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여리한 가지와 흰 꽃을 좋아해요. 누군가에게는 그저 약해 보이고 존재감이 미미해 보일 수 있지만, 제 정원에는 이런 식물이 많이 자리하고 있죠. 비록 작은 정원이지만 취향과 노력, 애정이 모든 식물에 고루 깃들어 있어요.”
도시 생활자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빼곡한 빌딩 숲과 탁한 공기에 염증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올 테다. 사방을 둘러봐도 쉽사리 느껴지지 않는 생기를 갈망하며 어디라도 좋으니 최소한의 생기와 여유로움이 있는 도피처를 찾아 다시금 활력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자연히 뒤따른다. 선선한 바람과 볕이 기분 좋게 내리쬐던 5월의 주말, 발걸음한 후암동에서 하나의 해답을 찾았다. 근방에는 사옥과 쇼룸, 주택 등 크기와 범주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공간을 구현하는 인테리어 스튜디오 엔알디자인팩 토리 김나리 대표의 오피스 겸 주거 공간 가장 위쪽 옥상에서 말이다. 그는 몇 년 전 과천에 있던 작업실을 이곳 후암동의 2층 주택으로 옮긴 데 이어, 작년에 들어선 오피스와 결합된 레이어드 홈격의 주거 공간을 꾸려 생활하고 있다. 주택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은 골목 같은 인상의 복도 한 켠에 작은 계단이 나있다. 이를 타고 올라서면, 점차 짙은 초록의 기운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옥상에 다다르면 가느다란 수형의 나무와 솜사탕처럼 몽글몽글 피어난 꽃이 곳곳에 위치한 비밀 정원이 등장한다. 작업실로 해당 공간을 활용할 당시부터 간간이 식물을 들여놓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후암동 주택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다양한 식물을 들여놓은 결과가 채 10평도 되지 않는 이곳에 화사히 구현된 것. 식물을 좋아하는 김나리 대표에게 옥상정원은 이곳 후암동 주택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전 작업실에서는 상황상 실내에서만 식물을 키웠어요. 물론 바쁘기도 바빴지만, 실내라는 제한된 장소에서만 자라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좀체 힘을 못 쓰더라고요. 후암동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옥상에 식물을 하나둘 들여놓기 시작했는데, 식물들이 이전에는 없던 볕이나 바람, 비 같은 자연의 요소를 접하게 되니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힘차게 뻗는 가지와 활짝 피어나는 꽃망울을 보면서 자연의 힘을 다시금 느낀 그는 채광 을 위해 옥상에 지붕을 씌우지 않는 대신, 조금 더 많은 종류의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릇이나 데커레이션 아이템을 고를 때에도 가늘고 여리여리한 특징을 지닌 것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대폭 반영된 가느다란 가지와 수형이 특징인 바이텍스, 스모크 트리 등을 두는가 하면, 새하얀 꽃을 좋아해 수국과의 식물과 강렬한 색감의 장미나 찔레꽃, 셀릭스 등으로 초록의 기운과 여러 색의 적절한 조화를 꾀하기도.
또한 정원 바로 옆에 위치한 벽돌 건물에서 자라나는 이웃의 나무들이 철창을 훌쩍 넘어 정원까지 자라나 있는데, 마치 김 대표의 정원에 위치한 것처럼 정원의 식물과도 조화를 이뤄 한층 풍성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특히 한 켠에는 고수나 방아, 차 조기, 바질 등 식용이 가능한 허브류를 기르기도 한다. “조건이 제대로 갖 춰진 정원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제가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자라더라고요. 왠지 모르게 기특하기도 하고, 더 좋은 조건이었다면 더욱 잘 자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죠. 그렇지만 여기 있는 식물들과 함께하는 옥상은 제게는 일에 지치거나 쉼이 필요할 때면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줘요.” 물론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사실 사람이 손에 쥐는 것이 많아질수록 욕심이 생기잖아요. 처음에는 바깥에서 식물을 기르고 싶다는 소망이 충족되니 이제는 실제 땅이 있는 곳에서 식물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어요. 아직 여건이 안 되지만요(웃음).”
김나리 대표에게 옥상정원이 애틋한 또 다른 이유는 바비큐나 독서 등 다양한 여가 생활을 겸할 수 있는 뛰어난 활용도 덕분이기도 하다. 때로는 무럭무럭 자라는 방아나 고수를 올린 피자를 굽기도 하고, 동양적인 가구와 소품을 좋아하는 취향을 반영한 고재 평상과 소반에 한잔의 술과 차를 차려 즐기기도 한다. 비록 거리 두기가 무한정 이어지면서 아직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서의 휴식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여유가 된다면 꼭 소중한 이들을 이곳에 초대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바쁜 일상과 삭막한 건물 사이를 헤쳐나가야 하는 모든 도시 생활자들에게 잠깐의 쉼과 도피처는 필수. 눈과 마음이 탁 트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초록의 생기가 깃들고 잠시나마 그 어떤 걱정과 불안 없이 그저 볕과 바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면 다시 숨가쁜 도시 생활을 버텨낼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후암동에 자그마하게 자리한 식물의 작은 터전처럼.