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의 정원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이 굉장한 기쁨이에요. 한파와 장마가 있고 폭염이 있기 때문에 가드닝을 하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다양한 장면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죠.”
꽃을 피우는 데 가장 좋은 절기인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 켈리타앤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최성희 대표의 성북동 집을 찾았다. 2001년 설립 이후 작게는 작은 카페부터 도시 개발 브랜딩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그녀는 때로는 비스포크 스테이셔너리와 아트웍을 병행하는 켈리타 아틀리에의 운영자이기도 하며, 널찍한 정원을 손수 가꾸는 가드너로도 활약한다. 대표적으로는 백미당, 나인원한남, 갤러리아 고메494, 신세계 빌리브, 서울 공예박물관과 MMCA 어린이박물관 리뉴얼 작업 그리고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 프로젝트까지 하루를 일주일처럼 맹렬히 일하며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쓰며 정원을 가꾸고 있다. 그녀에게 정원은 생각의 짐을 풀 수 있는 오아시스이자 마음 한 켠의 휴식처 같은 존재다. 정원에 있노라면 마치 은퇴한 삶과 같다며 최성희 대표가 입을 열었다.
“저는 땅을 밟고 사는 것을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한옥에서 살기도 했고, 흙을 가지고 장난하고 땅에서 무언가를 키우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무리 똑같은 식물을 심어도 자라나는 형태가 다르고 아침, 저녁이 또 다르고, 계절마다 변화해요. 이보다 더 유니크한 게 없죠. 우리는 매일 창조적인 것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정원을 가꾸는 일이 지루하고 나이 든 노년의 취미처럼 비춰지기도 해요. 이곳에서 18년 정도 거주하며 10년 전쯤부터 본격적으로 정원을 가꿨는데, 그때만 해도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이모할머니 집 같다고 했어요(웃음). 주말 아침이면 점심때까지 집 안으로 못 들어갈 만큼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녀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정원이 매 순간 큰 선물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원을 통해 일에 대한 에너지를 얻고 인풋과 아웃풋의 밸런스를 맞추는 삶을 살고 있다고. 사실 정원은 마음의 위안을 선사하는 것을 넘어 실생활에서 먹고 쓰고 사용하는 것을 내어주기도 한다.
직접 심은 래디시와 토마토, 당근, 루콜라는 자연스레 가족의 식탁을 책임진다. 작은 농장을 위해 해외에 나가면 종묘상에 들러 다양한 씨를 구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애정 가득 키운 작물은 정성을 다해 수확한다. “틈틈이 조향사와 함께 공유한 향과 색, 계절의 느낌은 내추럴 오일 방향제로 만들어져요. 또 보성에서 전문가가 직접 핸드픽해서 딴 세작으로 차를 만들고 그 패키지를 제가 디자인해 켈리타 아틀리에를 통해 선보여요.” 켈리타 아틀리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자연 소재로 만들고, 사람의 손길이 닿은 핸드메이드라는 점과 마지막으로 세월이 지나면 에이징된다는 것이다. “차도 세월이 지나면 더욱 숙성되어 맛있어져요. 구리 소재의 화병과 도자기 역시 색이 변화하며 아름다워지죠.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단 한순간도 똑같은 적이 없어요. 매일매일 늙어가고 저 역시도 에이징되어가며 멋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좋아요.” 최성희 대표의 정원은 사실 거창한 컨셉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정원만의 특화된 점을 물어보니 간단명료한 답을 들려줬다. “제 정원의 특징은 ‘내 마음대로 정원’이에요. 처음에는 전문가의 조언도 받아보고, 배우기도 했지만 결국 자리와 토양, 빛의 특징에 따라 자라나는 생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 정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저예요.” 직접 흙을 만지고 햇빛의 방향을 체크하고 식물의 제자리를 찾아주며 식물에게 가장 알맞은 위치와 시기를 정한다. 두 번째는 ‘생각의 정원’이다. 정원은 그녀에게 생각을 덜어내고 채우는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자연의 섭리가 정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할 때 그것을 거스르다 보니 실패의 순간도 맛보고, 우여곡절도 겪는다.
“제가 한 일은 물을 주고 바라봐주고 만져주는 것밖에 없어요. 그만큼 투자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 자라면 또 씨를 내어주고. 그런 순환 과정에 제가 같이 살고 있다는 게 너무 경이롭고 기뻐요.”
“그러한 과정이 식물을 키우는 것과 똑같아요. 아무리 제가 예뻐하는 꽃을 원하는 자리에 가져다두고 싶어도 자라지 않죠. ‘모든 것이 제자리가 있고 제 시기가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 일할 때 가장 큰 가르침을 줘요.” 최성희 대표는 정원을 가꾸면서 그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삶의 교훈을 많이 얻는다고 강조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날씨부터 확인하고, 일기예보를 보는 농부처럼 말이다. 그 때문에 높은 빌딩에서 살았다면 볼 수 없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아가면서 날씨와 친하게 지내는 기쁨을 누린다. “사실 정원이 가장 바쁜 시기는 4월이에요. 어떻게 보면 지금은 할 일을 거의 끝냈다고 봐야죠. 바라봐주고, 따먹고, 뽑고 나면 물을 주고. 여름 정원이 되면 수국이 올라오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휴지기예요. 땅이 잠을 잘 시기죠. 그때는 또 맹렬히 일에 몰두하고, 전시도 보러 다닐 예정이에요. 또 티룸의 하얀 벽을 아트 월로 만들 계획이에요. 향후에는 지금처럼 정원을 가꾸며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에요. 일은 조금씩 줄여 나가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