 술잔과 테이블웨어를 보관할 붙박이장의 도어는 블랙 유리로 마감했다. 공간을 묵직하게 잡아주는 요소이 기도 하고 조명을 켰을 때도 화려하지만 힘이 느껴진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공간은 높은 천고의 장점을 살려 블랙&하이트의 줄무늬 벽지를 발랐는데, 덕분에 시원스럽게 뻗은 패턴의 힘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또 대부분의 수납 공간을 붙박이 형식으로 마감해 컬러 외에 산만해보일 수 있는 물건을 깔끔하게 보관할 수 있다. 박나래 씨의 많은 짐을 제자리에 완벽하게 수납하면서 오롯이 컬러를 감상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집이 된 것. “조희선 대표 님이 계속 강조하신 것이 수납이었어요. 집에 컬러가 많으니 짐을 최대한 숨겨야 컬러가 더욱 돋보일 수 있다고요. 캠핑 장비부터 옷, 그릇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도 손이 크셔서 한번 보내주실 때마다 양이 엄청나거든요. 웬만한 영업장만큼 짐이 많았는데, 집 안 곳곳에 마련한 수납공간으로 짐을 잘 정리할 수 있었어요.” 박나래 씨가 이전 집의 짐이 모두 잘 수납된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해가 잘 드는 거실에 앉아 쉴 때를 위해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왠지 마셔야 할 것같아 커피머신을 구입했다는 박나래 씨의 말에서 새 집에 대한 설렘이 느껴졌다. 그녀의 본업은 개그우먼이자 방송인이지만 시간이 날 때 마다 인테리어를 찾아보거나 새로운 가구나 소품을 둘러보는 것이 취미다. 집 공사를 앞두고 래퍼런스 자료로 찾은 사진만 100장이 넘을 정도다. “저도 개성 강한 집을 많이 해봤지만 나래 씨는 정말 색다른 것을 원했어요. 뭐든 유행이거나 많이 판매된 제품에는 관심이 없었고,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것을 골랐죠(웃음). 조금 과한 부분은 서로 절충하면서 최대한 나래 씨가 생각한 집에 가깝게 디자인했어요.” 조희선 대표의 말처럼 박나래 씨는 거실의 빈 벽에 핫 핑크 벽난로를 두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집 공사가 그렇듯 우여곡절도 있었고 다들 고생이 많았어요. 그래도 생각했던 집이 완성돼서 만족하고 감사해요. 옷처럼 집도 나를 표현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이 집에 놀러왔을 때 ‘박나래, 너 답다’라고 말해준다면 최고의 칭찬일 것 같아요. 사람마다 편하다고 느끼는 기준이 다르듯 저는 다양한 컬러에 둘러싸여 있을 때 편안함을 느껴요. 박나래의 집에는 연예인의 집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큼직한 셀프 포트레이트나 트로피는 볼 수 없다. 오직 집 안에 넘실대는 컬러만이 박나래를 대변한다. 그녀는 컬러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