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아파트지만 전원의 풍경과 전형적이지 않은 인테리어가 멋진 중년 부부의 집을 소개한다.
거실에서 바라본 다이닝룸은 동서양의 아티스틱한 분위기가 흐른다. 두 명의 아티스트와 협업해 만든 옻칠 테이블 뒤로 빈티지 가구를 수작업으로 커스터마이징하는 드라가&아우렐의 수납장과 그 위로 장 미셸 오토니엘의 ‘오라클 Oracle’ 작품이 마치 세트인 양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펜던트 조명을 켰을 때 불빛이 오토니엘의 작품에 반사되어 마치 벽난로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부부가 간단하게 식사할 수 있는 코너를 만든 주방. 김혜진 대표가 직접 제작한 파티션 역할을 하는 벽은 공간을 분리하는 동시에 미감을 더한다.
아파트나 공동주택은 똑같은 자재와 구조 그리고 빌트인 가구 때문에 개인의 취향이나 스타일을 드러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대신 가구와 데커레이션 같은 홈 스타일링으로 개성을 표현하고 인테리어 시공을 통해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고유한 공간을 완성하기 마련이다. 중년 부부의 집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하지만 다른 집들과 달리 공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부터 가구, 디테일한 부분까지 트렌드를 좇기보다 ‘일반적’인 것에서 탈피한 과감한 아이디어가 신선하게 다가 왔다. 공간 설계와 스타일링을 맡은 스튜디오 HJRK의 김 혜진 대표는 마음이 잘 맞은 클라이언트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간의 배경이 되는 벽면부터 남다르다. 크림 컬러의 도장과 패브릭 시공을 함께 했는데, 이로 인해 평면적인 벽면이 입체적으로 느껴지며 공간이 한층 더 풍성해 보인다. 또 부엌의 수납장 문은 월 패널을 활용해 얼핏 보면 벽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뒤로 가전이 숨어 있고 수납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반면 침실로 이어지는 데드 스페이스와 주방에는 천장까지 컬러 도장으로 마감해 다른 공간과 분리되는 의도를 살렸다.
거실의 중심에 놓인 소파가 공간의 균형을 이룬다. 정면에는 투리 시메티 Turi Simeti의 작품을 걸었고 왼쪽 벽면에는 이광호 작가의 작품을 두었다. 작품의 파란 선과 연결될 수 있도록 같은 컬러의 빈티지 체어를 두었다.
간이 주방에서 바라본 다이닝룸과 거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포근한 빛은 이 집의 또 다른 조명이다.
배경을 채운 가구와 오브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성 가구를 사용하기보다 공간에 맞게 대부분 제작했다. “집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기성 가구를 찾는 게 어려웠어요. 다이닝 테이블만 해도 이곳과 형태는 어울리지만 소재가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들과 협업하기도 하고, 제가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하기도 했어요. 기성 가구가 품질도 좋고 디자인 측면에서는 훌륭하지만 작가들과 협업한 가구에서 묘한 감성이 느껴지더라고요 . 때문에 상업 공간이나 쇼룸 느낌보다는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어요.” 김혜진 대표의 설명처럼 거실과 이어지는 다이닝 공간에는 두 명의 아티스트와 협업해 만든 옻칠 다이닝 테이블이 묵직하게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그 옆에는 김준수 작가와 협업한 식물의 화분을 가리는 파티션 작품도 멋을 더한다. 김혜진 대표가 직접 제작한 제품도 있다. 복도에 둔 스툴부터 미디어룸에 놓인 패브릭 소파까지 부부의 집만을 위해 탄생한 가구와 오브제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남편의 서재는 묵직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울과 리넨이 섞인 패브릭으로 한쪽 벽면을 마감하고 다른 한쪽에는 창문 너머 보이는 나뭇가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자작나무를 연상시키는 패브릭을 골랐다.
미디어룸에서 남편의 서재로 가는 복도에는 윤라희 작가와 김창열 작가의 작품을 걸었다.
곳곳에 걸려 있는 예술 작품도 이 집의 포인트다. 집 안 분위기를 고려해 작품을 고르고 프레임을 선택하기까지 김혜진 대표의 예리한 시선이 녹아 있다. 미디어룸 벽면에 걸린 윤라희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라. 부부를 위해 김혜진 대표가 직접 의뢰했을 만큼 정성이 느껴진다. 아크릴 작품으로 공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독특한 시공을 감행해 특별한 미감을 선보다. 그 외에도 이 집은 소파를 거실 중간에 놓거나 방 하나에는 큰 테이블과 의자로 채우는 등의 가구 배치도 눈여겨볼 만하며 살림살이와 눈에 거슬리는 요소를 꼭꼭 숨기는 숨김의 미학도 엿볼 수 있다.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숨어 있는 부부의 집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팁이 공존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전형적인 인테리어 규칙을 깨기만 해도 참신하고 개성 있는 나만의 집을 꾸밀 수 있다는 것. ‘일반적’인 것 에서 탈피한 과감한 도전 자체가 인테리어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아내의 공간은 아파라투스 조명에 맞춰 커튼 컬러와 붙박이장의 텍스처, 가구를 선택했다.
미디어룸에는 김혜진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패브릭 소파와 이광호 작가의 사이드 테이블이 놓여 있다.
게스트 화장실은 높은 천고를 살리기 위해 길게 조명을 내리고 독특한 대리석으로 제작한 세면대로 개성 있게 완성했다.
원래 보조 주방이었던 공간을 메인 주방으로 만들었다. 요리를 즐기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 아내를 위해 수납공간은 집주인이 직접 계획했다.
벽면에 숨겨진 문을 열면 아내가 좋아하는 블루 컬러로 물든 주방이 나타난다. 따뜻한 컬러의 패브릭으로 시공한 벽과 대비를 이루며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현관 앞 긴 복도에는 김혜진 대표가 제작한 스툴 뒤로 오묘한 컬러가 번지는 김택상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