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층 작업실에 음향 시설을 설치했는데, 작업을 하면서 음악을 듣지는 않는다. 작업을 마치고 작품을 보면서 혹은 명상이 잘 안되는 날에는 음악을 듣곤 한다.
미술가의 공간은 그의 작품과 닮은 점이 있을까? 평창동 언덕에 자리잡은 미술가 도윤희의 공간에서라면 이러한 의문을 어느정도 풀 수 있을 것같다. 도윤희 작가의 건물 1층은 거주공간, 2층과 지하는 작업실이다. 2003년 건축가 민경식에게 직접 건축 디자인을 의뢰했으며, 3개층은 철저히 미술 작업을 위해 만들어졌다. 지하에는 대형 작업 기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주로 2층에서 회화 작업을 한다. 햇살이 적당히 들어오게 설계한 2층 작업실 위에는 명상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는데, 아침마다 도윤희 작가는 이곳에서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끔 은 1층 거실에서 명상을 하기도 한다. “어릴적에는 컬러 작업을 즐겨했어요. 그러다 숨겨있는 것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오랫동안 마치 도자기의 표면같은 무채색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컬러가 표출되기 시작했어요. 지난 2015년 전시 <나이트 블로섬 Night Blossom>은 뱃속의 색깔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었다면, 이번 전시는 한층 발전된 컬러를 보여주고 있어요.” 컬러 작업을 하다 보니 하루 일과마저 변화되었다.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연필 작업을 하곤했는데, 컬러작업은 햇빛이 있어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매일 아침6시면 일어나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고 2층 작업실로 올라간다. 치즈와 과일, 커피와 빵을 간단히 가지고 가는데, 해가 질 때까지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한다. 과식을 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가볍게 먹는 것이 습관이다.
도윤희 작가의 작업실에는 몇년 전 발표했던 작품들이 놓여 있다.
Untitled 무제, 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72.7×60.6cm.
2층 아틀리에는 햇살이 적당하게 들어와 컬러 작업을 하기 좋다.
전시 제목 <베를린>은 2013년 부터 공장 건물의 스튜디오를 빌려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유래되었다. 서울에만 머물러 있으면 작가로서 정체될 수 있기에 선택한 베를린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새로운 영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갤러리 현대의 신작전시는 베를린에서 그린 작품,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만든 작품, 서울에서 만든 그림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공간은 고독을 위한 곳이기 때문에 편안할 필요가 없지요. 언제든지 짐을 싸서 떠날 수 있도록 그야말로 딱 필요한 물건만 두었어요.” 하지만 이곳 평창동은 다르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사용하던 가구,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그릇이 가득하고 따뜻한 추억이 담겨있다. “시간이 쌓여 빛바랜 철, 딱딱한 콘크리트, 투명한 유리와 같이 상반된 물성이 부딪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클래식 음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의 조화처럼요. 사실 내 작품도 그런 내용이지요. 겉으로 보면 아름다운데, 자꾸 들여다보면 그 안에 무거운 것이 있어요. 모차르트 음악도 처음 들으면 아름답지만 그 안에 처절함이 숨어 있잖아요.” 도윤희 작가는 대부분의 현대미술이 인간 삶의 고통을 보여주기 때문에, 자신이 또 한번 적나라하게 이를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부인 할 수 없는 삶의 아픔을 아래 깔고 시적인 부분을 끌어내서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렇게 사실보다 더 풍요롭게 느껴지는 것이 추상이다.
Untitled 무제, 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53.2×45.7cm.
매일 밤 책을 읽어야 잠들 수 있는 작가의 낭만적인 서재.
거실에 서서 있는 도윤희 작가.
그녀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도상봉 화백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도상봉 화백은 미술 애호가에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구상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도윤희 작가에게는 그리운 할아버지로 아직까지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항상 안 아주시던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도상봉 화백의 그림을 차마 거실에 걸어두지 못하고 있다. 어린 그녀에게 할아버지의 작고는 우주가 뒤집어지는 아픔이었다. 곳곳에 놓여 있는 낡은 책상과 의자, 도자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이 쓰시는 것들인데, 이렇게 현대적인 공간에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그녀의 안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사용 했던 것들이라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는데, 보기에도 근사할 뿐 아니라 항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도상봉 화백과 도윤희 작가는 구상과 추상이라는 장르의 차이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일종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할아버지와 내 작품의 비슷한 점이 ‘근거없는 우수’인 것 같아요. 현대 추상이라는 장르는 행동이나 부분을 작품화하는 경향이 있는 페인팅의 한 부분이지요. 나는 작가로서 디테일을 보여주고 이를 강조하지만, 멀리 보면 하나의 교향악이 됩니다. 작품마다 완결성을 만들고 싶은데, 작가가 되 기까지의 숙련을 위한 연결 지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나의 정신 세계는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조부모님 밑에서 이루어졌으니 할아버지와 공통점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1층 엘리베이터 옆에 멋스럽게 놓여 있는 도자기들.
Untitled 무제, 2021,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300×200cm.
1층 엘리베이터 위에는 할아버지 도상봉 화백으로부터 물려받은 조선시대의 현판을 걸었다. ‘노을 하(霞)’와 ‘뫼 산(山)’이 쓰여 있는데, 두 글자를 합치면 112 MAISON MARIE CLAIRE ‘신선’이라는 의미다. 침실의 나무 문은 도 작가가 직접 만든 것.
그녀 안에서 느껴지는 조부의 감성은 품격과 위엄으로 자리하고 있다. 철저하고 아늑하지만 아름다운 존엄성 말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의 그때 그 시절 나이와 자신을 비교해보면서 미술가로서의 천복이자 천형을 되새겨본다. 평창동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거주 공간은 서재, 거실,부엌, 침실로 나뉜다. 매일 밤 책을 읽어야 잠들 수 있는 그녀에게 서재는 특히 중요한 장소다. 과거의 작품은 문학에서 큰 영감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회화에 집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학에서 한 걸음 멀리 떨어져 있다. 작품 운송을 위해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있다. 거실 엘리베이터 옆에는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조선 시대 목가구가 있는데, 궁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도자기들은 진열대에 놓지 않고 바닥에 내려 두었는데 그 자체로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도상봉 화백은 도자기를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도자기를 잘 아는 분이기도 했다. 일본으로 넘어가는 도자기를 막으려고 인사동에 도자기 가게를 열기도 했을 만큼 도자기를 사랑했다. “내 이미지는 결국 내 안에 있습니다. 무거움과 가치는 필연적으로 연결 되어 있지요. 그래서 나는 늘 약간 멜랑콜리한 것 같아요. 내 멜랑콜리아 Melancolia의 해결은 그림이지요. 밝을 수도 어두울 수도 있지만, 자기 고백적인 작품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추상은 환상이 아니다. 작가의 인식에서 출발하고 실체를 알아가는 것이 작품이며, 작업을 하며 세상과 화해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힘이며, 회화의 정수는 작품을 보고 그 안에 들어가 여행하고 정신적으로 확장된 경험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잠시 떠나 그녀는 여름에 다시 베를린으로 가려고 한다. 예술의 도시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인터넷도 없는 작업실에 숨어버리려는 것이다. 그녀에게 작업이란 무겁고 힘든 것이다. 어렵지 않게 완성한 작품에서는 죄책감을 느끼기에 오늘도 캔버스와 끝이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고 있다.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화장실. 곳곳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거실 테이블과 의자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서재와 침실의 책상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그 옆에는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낮은 장과 도자기가 놓여 있다. 이 장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전시에 빌려주었다가 얼마 전에 돌려받았다니 흥미롭다.
서재와 침실의 책상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그 옆에는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낮은 장과 도자기가 놓여 있다. 이 장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전시에 빌려주었다가 얼마 전에 돌려받았다니 흥미롭다.
도자기를 즐겨 그렸던 할아버지 도상봉 화백이 아끼던 도자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