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모네에게 정원이란 직접 가꾸며 일구어나간 생활터전이자 감을 얻고 작업을 하는 아틀리에다. 그의 일상처럼 회색빛 도시에서 자신의 공간을 녹색으로 물들이며 위안과 기쁨을 얻는 이들을 만났다. 자연을 곁에 두기 위해 마당과 옥상, 테라스에 정원을 가꾸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흐름을 오롯이 즐기고 있었다. 보기에만 좋은 정원이 아닌, 각자 삶의 방식이 녹아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도시 생활자의 정원으로 안내한다.
구루앳홈 박소현 정원 디자이너의 집 3층 옥상에서 바라본 2층 정원의 전경.
정원의 중앙에 위치한 매실나무. 매실이 노랗게 익어 떨어지면 주워다 매실청을 만든다고. 뒤로는 북한산이 보인다.
박소현 대표와 그의 반려견 앙리.
“정원을 가꾸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져요. 오롯이 흙과 식물 냄새를 맡으면 화가 났던 것도 생각이 안 나죠. 일종의 수행 같기도 하고요.”
굽이굽이 평창동 길을 올라 북한산에 다다를 즈음, 구루앳홈 박소현 디자이너의 집이 나타난다. 3년 전 20년 된 평창동의 집을 리노베이션해 쉼이 있는 곳으로 완성했다. 독특하게 ‘ㄱ’자 구조로 된 집은 총 3층으로 이뤄져 있다. 1층은 박소현 디자이너 부부의 주거 공간, 2층은 게스트를 위한 공간 겸 가드닝 클래스가 진행되고, 3층은 식물 갤러리를 계획하고 있다. “보통 대문을 열고 정원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저희 집은 건물을 통과해 야만 정원을 마주할 수 있어요. 시크릿 가든처럼요.” 박소현 디자이너가 2 층 테라스와 이어진 정원을 소개했다. ‘ㄱ’자 건물로 둘러싸인 정원은 푸른 하늘과 가까웠다. “뒤로는 북한산이, 옆으로는 북악산이 보이는 차경이 있는 집이라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정원을 조성했어요. 땅을 다지고 정리하면서 발견한 바위를 자연스럽게 살리고요. 온실을 두고 양쪽으로 화단을 꾸몄어요.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 물을 좋아하는 식물, 토질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식물 등 특징별로 구역을 나눴고요. 이곳에서 가드닝 클래스도 진행하고 있어요.”
바닐라 스카이 수국과 미스김 라일락, 자엽국수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왼쪽 구상나무는 겨울이 되면 오너먼트를 달아 트리로 사용한다.
‘ㄱ’자 형태의 건물이 정원을 둘러싸고 있어 보다 아늑하다.
정원으로 이어지는 테라스에는 향이 나는 허브 위주의 식물을 식재했다. 빨간 꽃은 체리세이지.
그녀의 부지런한 손길로 가꾼 정원은 집에서 여는 식물 스튜디오의 꿈이 실현된 장소이자, 수강생들에게 교본과도 같은 곳이다. 화분에 식물을 심는 컨테이너 가드닝 위주의 수업이 진행되며, 공예를 전공한 그녀의 내공이 담긴 정원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다. “산업혁명 후 공예를 되살리는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이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운동이 정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죠. 역사적으로도 공예와 정원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공예든 정원이든 사람 손길이 닿아야 하잖아요. 공예품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것처럼 정원 역시 똑같을 수 없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멋스러워지고 가치가 있는 것도 비슷하고요.” 박소현 디자이너의 설명처럼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공예품을 만드는 일처럼 한 땀 한 땀의 정성과 노고, 애정을 들여 나만의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일과도 같다. 그녀는 매일 식물을 돌보고 직접 유기농 비료를 만들어 친환경적으로 정원을 가꾼다.
매일 흙을 일구고 정원을 관리하는 박소현 정원 디자이너. 푸른 플럼바고와 은사초가 심어져 있다.
1층 주거 공간에 딸린 테라스. 빛이 잘 들지 않아 그늘 식물과 상록수 식물 위주로 완성했다.
2층 정원 옆으로는 1층으로 이동하는 계단이 이어진다.
“정원 가꾸기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매일 조금씩 관리가 필요해요. 죽어 있는 식물을 캐내고, 다시 식재하고…. 식재할 때는 여백을 둬야 해요. 식물이 자랐을 때의 크기를 감안해야 하죠. 또 사계절을 고려해야 하고요. 서쪽으로 억새를 서너 그루 심었는데, 가을에 해가 질 때 갈대가 황금색으로 빛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요. 지금은 푸른 잎의 식물도 잎이 떨어지면 빨간 가지를 만들며 겨울 정원을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고요. 정원은 지루할 새 없이 아름다운 변화를 만들어내요.” 박소현 디자이너가 설명했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수고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식물집사’라고 칭할 정도로 즐긴다. “정원을 가꾸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져요. 오롯이 흙과 식물 냄새를 맡으면 화가 났던 것도 생각이 안 나죠. 일종의 수행 같기도 하고요(웃음). 어찌 보면 인생이기도 해 요. 인생도 늘 높은 위치에만 있지는 않잖아요. 식물처럼 잎이 떨어졌다 다시 꽃이 피는 것처럼 힘든 시기를 겪고 다시 극복하고 일어서는 우리네 인생이요.” 많은 것을 일러주는 정원은 그녀에게 일터이자,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 같은 존재다.
1층 거실 공간. 박소현 디자이너는 집 안 모서리에 식물을 두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팁을 전했다.
2층 가든 클래스 이론 수업이 열리는 공간. 널찍한 창문 너머로 쭉 뻗은 소나무가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직접 만든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비밀의 문이 나타난다. 옛 지하 벙커로 쓰이던 공간을 사우나실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